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이 참 좋다] 전주MBC 2025년 04월 09일](/uploads/contents/2025/04/7431513dceaa3355df9ef12b81984f00.jpg)
![[전북이 참 좋다] 전주MBC 2025년 04월 09일](/uploads/contents/2025/04/7431513dceaa3355df9ef12b81984f00.jpg)
전라도 방언 ‘그라시재라’는 ‘그러믄요’, ‘그럴 수밖에요’ 체념이 담뿍 담긴 전라도의 관습적 언어인데요.
조정 시인의 시집 ‘그라시재라’는 시집 전체가 전라도 말로 쓰였습니다.
시인은 전라도 말의 풍부함, 그 속에 깃든 생각과 기질을 알리기 위해서 전라도 말로 시를 썼다고 합니다.
방언은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사람들의 기질과 정서가 오롯이 깃든 소중한 자산인데요.
인문 클래스 시즌3! ‘방언이 종말 3’ 오늘은 ‘호남 방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충훈 아나운서]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온다라인문학센터와 함께 우리 주변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즐기는 인문 클래스 시즌3! 전주대학교 국어교육과 하영우 교수님과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하영우]
안녕하세요, 전주대학교 국어교육과 하영우 교수입니다.
[진행자]
인문 클래스 시즌3! 하영우 교수님과 함께 하는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 나눠볼까요?
[하영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의 말, 호남 방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어서 방언과 방언이 맞닿는 접경지대의 특수한 방언권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우리가 사는 이곳의 말을 알아보는 정겨운 시간이겠네요. 교수님! 호남 방언은 전남과 전북의 말을 가리킨다고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하영우]
네, 호남 방언은 말씀하신 대로 대체로 전남과 전북 지역의 아우르는 방언권입니다. 아주 정확히 말하면 전북에 인접한 충남 일부 지역도 사실 호남 방언에 속하는데요. 호남 방언에 포함되는 일부 충남 지역도 전라도 방언의 특성이 많이 나타나서 그렇게 분류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호남 방언은 곧 전라도 방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진행자]
저희 외할머니가 충남 서천 분이시거든요. 근데 예전에 제가 놀러 가서 들어보면 전라도 방언을 많이 쓰셨어요. 이 지역까지 포함이 되는 언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진행자]
호남 방언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나요?
[하영우]
모든 방언이 저마다 가지각색의 특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호남 방언도 발음이나 억양, 단어, 문법 같은 여러 차원에서 독특한 매력을 다양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호남의 서남부 끝에 위치한 진도라는 섬이 있는데요, 진돗개가 유명한 고장이죠. 제 고향이기도 한데요, 이 지역에서는 자녀를 부를 때 태어난 순서에 따라서 독특한 호칭어를 씁니다. 남자아이의 경우에는 첫째를 ‘큰놈’, 둘째를 ‘간뎃놈’이라고 했는데 셋째부터는 ‘-바’를 붙여서 부릅니다. ‘셋’을 호남에서는 ‘시’라고 하니까 셋째는 ‘시바’, ‘넷’을 ‘니’라고 부르니까 넷째는 ‘니바’라고 하는 거죠.
[진행자]
그럼 다섯째는 ‘오’니까 ‘오바’가 되는 건가요?
[하영우]
네, ‘오바하다’라는 표현이 있어서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다섯째는 ‘오바’가 맞습니다. 여섯째는 ‘육바’, 일곱째는 ‘칠바’ 이런 식인 거죠. 저는 어렸을 때 이 말을 직접 듣고 자랐는데, 사실 순서를 나타내는 호칭어인 줄 몰라서 ‘오바 삼촌’이란 분은 이름이 ‘오바’인 줄 알았었습니다.
[진행자]
아, 그럴 수 있겠네요. 그럼, 여자아이들은 ‘-바’가 아닌 다른 말을 붙여서 불렀나요?
[하영우]
남자아이들은 ‘-바’를 붙인 것과 다르게 여자아이들은 ‘-단이’를 붙여서 불렀습니다. 남자아이랑 비슷하게 ‘큰년’, ‘장가’로 불렀는데 셋째부터는 ‘시단이, 니단이, 오단이’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래서 여러 아이가 모여 있을 때 ‘시단아’라고 부르면 셋째 딸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진행자]
아~ 그렇군요~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를 극복하고 ‘시단이’가 여럿인, 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호남 방언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요?
