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MBC 자료사진]
"킹크랩을 사오라"는 등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던 농협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가운데, 괴롭힘이 없었다고 판단한 공인노무사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 해당 노무사가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했고, 편향적인 조사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사측이 선임한 공인노무사 "갑질 아냐"
전북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공인노무사법상 비밀 엄수 위반 혐의로 노무사 A 씨를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오늘(21일) 밝혔습니다.
A 씨는 2022년 10월부터 한 달여 동안 장수농협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조사하며 노무 활동 중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노무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상 알게 된 사실을 타인에게 누설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A 씨는, 장수농협의 선임을 받아 지난해 10월부터 한 달여 동안, 올해 1월 12일 극단적 선택을 한 장수농협 직원 B 씨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조사했습니다.
조사를 마친 A 씨는 장수농협 측에 "B 씨가 주장한 행위는 근로기준법상의 직장 내 괴롭힘 성립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했습니다.
장수농협 조합장은 "노무사의 무혐의 판단 의견과 장수농협 심의위원회 전원의 무혐의 판결에 따라 혐의없음 결론을 선포한다"며 사안을 종결했습니다.
■노무사-가해자, 지인 관계에 편향조사도 드러나
그러나 고용노동부 전주고용노동지청의 특별 근로감독 결과는 A 씨의 판단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고용당국의 조사에서 노무사 A 씨는 가해자인 농협 임원과 친분이 있는 지인 사이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는 A 씨와 농협 임원들이 B 씨의 신고에 대해 ‘편파적인 심의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농협의 임직원들은 숨진 B 씨에게 면박을 주는 발언을 하거나 27만 5000원짜리 킹크랩을 사 오라고 요구해 실제로 받아내는 등 괴롭힌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노동부는 공인노무사회에 A 씨에 대한 징계도 요구했습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청년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사측이 편향적으로 조사해 사실을 은폐하고 오히려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로,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B 씨는 결혼한 지 불과 석 달 밖에 되지 않은 올해 1월 12일 자신이 일하던 농협 근처에서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유서에 "열심히 해보려 했는데 사무실에서는 휴직이나 하라고 해서 (힘들었다)", "이번 선택으로 가족이 힘들겠지만,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힘들 날이 길어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등의 내용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