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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선포'부터 '첫 집회'까지.. 주요 인사 은신처도 물색
2024-12-12 236
정자형기자
  jasmine@jmbc.co.kr

[전주MBC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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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 커 ▶

12.3 계엄 당시 발표된 계엄사령부 포고령엔 언론 통제와 함께 시위와 집회 금지도 포함됐었는데요. 


만약 계엄이 지속됐다면 시민 저항의 중심 역할을 했을 노동시민단체들은 계엄 선포 직후부터 해제 때까지 계엄군 침탈에 대비했고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뒤 첫 집회를 열었습니다. 


정자형 기자가 당시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 리포트 ▶

예고 없던 대통령 담화 끝에 긴급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지난 3일 밤 10시 30분. 


[윤석열 / 대통령]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도내 노동·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은 "실화냐", "빠른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등의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걱정과 공포가 스며들기 시작하던 밤 11시, 계엄 '포고령'이  나오자 걷잡을 수 없는 동요가 시작됐습니다. 


제4항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 행위를 금한다'가 무엇을 겨냥한 것인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채민 / 윤석열퇴진 전북운동본부 부대변인]

"충격도 충격이지만 이걸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런 부분들, 계엄 관련한 법령을 살펴보는 분들도 있었어요."


익산 제7공수여단이 계엄 선포 전부터 비상 대기 중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지만 당시는 계엄군과 맞닥뜨리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했습니다. 


일부 단체는 계엄 소식에 급히 사무실로 나와 서둘러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와 저장장치를 떼어냈고 중요 자료를 챙겨 아무도 모르는 곳에 보관했습니다.


이들은 또, 저항의 중심 역할을 할 민주노총과 주요 단체 인사들이 몸을 피할 은신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강문식 / 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사무처장]

"신부님들 주무시고 계시는데도 계속 전화해서 깨워가지고. 성당을 좀 열어달라 막 연락을 돌리고. 그런 준비들을 하고 있었어요."


국회 비상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새벽 1시.


안도할 틈도 없이 이들은 다음 행동을 논의했습니다. 


[채민/윤석열퇴진 전북운동본부 부대변인]

"시민들께 어떤 목소리로, 간단한 유인물이라도 만들어서 오전 9시 전주 충경로 사거리에서 윤석열 타도 집회를 하자."


새벽 4시 30분 계엄 해제를 확인한 뒤 날이 밝기를 기다려 곧장 전주 충경로 집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시민 여러분 민주 공화국을 파괴하는 윤석열을 타도합시다. 9시에 경원동 풍년제과 사거리로 모여주십쇼."


수십 명이 시작한 전주 첫 집회는 저녁 촛불 집회에 수백 명으로 불었고, 날이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계엄군의 탈취에 대비해 그날 새벽 은밀히 보관했던 하드디스크와 자료는 이틀 뒤 원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MBC뉴스 정자형입니다. 


영상취재: 강미이, 김종민

그래픽: 안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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