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MBC 자료사진]
◀앵커▶
무슬림인 외국인 노동자가 이슬람 율법에서 금기시되는 돼지의 내장을 세척하는 업무를 맡게 돼 고통을 받고 있다며 호소하고 나섰습니다.
사업장 변경을 요청해도 요건이 안된다며 노동당국이 거부하고 있다는 건데요.
이미 오래전 국가인권위에서 "차별의 소지가 있다"라고 판단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지적입니다.
허현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고용허가제를 통해 3년 동안 근로 계약을 맺고 입국한 방글라데시 국적 40살 하이 압둘 씨,
화장품 관련 생산 라인에 투입되는 것으로 알고 왔지만 정읍의 공장에 도착해서 업무 내용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화장품 원료를 추출하기 위해 돼지 내장을 세척하는 일을 맡게 된 건데, 돼지를 만지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무슬림인 압둘 씨에게는 고역이었던 겁니다.
[하이 압둘 /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
"무슬림으로서 그 일을 할 때마다 괴롭습니다. 그래도 사장님이 허락을 해줘야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계속했는데,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다 보니 이런 상황이 됐습니다."
압둘 씨가 입국 전 받았던 근로계약서입니다.
화장품 관련 제품을 제조한다는 등의 내용은 영어와 방글라데시어로 번역돼 있지만,
'가축 내장 세척' 업무를 한다는 내용은 한글로만 기재돼 있는 데다 원재료가 돼지 내장이라는 점도 언급돼 있지 않습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
"(이것만 번역을 안 했다는 건, 번역이 어렵지도 않을 텐데 의도적인 것 아니에요?) 의도적인 게 아니라, 업체마다 하는 일이 가지각색이거든요. 그러면 그 내용을 다 번역을 해서 보낼 수가 없다는 거죠."
행여 본국으로 쫓겨날까 3개월 동안 말도 못 하고 일해왔던 압둘 씨는 참다못해 노동부에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업주가 동의해 주지 않았고, 직권으로 변경하려 해도 '종교를 이유로 한 차별 대우'라는 사업장 변경 요건에는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공장 측은 압둘 씨가 처음부터 종교적 이유로 작업을 거부하지는 않은 데다, 노동부 입장과 달리 사업장 변경을 요청한 것도 몰랐다는 입장입니다.
[정현기 / 공장 운영이사]
"그동안의 과정에서 근로자와 회사가 직접적인 대화를 하지 못하고 서로가 오해했던 부분이 존재하는 것 같고, 이러한 부분들을 이제라도 바로잡고...."
이미 11년 전 국가인권위원회는 인도네시아 국적의 노동자가 무슬림으로서 하기 어려운 순대 제조 작업에 배치됐다는 진정에 대해,
'종교를 고려하지 않은 사업장 배치나 변경 불허는 차별의 소지가 있다'며 시정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2월 충남 천안에서도 돼지고기 가공 공장에서 일하게 된 우즈베키스탄 무슬림 노동자 2명이 노동 당국에 진정을 제기하는 등 비슷한 일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정영섭 활동가 /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사업장 변경이 사업주 동의 없이는 하기가 어렵게끔 제한돼 있어가지고, 그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고요. 차별에 해당한다고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되는데 고용센터에서 그렇게 해주고 있지 않는 것이죠."
중소기업 고용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국이 늘고 있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문화적 존중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입니다.
MBC 뉴스, 허현호입니다.
영상취재:김종민
그래픽:문현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