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연가

40년전 어릴때 어머니는 장날이면 돈될만한 콩이며 참깨 곡물을 머리에 이고

논두길을 걸어 부안읍내 장에가는 어머니를 따라가겠다며 뒤따라 나설때면

 

"아따 참말로 저것이 시방 거그가 어디라고 따라가겠다는 것이여.

우리 용기 집 잘보고 있으면 이 애미가 집에올때 샌디과자랑 사탕 사다줄랑께

어여 후딱 집에 가잉."하시며 아무리 얼래고 달래봐도 장날 구경을

따라나서곤 하였지요.

4일과 9일날 열리는 부안읍내 장날이면 시골버스 안은 시끌벅쩍했지요.

정읍댁이 이웃에 사시는 궁월댁에게

 

"어매 강아지 본께 토실토실 허니 잘 키웠는디 야들 팔면 돈조께 만지겄구먼."

하시자 궁월댁이 긴 한숨을 몰아쉬며

"아따 속모르는소리 말어. 나 속터져서 못살겄구만 허구한날 술독에 빠져사는

영감이 그 좋아하는 술도 마다하고 밥도 잘 안먹고 혀서 한약방에 약한채 지러가려고

장에 가는구먼."하시며 연신 당신 옷소매로 땀을 닦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상자속이 답답했던지 장닭한마리가 나와 꼬꼬댁 꼬꼬댁 거리며 버스안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잠시도 쉴틈이없으신 우리 어머님도 장날 만큼은 얼굴에 분을 바르고 곱게 차려입으신

어머니의 하얀얼굴은 회색빛처럼 참 고우셨습니다.

시장에 도착하면 길바닥에 보자기를 펴놓고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 한분이

 

"아따 이것조께 구경해봐. 이 늙은이가 직접 텃밭에서 직접 키운 시금치 오이인디

싸게 많이 줄랑께. 쪼께 팔아주더라고."외치시는 채소장사 할머님이 정겨웠습니다.

어떤이는 생활에 회이를 느끼고 나태 해질때면 시장에 간다고 하는데 두다리도 없는

몸을 고무튜브에 이끌고 땅바닥에 엎드려 고무장갑 고무줄은 팔고있는

젊은이의 모습도 보이고 집을떠난 아들을 위해 떡을 만들어 파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이며

생선 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생선장수 아주머니의 때묻은 앞치마를 바라보며

사람들 틈에 끼어서 물건들이 그득 쌓은 곁을 걸으면 저절로 생활에 대한 의욕이

치솟곤 하였지요.

장날이면 아버지는 신문지에 둘둘말은 돼지고기를 덜래덜래 들고는

뭐가그리 좋으신지 술에취해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님을 싣고...♪동네가 떠나가도록

노래를 부르고 오시는 날은 괴기맛을 보는 날이었습니다.

지금은 몇분만 버스를 타고 나가면 구경거리가 많지만 그때는 장날이 유일한

구경거리였습니다. 어머니 몰래 곶간에서 참깨, 쌀을 퍼다가 읍내 곡물전에 팔아

그돈으로 맛난 자장면도 사먹고 옹기를 파는 역 공터에서는 으래 약장수가 자리를 하고

 

"자~ 이 약이 뭐냐. 지리산에서 직접 캔 약초와 뱀을 고와 만든 약인데 허리아픈대, 무릎 관절이

안좋은대 한번 먹어봐."하며 길다란 막대기에 솜뭉치에 불을붙혀 입안에 넣는 모습을 보며

놀래 두손으로 두눈을 가려 한참있다 떠보면 예쁜 여자아이가 다리를 일자로 벌리고

뒤에 놓여있는 접시를 허리를 꺾어서 들고 올라오고 색동옷을 입은 원숭이가 재주를 부리면

사람들은 신기한지 박수와 환호성을 지르면 약이든 바구니를 아가씨가 들고는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며 약을팔곤 하였죠.

이제는 잘 정돈되고 현대화 시장으로 변해 모든게 편하고 좋지만 어릴때 주 5일장날이

참 정겨웠고 비가오는날은 온통 진흙투성이고 오랜만에 예쁘게 차려입은

시골아가씨의 고운옷을 모두 더럽히고 하얀 고무신마저 붉게 물들이고 손녀를 위해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옷을 고르시는 할머니의 얼굴은 사뭇 진지해 보이기도 했지요.

다들 제각기 바쁜 얼굴로 물건을 사고파는 여인들의 모습이 한국 여인네들의

참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매장에서 단정하게 차린 점원아가씨의 어색한 미소보다도 아무렇게나 땅바닥에

물건들을 펼쳐놓고

 

"자~ 시금치, 오이 사세요."를 외치는 장사꾼 할머니들의 얼굴들이 한껏 정답고

깎아달라는 손님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아따 가져가시기랍."하며 아저씨의 너털웃음이 더 구수하고 정겨워 보였습니다.

갓 시집온 새색시나 친정을 멀리둔 어머님들은 이날이 유일하게 친정댁의 소식을

들을수있는 날이었고 이빨이 모두 빠져 볼이 오목한 할머니의 손을 잡고 친정댁의

안부를 묻는 새색시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내 어릴적 시골장날이 엊그제 일인것 같은데

이제 머리에도 히끗히끗 눈서리가 앉아있지요.

며칠이면 부안읍내 9일장날인데 진작에 젖을 땔때가되었어도 어미젖이 피가날정도로

어미젖꼭지를 빨아대는 강아지를 팔러 장에 가봐야겠습니다.

40년전 어릴때 그 추억을 떠올리며 자장면 한그릇 사먹어야지 생각을 하니

마냥 어린애마냥 마음이 설레이네요.

 

추신

정말 오랜만에 들렸네요. 이 사연 소개되면 나훈아 / 흰구름 가는길 노래 부탁드립니다

 

전주여성시대가 있어 사는게 신나는 부안에 애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