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부지

 내 나이 15살 중학교 2학년때 였습니다.
그날도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기위해 강둑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저멀리 풀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데 왠지 귀에 익숙한 목소리인것 같아
살금살금 소리나는 쪽을 가서 보니 세상에나 이게 뭔일이랍니까
초등학교때 공부도 지지리도 못하고 누런코를 옷소매로 닦고다니던 친구 영식이
엄니 과부 봉암댁이 우리 아부지 무릎에 누워있는 영식이 엄니헌티 우리 아부지가
 
"아따 참말로 요즘은 밥을 먹으나 잠을 자나 자네가 눈에 아른거려 환장허것당께."
하면서 엉덩이를 토닥여주자 봉암댁이
 
"자기 그럼 안방마님 궁월댁이 이뻐? 내가 다 이뻐?"하며 애교를 떨자
 
"아따 그걸 말이라고 시방 묻고 그런당가 참말로. 일만하는 무식쟁이 뚱땡이를 어디에다
비교를 한당가. 아이고 참말로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나한테 왔는가 몰라."하면서
그저 좋아서 헬렐레하며 좋아 죽습디다. 마음같아서는 아부지 지금 여기서 뭐허고 계시냐며
따져묻고 싶었지만 아는채 했다가는 뒤지게 맞을것 같아 못본척 뒤 돌아 오려는데
봉암댁이 우리 아부지한티
 
"자기야. 토요일날 우리 영식이 여름방학혀서 경주 저그 외갓집가고 집에 시어머니만 있응게
저녁에 우리집에와잉."하는데 정말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살림에는 통 관심이 없고
아침밥 먹고나면 읍내 다방에 가서 죽치다가 저녁에 들어오는 아버지가 말입니다.
툭하면 바람나 논팔아가지고 집나갔다가 1년만에 들어왔다가 조용히 며칠 잘 지내면
이젠 속차렸는가보다 생각하면 땅문서들고 윗동네 과부댁 꼬셔 집나갔다가 돈떨어지면
들어오는 아버지가 정말 원망스러워 애꿎은 돌멩이를 냅다 발로차버리며 걸어가고 있자니
저멀리서 우리 엄니가 누에에게 먹일 뽕잎을 리어카 가득 싣고 힘들게 끌고 가는 모습을 보니
속에서 천불이 나서
 
"아따 엄니는 아부지 밖에서 허고 댕기는거 보면 화도 안나는가? 이런 힘든일은 아부지가 해야지
어째서 맨날 엄니만 죽살나게 일만한당가."하며 화를내자
 
"야 이썩을놈아. 그 화상이야기 하지도 말어. 말만들어도 지긋지긋 허구먼. 그저 잘하는것은
그거하나 잘하지. 그거까지 못하면 내가 뭔재미로 살것냐."하시기에
 
"아따 엄니 그것이 뭔디?"하고 묻자
 
"아따 쬐깐것이 뭘알려고 그랴. 어른들이 밤에 하는거 있어."하며 말끝을 흐리시는 엄니가 안쓰러워
리어카를 힘차게 밀며 집에오니 집을 지키고 있는 불독 우리집 개를 보니 번뜩 좋은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집에 가는중에 보니 밭에서 콩밭풀을매고 있는 영식이 할머니한테 가서
 
"아따 할머니 뜨거 죽겄는디 저녁때 풀메지 뭔이 뜨근날 풀메고 그런다요. 저그 윗동네 과부 전주댁
알지랍? 그여자 바람나 자식버리고 도망갔다는디 어찌드라도 그런일이 없게 저녁이면
대문단속 잘 해야 한당께요."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젊은나이에 과부가 되서 혹시 바람나 우리 영식이 버리고 도망갈까봐 걱정이구먼."
하시기에 우리 아버지 과부 봉암댁네 집에 가는 토요일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하필 그날 우리 엄니 부안읍내 나가 살이 실한 토종닭한마리 사와서는
인삼 마늘 넣고 푹 삶아서는 우리 아버지만 드리는데 저요. 속에서 천불이 나 죽는줄 알았습니다.
우리 엄니께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우리 엄니는 바보천치인가벼. 왜 하필 이날 토종닭 삶아주는거여.
이거먹고 어디가서 씨알때없이 힘쓰고 올텐디. 그것도 모름서 그런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닭다리 하나 쭉 찢어 입에 막 넣으려는데 우리 엄니 내 깊은속도 모르고 뒷통수를 탁 치시며
 
