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점심을 먹고 있자니 전화벨이 울리기에 받아보니 이웃에 사는
정읍댁 할머니의 전화였습니다.
"여보세요. 나 정읍댁인디 우리 양반땜시 속터져 못살것어.
시방 가게 여자가 전화왔는디 우리 양반이 술취해서 가게에 있다고
누가 와서 데려가라고 연락이 왔는디 지비헌티 자꾸 이런 부탁해서 미안헌디
어쩌 민수 아빠가 쪼께 댕겨 올랑가?"하시기에 대충 점심을 먹고는
잠바때기 걸쳐입고 대문을 나서는데
"양상한 감나무 가지에 마지막하나 남은 감나무 잎 하나가 모처럼
따듯한 겨울햇볕 이끌려 담벼락 위에 걸텨앉아 쉬고있는 모습을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저 멀리 길목에서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첫눈이 내리는날 안동역 앞에서...♪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쩌렁쩌렁 울리는 노래소리가 나는쪽을 향해 가보니
술을 얼마나 드셨는지 사람도 몰라보시고 운동화 한짝은 어디에 두었는지
한짝만 신고 전봇대를 붙들고는 소변을 보시며 비틀거리시는
어르신께 다가가
"어메 참말로 점잖은 어르신이 대낮에 뭔술을 이렇게 많이 드셨다요.
어디 이몸으로 혼자 걸을수 있겠서랍?"했더니
"이게 누구여. 목소리 들어본께 궁월댁 아들 용기구먼. 어이 자네 나랑 시방
저그 가게가서 술한잔 할까?"하시기에 겨우 달래 등에업고 집에가는데 펑펑우시며
"어이 용기 나말이여. 요즘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살수가 없어 술을 마시는디
내 가슴 여그가 아파도 너무 아프구먼."하시며 주먹으로 당신의 가슴을 치시며
펑펑우시는 어르신을 등에업고 집에 가는데 저까지 눈물이 납디다.
제가 일곱살때였습니다. 저보다 일곱살많은 이웃에 사는 수님이 누나가 있었는데
그 누나가 제 등에서 흐느껴우시는 어르신 딸이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국민학교 졸업하고 입 한술 덜고자 우리집 허드렛일 돌봐주며 그때 두살이던
동생 용만이를 봐주며 함께 살았었지요.
그날도 마을어귀 시원한 당상나무 그늘에서 용만이는 땅에 내려놓고 한쪽 고무줄은
당상나무 위에 묶고 나머지 한쪽은 나보고 두손높이 들고 서있게 하고 누나는 친구들과
♪금강산 찾아자가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철따라 갈아입는 옷...♪
노래를 부르며 폴짝폴짝뛰며 해가는줄 모르고 고무줄놀이에 빠져 흙투성이가 된
용만이를 업고 집에가니 들에 나가 일하고오신 엄마가 저녁밥도 안해놓고
어디 쏴댕기다가 이제야 들어오냐고 야단을 치면 아무말도 못하고 부엌에 들어가
저녁밥을 하던 수님이 누나가 일년전 다시는 오지못할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누나가 15살 되던해 부산 고무신공장에 취직해 월급 받으면 동생들 학비 대주고
시골집에 송아지도 사주고 밭도 사주던 누나였는데 50이 넘도록 결혼도 안하고
나 자신보단 오직 내 부모 형제를 위해 자기 몸 헌신하며 살던 누나가 급성 간암 진단 받은지
3개월만에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 따님이 애처롭고 보고잡혀 날마다 술로 마음을 달래는 정읍 어르신이
제 가슴을 아프게 하네요.
수님이 누나 유골을 그렇게도 못잊어 하는 고향집이 훤히 내다보이는 집앞 안개산
따뜻한 양지바른곳에 뿌려주고 산을 내려오는데 하늘도 슬펐는지 눈물을 흘리더군요.
어르신을 방에 눕혀 드리고
"어르신 진지도 안드시고 건강까지 헤쳐가며 날마다 술만 드시는 모습을 하늘나라에서
따님이 보시면 마음이 편하겠어요?"하니까
"시끄럽다.
♪안오는 건지 못오는 건지 대답없는 사람아 안타까운 내마음은 녹고 녹는다...♪
그 다음가사가 뭣이더라..."혼자 중얼거리시며 스르르 잠이 드시는 모습을 보며
집에왔는데 어릴때 동생 용만이를 수님이 누나가 등에업고 내 손을 붙들고 놀러다니던
그 시절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리워 지네요.
추신
작가님 저는 사실 사연보다 제가 듣고싶어 하는 노래가 더 듣고싶어 사연 올리는데
될수있으면 신청한노래 진성/안동역에서 듣고자픈데 꼭 부탁드립니다.
부안에서 이시간이 있어 행복한 애청자 김용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