[하영우]
호남 방언의 특징은 정말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모두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겠고요, 오늘은 주로 ‘말소리’에서 나타나는 호남 방언의 특징을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말소리는 늘 말하고 듣는 것이라서 잘 느끼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호남 방언만의 말소리 특징이 정말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그중에 첫 번째는 /ㅓ/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아나운서님, 혹시 예전에 ‘어른’을 [으:른]이라고 발음하는 게 유행이었던 거 기억나시나요?
[진행자]
기억납니다. 몇 해 전에 대학생들 사이에서 ‘어른’을 장난스럽게 [으:른]이라고 했던 적이 있었죠. 저도 재미있게 들었고, 해 본 기억이 있습니다.
[하영우]
그런데 [으:른]이라는 발음이 호남 방언의 /ㅓ/에서 나타나는 특징이거든요. 호남 방언의 /ㅓ/는 수도권 지역의 /ㅓ/에 비해서 /ㅡ/에 가깝게 소리가 납니다. 특히 호남 방언 중에 ‘ㅓ’를 길게 발음하는 단어도 있는데, 그때는 사실상 ‘ㅡ’와 구분이 되지 않기도 합니다. 라디오이기 때문에 제가 화면으로 보여드리지는 못하는데, 음성 자료를 분석해 보면 실제로 수도권 장년층보다 호남 지역의 장년층이 /ㅓ/를 /ㅡ/에 가깝게 발음한다는 것을 증명한 논문도 존재합니다.
[진행자]
아, 그렇군요. 근데 사실 전공자가 아니면 호남의 ‘ㅓ’가 다른 방언과 다르다는 걸 알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좀 직관적인 호남 방언의 발음은 없을까요?
[하영우]
아주 직관적인 호남 방언만의 말소리가 있습니다. 바로 ‘ㅢ’입니다. /ㅢ/는 다른 이중모음과 다르게 표준발음법상 발음형이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의사’처럼 ‘ㅢ’가 단어 첫머리에 올 때는 [의사]로 발음하지만, ‘회의’처럼 ‘ㅢ’가 단어 첫머리에 오지 않을 때는 [회의]도 되지만 [회이]도 가능하죠. 그리고 ‘나의 집’처럼 관형격조사가 올 때는 [나의 집]으로 발음하지만 보통 ‘ㅢ’를 ‘ㅔ’로 바꿔서 [나에 집]으로 발음합니다. 그러니까 ‘ㅢ’는 표준발음법상 ‘ㅢ’, ‘ㅣ’, ‘ㅔ’로 발음이 되는데, 전통적인 호남 방언에서는 ‘ㅢ’를 모두 ‘ㅡ’로 발음합니다.
[진행자]
제가 처음에 와서 약간 좀 어려웠어요. 저도 좀 따라 하더라고요. 따라 하다 보니까. 저는 물론 우리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이긴 하지만 학교는 인천에서 자랐거든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야 너는 아나운서가 ‘ㅢ’ 발음을 왜 이렇게 못하냐" 그랬던 게 나도 이 지역 사람과 함께 살면서 이 지역의 발음을 흡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진행자]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의의’는 호남 방언에서는 [민주주으으 으으] 이렇게 발음한다는 거죠?
[하영우]
네, 맞습니다. 고유한 호남 방언에는 [의]라는 발음이 없기 때문에 ‘ㅢ’는 무조건 ‘ㅡ’로 읽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ㅢ’를 ‘ㅡ’로만 발음하는 게 호남 방언 말소리의 시그니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전공자가 아니면 앞에서 말씀드렸던 /ㅓ/처럼 발음 하나하나를 다 신경 써서 듣진 않기 때문에 방언에 따른 차이를 알아내기 힘들거든요. 그런데 유독 ‘ㅢ’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호남 방언을 써야 할 때 굉장히 자주 애용되더라고요. 예를 들면 배역 공부를 열심히 하시는 배우들은 ‘이것이 너의 것이냐’라는 지문이 있으면, 그걸 [이거시 너에 것이냐]라고 하지 않고 [이거시 너으 거시냐]라고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호남 방언을 표현하는 배우들이 꽤 많아서, ‘ㅢ’ 발음이 약간 호남 방언 말소리의 시그니처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좀 주제를 벗어나긴 하지만, 참고로 영남방언의 경우에는 호남 방언과 다르게 /ㅢ/를 ‘ㅣ’로 발음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호남 방언에서 ‘의사’는 ‘으사’라고 하는데, 영남 방언에서는 ‘의사’를 ‘이사’라고 합니다.
[진행자]
방언에 따라서 ‘ㅢ’ 발음이 달라질 수도 있는 거군요. 혹시 드라마나 영화에서 호남 방언을 표현하는 다른 말소리는 어떤 게 있을까요?