"아따 이 썩을놈아. 누가 너 쳐먹으라고 삶았는줄 알어? 너그 아버지 요즘 기력이 하도 없는거 같아
힘조께 보충하라고 삶았구만 하시며 화를 내시기에
 
"어메 참말로 엄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가 이 닭다리 먹고싶어서 시방 먹는줄 알어?"하며
울먹이는데 우리 아버지 기분이 그렇게도 좋은지 포마드 기름을 머리에 멋지게 바르고
향수를 어찌나 온 몸에 떡칠을 하는지
 
"아따 아부지 애지간히 쳐 바르시지랍. 얼마나 뿌렸는지 똥구릉네가 진동을 허구만."하며
핀잔을 주는데도 온갖 멋을내며
 
♪청춘은 봄이오. 봄은 꿈나라 언제나 즐거운 노래를 부릅시다...♪노래를 부르는 아버지 모습을 보며
 
저요. 영식이네 누렁이를 담 모퉁이에 묶어두고 대문을 걸어잠그고
영식이네 화단에 숨어 어여 우리 아버지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저녁이라
어찌나 모기때가 극성인지 저요. 모기때에 물려 죽는줄 알았습니다. 이럴줄 알았으면
긴팔 바지를 입고 올껄 후회가 막심하더군요.
갑자기 담 위에 시커먼 물체가 올라오더니 아니나 다를까 하필 뛰어내린다는게
잠을자고 있는 개위에 덜커덕 떨어지자 얼마나 화가나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바로 얼굴 험악한게 생긴값 합디다. 우리 아부지 놀래 기겁을 하며 다시 담벼락을 잡고
기어 올라가며
 
"어메. 이게 뭣이당가 그 닭고기 쳐먹었으면 각시한테 힘쓸것이지 내가 뭐헐라고 여그와서
이런꼴 당하는가 몰라. 어메 사람죽네 사람살려. 사람살려랍!"하며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지르자
그동안 우리 아버지한티 한이 맺힌 내 분풀이를 해줍디다.
우리 아버지 엉덩이부분 바지자락을 물고 늘어지며 어흥거리자
 
"아따 사람살려! 사람 죽는당게랍! 엉엉엉..."하며 울기까지 하자 봉암댁네 식구들 놀래
마당불을 켜고 사람들이 나오자 그때서야 메리가 물고있던 바지자락을 놓아주자 우리 아버지
잽싸게 담벼락을 넘어 도망가고 영식이 할머니가 오셔서는
 
"아따 어떤놈인가 몰라도 엉덩이 성한것 없을것이구먼. 얼마나 놀랬으면 옷에다 생똥까지 쌋것냐.
아이고 내속이 시원허다. 하시며 잘했다며 메리 머리를 쓰다듬어주시자 봉암댁은 두눈을 부라리며
메리를 원망하는 눈치를 주는데 아무튼 속이 시원했지만 우리 아버지가 많이 다치셨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이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이런일을 당하고도 얼마후 우리집 논문서 들고
끝내 이 봉암네 과부댁 데리고 집을 나가 늙고 병들어 봉암네에게 버림바다 죽을때가 되어서야
집에 오시고 오신지 한달만에 65세에 하늘나라로 가셨는데 이제야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싶네요.
 
"아부지 그때 동네 과부댁네 담넘어 갔다가 개에게 혼찌검이나 담넘어 도망갔던일
그개 묶어놓은 범인은 저였다고 오랜세월이 흘러 이제야 고백합니다."
그리도 그런 아부지가 무슨 정이 있다고
가끔씩 그때 그일이 떠오르면서 아부지가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잡네요.

작가님 살아생전 우리 아버지가 즐겨부르시던 남강수/그 골목
                                                              남강수/추억의 소양곡
                                                              손인호/비내리는 호남선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부안에서 전주 여성시대가 있어 사는게 신바람나는 애청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