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여름 피서 이야기

이글 사는곳 이름 밝히지 마시고 그냥 김제에서 민수아버지 라고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내나이 24살 아마 이맘때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가을에 은행복귀를 앞두고 있던 어느날
뽕밭에서 누에에게 먹일 뽕잎을 리어카 가득 싣고 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르는 신작로 길을
땀을 뻘뻘흘리며

"아따 엄니 힘들어 죽것구먼 힘조께 써서 리어카 조께 밀더라고. 참말로 나 짜증나서 못살것어.
넘들은 계곡으로 바다로 물놀이 가는디 나는 집구석에서 이게 뭔꼴이다요." 하며 성질을 부리니

"아이고 참말로 애미 일조께 도와주는게 무슨 클 위세라고 오사게도 염병 지랄허네. 너 군대에 있을때
이 썩을놈아 이 애미는 혼자 이 리어카끌고 댕기며 힘들게 일했는디 사내놈이 뭐 힘들다고 지랄이여."하며
야단을 치시기에 아무말도 못하고 투덜투덜 리어카를 끌고 집으로 가고 있자니 사람 키만큼이나
훌쩍 자란 옥수수 풀을매고 있는 정읍댁을 향해 우리 엄니가

"아따 정읍동상 이 더운날 옥수수 풀을매고 있당가. 이따가 시원헐 저녁때 풀매지."하니까

"아이고 성님 근게요. 이 옥수수 익을때쯤 부산서 고무신공장에 댕기는 우리딸 점순이가 함께 일하고있는
아가씨 하나 데리고 여름휴가를 온다고 허기에 우리 새끼 맛나게 쩌 먹일 생각을 하니 힘도 안든당께요." 합디다.
점순이는 나보다 두살어린 후배였는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저그 큰언니가 댕기는 부산 고무신공장에
취직을 했거든요.

사내가 되어가지고 이 뜨거운날 누에 뽕잎이나 따고 리어카에 뽕잎이나 싣고 댕길게 아니라 나도 돈벌어
이 여름 갈매가 끼룩끼룩 울고 태양이 이글거리는 변산 해수욕장에 점순이와 부산써 함께온 아가씨
꼬셔 물놀이 댕겨와야지. 마음을 먹고 부안읍내에서 아이스깨끼를 떼어다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반바지하나 걸치고는 변산 해수욕장 모래사장을 거닐며

"아이스깨끼 가 왔습니다."를 외치며 아이스깨끼 장사를 하는데 그때는 늘씬한 키에 머리숱도 수북허니
한 인물혀서 그런지 아가씨들이 아이스깨끼를 잘 팔아주더군요.
아침밥 처먹고나면 어디갔다가 해가질 저녁때 집구석에 들어오냐며 야단을 치시는 우리엄니 눈치를 보며
열흘정도 아이스깨끼 장사를 해서 번 돈으로 우리엄니 이쁜 꽃무늬 양산 사드리고 휴가갈때 쓰려고
선글라스 수영복을 사놓고 오매불망 점순이 휴가오는날만 기다려 점순이가 휴가오는날 큼직한 수박 한덩어리
사들고 점순이네 집에 놀라갔더니 이게 뭔일이랍니까.
왠 거구의 여인이 부엌에서 나오기에 놀래 정읍네 아주머니께

"아따 아까 금방 부엌에서 나온 아줌마는 누구다요. 하고 물으니."

"음, 미순이 말이여? 우리딸 점순이랑 부산서 고무신 공장에 댕기는 아가씨인디 쳐다만 봐도 숨이 꽉 막히지.
너 우리 점순이랑 휴가온아가씨랑 물놀이 간다고 아이스깨끼 장사 혀서 돈벌었담서. 이노릇을 어쩐다냐.
이런 시골서 힘조께 쓰고 하려면 저런 아가씨가 제격인디. 어쩌 인물 따지지 말고 내가 니 짝으로
소개 해줄까나?"하는데 저, 정말 신이 원망스럽습디다. 제 심정도 모르고 점순이는 그 뚱땡이아가씨를
소개해주는데 사내보는눈은 있어 그 아가씨 저를 겁내게 좋아합디다.
그날 저녁 키타를 들고 동네 저수지둑에 놀러가서

♪흥에 겨워 여름이 오면 가슴을 활짝 열어요. 넝쿨장미 그늘속에도...♪ 노래를 불러주니 좋아죽더군요.
그놈의 정이뭔지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외모는 볼것없어도 심성은 착합디다. 이곳 시골에서 젊은 여자라곤
60넘은 할머니들만 보다가 뚱땡이 미순씨가 여자라고 데리고 변산 해수욕장에 물놀이를 갔는데
다른 아가씨들은 늘씬한 몸매에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모래사장을 거닐고 있는데 미순씨는 점순이 엄니
일복 큼직한 몸빼바지를 입고 그 육중한 몸을 이끌고 검은 튜브를 거뜬하게 들고 당당하게
바다로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저요. 물놀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마음을 달래며 함께 물놀이를 하고 집에왔는데
휴가를 마치고 부산으로 떠나는날 전 멀쩡한데 헤어지기 아쉬워 눈물을 흘리며 편지할테니 꼭 답장해야한다며
떠나던 미순씨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네요. 그 후로 26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번도 변산 해수욕장에
물놀이 한적이 없답니다. 어느 하늘아래서 시집가서 아들딸낳고 잘 살고 있겠죠.
항상 이맘때가 되면 그때 그 추억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곤합답니다.

오늘따라 이정선/여름 신청합니다.

전주 여성시대가 있어 사는게 신나고 즐거운 애청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