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의 변천사.....감사해요

안녕하십니까?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버이의 희생은 가이없어라라는 노래가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어릴때는 부모의 도움을 받고 자라면서 이제는 내가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자식 9남매를 어떻게 키우셨을까?
어머님께 효도하는 것보다는 내 아내와 자식을 키우는데 온 정성을 다하면서 가끔은 어머님의 깊은 사랑을 잊고 지낼때가 있다.
 
시골 어머님을 뵈러 갈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따르릉--전화가 왔다. 내 핸드폰에는 이송엽여사라는 이름이 보이자 얼른 받았다. 어머니 저에요.. 그래 오늘 올래 하시면서 내려오다가 시장에 들러 여름 양말 두 켤레만 싸오너라 하셨다.
 
평상시 내려갈때 어머님에게 전화해서 필요한 것 없으세요. 하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하셨다. 그래도 우리는 내려갈때 어머님이 드시는 음식 그리고 생필품등을 싸서 내려간다. 그런데 왠일인지 오늘은 어머니께서 직접 무엇을 싸오라고 하신것은 처음이었다.
 
한편으로 고맙고 반가웠지만 혹시나 어머니께서 총기를 잃어가는 것이 아닐까 걱정근심을 하고 내려갔다. 아내와 차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버이 날도 되고 그래서 옷이라도 싸가지고 가자고 했는데 그냥 가자고 했다. 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지 않으신 우리어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그냥 가서 어머님은 모시고 나오자고 했다.
 
바다위의 긴 다리를 건널때면 항상 생각이 난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배를 타고 고향으로 갈때는 배 앞에서 고향을 그리며 가고, 돌아 올때는 배  뒤에서 멀어지는 고향을 바라보면서 혼자 살고 계신 어머님을 생각하면 아무 탈 없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라고 마음속으로 빌면서 돌아서면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런데 이제는 긴 연육교가 설치되어 마음만 먹으면 금방이라도 달려 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뿐 자주 내려가지 못한다.
 
어머니 집 모퉁이에 도착하니 어머님은 나와 계셨다. 점심 먹고 간다고 했는데도 같이 점심 먹겠다고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굶고 계셨다. 자식이 뭐길래 그토록 기다리실까?
해 드린것은 없는데 말이야.
어머님을 모시고 육지로 나오면 어머니 장어땅 드실거에요.. 그러자 어머니께서  큰 애가 와서 고기를 쌓주었는데 가서 먹었다 하셨다. 전과는 달리 어머님의 의사표현을 하셨다.
 
나는 어머니께서 이가 좋지 않아 탕을 드실거라 생각했는데 고기를 드신다고 해서 퓨한편으로 걱정을 했다. 사실 위암 말기이면서 먹는것을 마음대로 잘 드시지 못해 노인정에 가셔서 음식물을 먹다가 토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고기를 드시는 것이 걱정이 되었다. 식당에 도착하여 연한 부위의 고기를 혼자서 2인분을 드셨다.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맛있게 드신 어머님께 감사했다. 자주 찾아 뵙지 못하고 혼자서 사시면서 뭘 해드실까? 전화 할때마다 어머니 식사했어요. 뭘 해서 드셔요라고 물으면 나 적정하지 마라. 이것 저것 해서 먹는다. 하셨다. 
 
그래 고향 집으로 방문하면 이가 좋지 않아 김치도 잘게 썰어 놓고, 김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신 우리 어머니....위암 말기로 자면서 가끔 일어나 복통을 호소하시는 모습을 볼때면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마음만 편하게 해 드리는 것 외에는 없다. 요양원에 계실때보다 더 좋은 호전반응을 보인다. 의사 선생님도 크게 전위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도 하셨다.
 
혼자 시골에 살고 계시지만 어머님은 마음은 편하다고 하셨다. 내가 너희들 곁에 가면 너희들이 걱정하고 신경을 쓴다고 하시면서 내 걱정은 하지말라고 하신 우리어머님.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난 뒤 시장에서 어머님 여름 양말 10컬레를 싸 드리고 옷을 싸드리려 하자 옷이 많이 있으니 싸지 말라고 하셨다. 작년에 우리가 싸드리고, 올 초 누님이 옷을 싸 보냈다고 했다. 시장을 본 다음 술을 싸서 아버님 산소에 가서 우리 가족은 인사를 하자 어머님은 아버지에게 아픈 나를 데리고 가라고 하시면서 우셨다.
혼자 외롭고 아프고 힘든 순간을 지내는 것이 참으로 힘든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계신다. 어머님은 자식들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자식들 곁으로 가지 않고 내 집이 좋다고 하신다. 그말은 우리 자식들 마음 편하라고 하신 말씀이시다. 아들 손자들과 함께 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해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직접만든 카네이션을 가슴에 꽂아 드리고 아내와 아들은 가위바위 보 하면서 어머님의 어깨를 주물러 주는 모습에 어머님은 아들과 며느리의 재롱을 보시면서 즐거워 하셨다. 우리 가족은 어머님과 한 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잠을 잤다. 아침에 어머님은 부엌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된장국에 미나리 무침을 해 주셨다.
 
구수한 된장찌게와 된장 넣어 어머님의 손맛에 아침밥 한공기를 먹고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집에 돌아왔다. 어머님 나이 90이 되면서 이제는 다리에 힘도 없고 노인 전용 유머차를 끌고 가지 않으면 잘 걷지도 못하신 우리 어머님!
 
다음날 전화를 했다. 어머님 식사하셨어요. 그래 이제 먹을라고 한다. 그러시면 내가 정신이 없어 우리 손주 돈 한푼 주지 못했다. 정신이없다. 하시면 안타까워 하셨다. 항상 내려가면 저녁에 손주들에게 용돈을 주신 어머니셨는데 오늘따라 잊어버렸을까? 아니면 돈이 없었을까? 아내가 매월 통장으로 용돈을 넣어 주시는데 찾지 못했을까? 이런 저런 걱정을 해 보기도 했다. 아무튼 총기만 흐리지말고 살았으면 좋겠다.
 
어머님!
아프셔도 힘들게 살고 계신 어머님!
그래도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오래 오래 사셨으면 합니다. 큰 효도는 못하지만 자주 찾아뵙는 것이 이 자식의 도리라 생각합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라고 하는 순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어머님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아프다. 오늘 저녁에도 아프지 말고 편하게 주무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신청곡 :  우리어머님의 유일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 "클레이멘타인
 
             어머님을 생각하면서 듣고 싶습니다. 나훈하 어머님...
 
공풍용
남원시 고죽동 147-3 이그린 아파트 104-1405
 
010-2612-8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