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MBC 자료사진]
□ '53억 빼돌리고, 뒷돈받고 교사 채용'.. 5년 전 떠들썩했던 '학교법인'
5년여 전, 뉴스에 오르내리며 지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한 사립학교법인이 있습니다.
교실을 설립자를 위한 사택으로 개조해 사용하는가 하면, 시설 공사를 하거나 물건을 살 때 단가를 부풀리고 뒷돈을 받았습니다.
학교 부동산은 물론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복지기금에까지 손을 대기도 했는데, 검찰에서 확인한 설립자 일가의 횡령액은 53억원에 달했습니다.
채용비리도 드러났습니다.
12명의 교사는 채용을 청탁하거나, 교장과 교감으로 승진하려고 설립자에게 많게는 1억 원에 달하는 검은 돈을 상납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핵심 피의자 중 한 명이었던 교감은 '설립자가 죄를 덮어 씌우려 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뒤 숨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사립학교라지만 전체 예산의 95%는 국민 세금인 교육청 지원에 의존하던 곳.
당시 검찰은 "국민들이 피해자"라고 질타하며 설립자 김태운 씨를 구속 기소했고, 결국 징역 7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입니다.
전주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운영 중인 학교법인, 완산학원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 "정상화하겠다" 관선이사 파견.. 교육감 바뀌며 '2기 출범'
당시 교육당국이 첫번째로 한 일은 기존 이사진을 해임하고, 사태 수습과 학교 정상화를 추진하는 임무를 맡은 이사진을 내려보낸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관선이사' 체제가 시작된 겁니다.
전임 김승환 전북교육감 시절 임명된, 차상철 이사장을 필두로 한 1기 관선 이사의 임기는 지난 2022년 9월까지.
진상조사와 인사조치를 벌여 부정부패 근절에 애썼고, 재발을 막기 위해 정관 개정 등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비리로 퇴출된 교사들이 소송으로 속속 복귀하면서, 법적 대응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새로 출범한 민선8기 서거석 교육감의 도교육청은 학급수 감축 등 학교 경쟁력 약화를 지적하며 새로운 관선이사를 선임했습니다.
서거석 교육감의 인수위원이기도 했던 측근 강일영 이사장을 필두로 한, 이른바 '2기 관선이사회'가 출범한 겁니다.
그렇게 두 차례 관선이사가 파견되고 5년이 흐른 지금, 완산학원은 어떤 모습일까요?
□ "금품수수해도 승진?" 석연찮은 규칙 개정 추진.. "채용 필기시험도?"
2기 관선이사회가 들어선 지 2년, 학원 안팎에서는 석연찮은 징후들이 감지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음은 학교 사무직원 중 최고 높은 보직인 법인국장과 행정실장 인사와 관련해, 1기 이사회에서 만든 조항입니다.
<사무직원인사규칙 제16조 3항>
'법인국장 및 행정실장은 금품·향응 수수, 공금횡령·유용, 배임, 부정청탁에 따른 직무수행, 음주운전, 성폭력, 성매매 등으로 징계처분을 받은 자는 직위를 부여하지 아니한다.'
완산학원의 과거를 생각하면 누가봐도 상식적인 조항, 그런데 2기 이사회는 돌연 이 조항을 삭제하는 규칙 개정안을 추진하고 나섰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학교 교장과 직원 대표로 구성된 인사위원회가 정하던 신규채용 방식을 이사장이 결정하도록 하고, 인사위원회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취지의 조항 등도 개정안에 담겼습니다.
부정부패 재발을 막기 위해 1기 이사회가 3년에 걸쳐 만들어놨던 시스템을 무력화 하는 개정안,
이사장의 채용 권한과 인사권을 구 비리재단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취지 아니냐는 말이 나옵니다.
심지어 새로 사무직원을 신규채용하겠다며 논의하는 과정 속에서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필기시험을 아예 없애고, 주관이 반영되는 서류와 면접 심사 비중을 높이려는 시도까지 있었습니다.
특정인의 실명까지 거론되며 "누구를 앉히려 한다", "승진 배제 규정에 해당하는 사람은 누구밖에 없다"는 소문이 학교 밖에서까지 파다하게 퍼지기도 했습니다.
□ '비리사학 정상화 하랬는데'.. 오히려 이사 권한 강화
그저 "사립학교법에 위배되지 않고, 다른 학교는 다 그렇게 한다", "잘못을 해도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일 뿐,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법인 측의 입장.
사립학교의 재량권이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지만, 좀 이상합니다.
앞서 말했듯 이사장과 이사들은 재단 인사라던가 단순한 민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리재단으로 아픔을 겪었던 학교를 정상화하라는 임무를 가지고 교육부와 도 교육청에서 파견된 관선이사들입니다.
그런 인물들이 비리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도 내팽개치고, 본인들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일 겁니다.
□ 인사규칙 개정은 일단 "없던 일로".. 사학 감시는 여전히 '깜깜'
보도의 반향인지, 결국 개정이 필요한 설득력 있는 당위는 내놓지 못한 이사회는 한발 물러섰습니다.
개정안은 없던 일이 됐고, 필기시험을 보지 않겠다는 신규 채용 방침도 철회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게 끝일까요?
최근 전북도의회에서는 완산학원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횡령에 공모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받은 직원이 승진과 중고등학교 겸임도 모자라 93억 원에 달하는 시설 공사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는 점을 중심으로 여전히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질타받은 겁니다.
하지만 분명 사학법인이다보니 공적 감시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사립학교법에 따라 공개하도록 의무화돼 있는 이사회 회의록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1월 열린 완산학원 이사회 회의록으로 앞서 논란이 됐던 신규채용 계획이 논의된 대목입니다.
<2024>
의 장 : 신규채용 가능 여부는 확인하셨나요?
사무국장 : 신규채용 가능여부와 관련하여 (중략) 검토 후 심의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이사일동 : (신규채용 계획(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 결정을 내리다.)
7명의 이사들이 나눴을 많은 대화들이, '의견을 나누었다'라는 괄호 안 문장 하나로, 그야말로 '퉁'쳐져 있습니다.
관련 법령에 회의록 공개 의무조항이 있는데도 이게 괜찮냐는 물음에, 교육부는 "도교육청이 판단할 사안"일 뿐이라는 답변뿐입니다.
□ "이 모든 징후의 이유는?".. 다시 시작된 신규직원 채용
완산학원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쉽게 납득하기는 힘든 일 투성이입니다.
무엇을 목적으로, 이같은 퇴행적 징후들이 나타나는 것인지,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학교 밖에서도 정상화를 바라며 우려섞인 시선들을 던지고, 들여다보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논란의 중심이었던 신규채용은 필기 전형이 포함된 채로, 오는 11월 1명 채용을 목표로 다시 절차가 시작됐습니다.
설립자가 구속된 지도 벌써 5년여, 남은 형기는 2년이 채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다시 지켜보겠지만, 이제껏 제 보도를 계기로, 이 과정을 한 사람이라도 더 지켜본다면 다행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