[하영우]
유기음화를 적용하지 않는 것도 미디어에서 호남 방언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유기음화가 전문 용어라 생소하게 들리실 텐데요, 사실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법학’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우리가 [버팍]이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법’의 받침 ‘ㅂ’과 ‘학’의 ‘ㅎ’이 축약되어서 ‘ㅍ’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을 유기음화라고 하는데, 이 유기음화가 전남 방언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법학’을 [버팍]이 아니라 [버박]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큰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1994’에서 해태라는 등장인물이 전라도 출신으로 설정되어 있었는데, 상대 배역에게 “깝깝한 소리하고 있네”를 [까까반 소리하고 인네]라고 해서 유기음화를 미적용하는 호남 방언을 잘 표현하기도 했었습니다.
[진행자]
광주에도 아는 분들이 많이 계셔가지고 대화를 나누면 유기음화가 안 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걸 학술적으로 접근하니까 맞는 이야기네요.
[진행자]
모르고 볼 때는 그냥 느낌으로만 호남 방언이구나 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드라마에 많은 방언 디테일이 숨어 있었군요.
[하영우]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출연하는 배우가 방언 화자면 방언을 어떻게 쓰는지 유심히 관찰하는 편입니다. 호남 방언 연기를 하셨던 많은 배우 중에 저는 성동일 배우님이 가장 돋보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호남 방언 연기의 디테일이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예를 들면 ‘읽다’처럼 받침에 자음이 두 개 오면 하나가 탈락하는 현상이 있는데요, ‘ㄹ’과 ‘ㄱ’ 중에 어떤 자음이 탈락하는지가 방언에 따라서 다릅니다. 영남 방언의 경우에는 ‘ㄹ’을 선택하고 ‘ㄱ’을 탈락시키는 경향이 강해서 ‘일따, 일찌, 일꼬, 일른다’처럼 발음합니다. 그런데 호남 방언은 반대로 ‘ㄹ’을 탈락시키고 ‘ㄱ’을 선택해서 ‘익따, 익찌, 익꼬, 잉는다’처럼 말합니다. ‘밟다’도 같은 원리인데요, 영남 방언은 ‘발따, 발른다’라고 하는데, 호남 방언은 ‘밥따, 밤는다’라고 발음합니다. 이런 발음은 호남 출신이거나 호남 방언 연구자인 경우에만 파악이 가능한데요, 성동일 배우는 인천 출신인데도 호남 방언 연기하실 때 이런 부분까지 놓치지 않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연기에 대해 잘 모르지만, 방언학자로 봤을 때는 정말 멋진 배우다,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진행자]
성동일 배우는 참 찰진 연기를 하는 배우인데요. 역시 방언학자 관점에서도 손색없는 배우군요~ 그런데 교수님, 호남 방언이라고 해도 전라도가 굉장히 넓잖아요. 호남의 각 지역마다 방언이 조금씩 다른가요? 호남이라고 해서 모두가 똑같진 않겠죠?
[하영우]
네, 맞습니다. 호남 방언은 전라도 일대를 권역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호남 방언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서 말이 다르게 사용되기도 합니다. 호남 방언을 대표하는 표현 중에 ‘무엇무엇 했다니까’의 ‘다니까’에 해당하는 ‘당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께’가 ‘당게’로도 사용이 되는데, ‘당께’는 전남에서, ‘당게’는 전북에서 더 많이 사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행자]
재밌는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드릴게요. 제 고향이 여기라서 큰 아버지가 전주에 계세요. 저희 아버지는 인천으로 발령이 나셔서 쭉 인천에 계시다가, 명절 때마다 전주로 오셔서 가족이 모입니다. 이때 큰 아버지께서 전주 사투리로 "당께, 당께"라고 하시는데, 저희 아버지가 그걸 듣고 "그 당께 당께 좀 쓰지 말랑께~!"라고 하시는데 그 모습이 너무 재밌어서 기억에 남습니다.
