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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링'으로 정책제안 했다".. 표절·도용 얼룩진 '전북소방 해외연수 보고서'
2024-10-26 1793
조수영기자
  jaws0@naver.com

[전주MBC 자료사진]

올해 전북소방의 해외연수 결과 보고서가 각종 짜깁기는 물론, 허술한 벤치마킹 정책 제안 사례들로 채워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심지어 일부 연수에 참가한 소방대원들은 현장에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책을 제안하기까지 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전주MBC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결과 보고서들을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 "미국으로, 유럽으로".. 전북소방 '선진국 연수'의 민낯은?


전북소방본부는 올 상반기부터 팀당 4명씩, 10개 팀으로 나눠 대대적인 해외연수에 나섰습니다.


형식적인 공로 연수가 아닌 만큼, 지역 관내 소방관들의 징계 여부와 수상실적 등을 종합해 인원을 선발했습니다.


1개 팀당 전북도 예산 1,200만 원이 책정된 이 사업의 정식 명칭은 '글로벌 벤치마킹 연수',


미국과 유럽대륙 등 선진지를 시찰해 우수한 소방시책을 현장에 도입해보자는 취지입니다.

 

이 가운데 지난 달, 8박 10일 일정으로 미국 서부 산호세와 라스베이거스로 향한 국외연수팀이 작성한 보고서는 문제가 가장 심각했습니다.


■ 라스베이거스 현지시찰, 알고보니 '구글링'으로?


소방관 4명이 역할을 나눠 미국 소방의 화재 안전사고 예방법을 벤치마킹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전기차를 만드는 테슬라 공장과 현지 소방본부,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 등을 둘러봤습니다.

 

시찰 내용을 토대로 이들이 보고서를 통해 제안한 정책사업은 '통합감시 시설 설치'.


라스베이거스의 한 리조트가 운영하는 대형스크린 형태의 화재경보 시스템을 국내에 도입해보자는 겁니다.


그런데 전주MBC 취재 결과, 해당 국외연수팀은 관련 시설 내부에 진입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전북소방본부가 연수팀원들에게 경위를 물었더니 "시설 보안상 문제로 들어가지 못했고, 사진 촬영도 금지돼 있었다"는 겁니다.

 

■ 현지 '인터넷 시찰(?)'로 소방 정책제안.. 사진·보고서까지 '복붙'


이어진 해명은 더 가관입니다.


현지 시설 내부 진입이 어렵게 되자 "현장 밖에서 '구글링'을 했다"는 게 소방 관계자의 공식 해명입니다.


라스베이거스 현지까지 날아가, '인터넷 검색'으로 시찰을 대신한 것도 모자라, 벤치마킹 사례로 정책 제안을 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국외연수 보고서에는 마치 해당시설에 들어가 촬영한 것처럼 내부 사진이 버젓이 첨부돼 있습니다.


알고 보니 한국화재보험협회가 지난 2010년 발간한 '라스베이거스 시티센터 탐방기'에 들어간 사진을 도용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일부 내용까지 국외연수보고서 정책 제안란에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베껴 옮겨 왔습니다.


■ 벤치마킹 정책 맞아요?


눈 가리고 아웅 식인 소방 해외연수의 황당한 정책 제안 사례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8월, 역시 8박 10일 일정으로 스위스와 이탈리아로 떠난 또 다른 해외연수팀이 작성한 보고서를 살펴봤습니다.

 

유럽 지역의 소방장비 보유 현황을 비교 분석하겠다며 스위스 취리히와 인터라켄,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피렌체, 로마 등 현지 소방서 5곳을 차례로 돌았습니다.

해당 팀이 시찰 결과를 바탕으로 제안한 벤치마킹 정책은 '오토바이 소방차' 구매 사업.


오토바이를 도입한 피렌체 소방서에서 감명을 받은 건데, 교통 혼잡 지역에 신속한 출동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도입 비용도 낮아 예산도 절감할 수 있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오토바이 소방차는 사실, 서울 등지에서 몇 차례 도입했다 실패로 끝나 소방분야 탁상행정으로 손꼽히는 사업입니다.


결정적으로 오토바이 전용 면허를 가진 소방 인력이 모자라고, 출동하다 넘어지는 일도 발생해 위험하다는 논란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충북소방본부가 지난 2019년 당시에도 논란을 무릅쓰고 '오토바이 화재 진압대'를 도입했다 3년 만에 폐지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 "여기도 복붙, 저기도 복붙".. 무얼 배우고 오셨습니까?


이 밖에 인터넷 블로그와 뉴스 기사, 심지어 다른 공공기관의 공무국외연수보고서를 그대로 복사·붙여넣기 한 사례도 속출했습니다.

 

이에 대해 전북소방본부는 "전체적으로 표절율이 15%를 밑돌아 내부 규정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전주MBC 취재가 시작되자 교차 검증을 통해 계획한 동선을 최대한 소화한 것으로 확인했다며 외유 논란에도 선을 그었습니다.


다만 해외연수보고서 상당수 내용이 인터넷 글 등을 짜깁기해 채웠다는 지적에 대해선 "관련자들이 잘못을 시인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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