[진행자]
아무튼 같은 호남이어도 전남과 전북의 말이 다르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영우]
호남의 말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말소리로 전남과 전북의 차이를 좀 말씀드리면, /ㅟ/와 /ㅚ/가 남아 있는 모습이 다릅니다. 표준발음법에 보면 /ㅟ/, /ㅚ/는 단모음이지만 이중모음으로 발음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사실 무슨 말인지 지금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를 수 있으니까 제가 발음으로 들려드리겠습니다. /ㅟ/, /ㅚ/를 이중모음으로 발음하게 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wi], [wE]가 되는 것이고요, 이걸 단모음으로 발음하게 되면 [y], [ø]가 됩니다. /ㅟ/, /ㅚ/를 단모음으로 발음하는 게 좀 어색하게 들리실 텐데, 매우 제한적인 지역의 노년층을 제외하고는 /ㅟ/, /ㅚ/가 단모음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보수적인 표준발음법마저도 이례적으로 /ㅟ/, /ㅚ/를 이중모음으로 발음하는 것을 허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남 지역과 다르게 전북 지역의 경우에는 /ㅟ/, /ㅚ/가 중년층 이상에게 꽤 많이 단모음으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진행자]
같은 호남 지역이지만 전북 지역에서는 /ㅟ/, /ㅚ/를 단모음으로 하고, 전남 지역은 두 모음이 단모음으론 사라진 거네요~
[하영우]
네, 맞습니다. 전남 지역도 /ㅟ/, /ㅚ/가 일부 단모음으로 남아 있긴 하지만 전북 지역에 비해서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편입니다. 반면에 전북 지역은 /ㅟ/, /ㅚ/가 중장년층에게 꽤 강하게 남아 있다고 생각되는데, 제가 사실 이걸 믿지 않았거든요. 저도 고향이 전남인데요, /ㅟ/와 /ㅚ/를 대부분 단모음으로 발음을 못 하시니까 당연히 전북도 안 되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전주에 사는데, 아파트 관리소 소장님께서 방송하실 때 /ㅟ/, /ㅚ/를 단모음으로 발음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한때는 소장님 방송만 엄청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그게 듣고 싶어서요. 또 음성학 전공하시는 모 교수님께서 출장으로 부안에 가신 적이 있는데, 그때 부안 지역민들이 /ㅟ/, /ㅚ/를 아주 또렷하게 단모음으로 발음해서 정말 흥미로웠다고 하신 걸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진행자]
같은 호남 방언이어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존재하는군요~
[하영우]
네, 그리고 어떤 지역은 호남 방언권이지만 정말 독특한 방언적 특성을 보여 주는 ‘접경지대’라는 특수 지역도 있습니다. 접경지대라는 것은 방언권과 방언권이 맞붙는 경계 지점이라는 뜻인데요, 예를 들어서 ‘화개장터’라는 오래전 노래 가사에 보면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이란 부분이 나오는데, 여기가 호남방언과 영남방언이 맞닿는 접경지대 중 하나입니다. 정확히는 전남과 경남이 맞닿아 있는 접경지대인데요, 노래 가사에 나와 있는 섬진강을 경계로 해서 전남 구례와 광양의 다압면, 그리고 경남의 하동이 붙어 있습니다. 광양시 다압면은 봄에 매화마을로 유명한 그곳입니다. 어쨌든 접경지대는 단순하게 방언권과 방언권이 만나는 지리적인 특징만 있는 게 아니고요, 이례적인 방언 특징이 나타납니다.
[진행자]
교수님! 이례적인 방언 특징이라면, 어떤 걸까요?
[하영우]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구례나 광양시 다압면의 경우에 전남에 속하는데, 전남은 오래전부터 /ㅔ/와 /ㅐ/를 구분하지 않고 말했거든요. 가령 지금 대부분의 사람이 멍멍이 ‘개’와 갑각류 ‘게’를 듣고는 구분하지 못하는데, 이게 /ㅔ/와 /ㅐ/를 다르게 발음하지 않고 다르게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이 전남 방언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나타났는데, 특이하게 전남 구례와 광양시 다압면에서는 60대 이상의 경우 아직도 /ㅔ/와 /ㅐ/를 구분해서 발음합니다. 물론 방언의 변화 때문에 젊은 세대는 두 모음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대체로 60대 이상이신 분들은 구분하더라고요.
[진행자]
/ㅔ/와 /ㅐ/를 구분해서 발음한다니, 독특합니다. 호남 방언의 접경지대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요?
[하영우]
섬진강 유역에서 나타나는 호남 방언의 접경지대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광양시 다압면이라는 지역 자체가 좀 신기했습니다. 제가 2023년에 섬진강 유역을 대상으로 음성 분석 실험을 진행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다압면에 가봤거든요. 3월에 매화마을 축제하시면 다들 가보셔서 아시겠지만, 이곳이 섬진강을 따라서 길게 형성되어 있는 마을입니다. 그런데 여기 주민분들 말을 들어보면 ‘이게 전라도 말인가?’ 싶을 정도로 억양이 특이합니다. 약간 애매한 경상도 억양이 섞여 있거든요.
[진행자]
광양은 명백히 전라도인데 다압면에 사시는 분들만 경상도 억양을 쓰시는 이유는 뭘까요?
[하영우]
광양은 전라도인데 유독 다압면에 사시는 분들이 경상도 억양을 일부 갖고 있는 이유가 있는데, 이분들 생활권이 광양이 아니라 실제론 경남 하동이기 때문입니다. 다압면과 하동읍 사이에는 섬진교라는 다리가 있는데, 섬진교를 이용하면 다압면에서 하동읍까지 약 10~15분 사이에 이동이 가능합니다. 반면에 광양 시내를 가려면 제법 높은 산을 넘어야 하고요 거리도 상당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오래전부터 생활권이 자연스럽게 경남 하동으로 되어 있어서 억양이 조금 뒤섞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행정상 불가능하지만, 예전에는 다압면 사셨던 분들이 대체로 하동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고요. 아주 오래전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행정 구역을 차라리 하동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던 적도 있다고 합니다.
[진행자]
행정 구역은 전라도지만, 생활권은 경상도여서 경상도 억양이 섞여 있는 거군요. 그런데 광양 전체가 다 그런 것은 아니죠?
[하영우]
네, 다압면처럼 섬진강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광양 일부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제가 설문조사를 진행해 봤을 때 다압면 분들은 자신의 말이 전라도와 경상도 말이 섞였다고 답한 경우가 많았는데, 다압면에서 산을 넘어가면 있는 광양시 진상면에 계시는 분들은 자기 말이 그냥 전라도 말이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접경 지역에 해당하는 다압면 지역만의 특징이라고 생각됩니다.
[진행자]
접경지대가 전남에만 있지는 않잖아요. 전북 지역의 접경지대는 대표적으로 어디에 형성되어 있나요?
[하영우]
전북 지역 중에 가장 대표적인 접경지대는 단연 무주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주는 일반인들에게는 겨울 스포츠의 메카, 반딧불 축제, 청정 도시로 잘 알려져 있지만 방언학자들에게는 방언 접경지대가 보여 줄 수 있는 특징을 가장 잘 간직한 고장으로도 유명합니다. 무주는 전북에 속해 있고, 전북 방언을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군에 소속되어 있는 면에 따라서 방언이 달라집니다. 대표적으로 무주군 무풍면은 행정구역상 전북에 속해 있지만, 지리적으로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하고 붙어 있거든요. 그래서 무풍면은 전북 방언이면서도 경상도 방언의 특징도 나타나는 이중적인 방언의 모습을 보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향토문화전자대전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는데요. 무풍면이 경상 방언의 영향을 받은 흔적은 /ㅡ/와 /ㅓ/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잘 나타납니다. 경상 방언은 /ㅡ/와 /ㅓ/를 구별해서 발음하지 않기 때문에 ‘언어’와 ‘은어’가 똑같이 발음되거든요. 그런데 이런 경상 방언의 전형적 특징이 무풍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진행자]
무주가 방언학적으로 정말 흥미로운 지역이군요. 전북이 경상 지역과 맞닿은 지역이 무주만은 아닌데, 전북권 내에서 다른 접경지대는 없나요?
[하영우]
네, 전북 지역에 있는 접경지대는 무주 외에 다른 곳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남원을 들 수 있는데요, 남원은 전북에 소속되어 있지만, 전남 구례, 곡성과 맞닿기도 하고, 경남 함양과 접촉하고 있기도 해서 세 지역 방언이 모여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남원은 하나의 도시지만, 방언으로 보면 사매면, 덕과면은 전북 방언을 보이고, 주생면이나 송동면은 전남 방언의 영향 아래에 있습니다. 또 남원의 동쪽에 있는 운봉읍이나 인월면 같은 경우는 경남 함양에 인접해 있어서 경상도 방언의 간섭을 많이 받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강원대 장승익 교수님이 이 지역 말의 특징을 설명하실 때, 남원 버스 정류장에 가면 동쪽으로 가는 분들이 앉아 있는 승강장은 경상도 말투를 쓰고, 서쪽으로 가는 분들은 전라도 말을 써서, 도로 하나를 두고 영호남 방언을 동시에 볼 수 있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진행자]
방언의 종말- 세 번째 이야기! 오늘은 호남 방언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전라도 말, 우리 지역의 방언을 좀 더 깊이 있게 아는 시간이었습니다.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온다라인문학센터와 함께 우리 지역의 인문학을 쉽고, 다양하게 즐기는 인문 클래스 시즌3! 오늘은 전주대학교 국어교육과 하영우 교수님과 함께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