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김치"

친정 엄마가 돌아가신해 겨울이 찾아 왔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김장 준비에 여념이 없었는데, 그때 나는 눈이 안좋아서 안과에 치료 받으러 다녔었다. 치료를 끝내고 의자에 앉아 있는데 지사에 사시는 작은 고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녀냐? 김장은 어떻게 하냐? 시어머니가 해준다냐?"
 "아니오,시어머니 전주 아파트로 이사 가셔서 이제 못해줘요."
 "그래? 그러면 집에 와서 한통 가져 가거라." 
 
나는 이 전화를 끊고 나서 주체 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병원을
나와 길에서도 어찌나 서러운 눈물이 쏟아지던지 친구가 근무하는 약국에 가서 아무말도 못하고 한참을 더 울었다.  TV드라마속에서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고 하염없이 울던 그 장면, 그래서 이렇게 우는구나를 실감했다.
엄마의 부재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장례식장에서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김치 한통에 온 몸으로 울음을 토해내게 만들었다.
 
 친정엄마는 키가 작고 깔끔한 분이셨다. 아버지의 사나운 성정을 자식들때문에 참고
사셨다며 늘 얘기하곤 하셨는데 조용하고 집밖을  잘 안나가셨다.
엄마는 음식을 잘 하셨는데 김치와 나물무침을 정말 맛깔나게 만들어 내셨다.
김치 담가서 간보라며 깨소금 묻혀 입안에 넣어 주시던 엄마의 손길이 너무나 그립다.
그래서 결혼하고 지금 내 나이 마흔 넘도록 엄마가 담가 주시는 갖가지 김치를 먹고
살아 왔다.
 
엄마는 5남2녀의 자식을 두셨는데  오빠들, 언니, 남동생은 멀리 살아 가까이에 있는
나를 의지해 사셨다. 남편과  아이들과 나는 주마다 친정인 오수에 갔고 집안에 있는
밭에 엄마가 키운 여러가지 야채들로  반찬도 하고 부침개도 부쳐 먹으며 10년 넘게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갑자기 찾아온 급성 담낭염으로 인해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계시다 병원 밖을 못 나오고 81세에 돌아 가셨는데 그때 나는 다섯살난 아들이 후두염이 걸려 병원에 입원중이어서 입관식도 못 지켜봤다. 아들을 퇴원 시키고 서울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달려 갔지만 몰려드는 손님 때문에 울 경황도 없었다. 그러다 고모의 전화 한 통화에 오열을 한 것이다.
 
 자식 사랑이 남달랐던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날밤에 우리동네 앞집 아줌마 꿈에 나타나셨는데  빨갛게 양념을 바른 배추 김치를 그릇에  담아 가지고 오셔서 나를 찾는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더니 한포기 주지도 않고 가버리셨다고, 정말 맛있어 보였다고 얘기해 줬다.
 
애기는 둘 낳았지만 뭐 하나 제대로 못하는 딸이 내내 걸렸던지 먼길 떠나면서도 김치를 담아 우리집에 들른 것이다.
 
     아!!, 엄마....
 
  친구가 오래간만에 우리집에 왔는데 대뜸 한다는 말이
 
 "너네 친정 엄마는 너 김치 못 담가줘서 어떻게 눈을 감았다니."   "그러게 말야...."
 
 해마다 김장철이 돌아오면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나고 간절하게 보고 싶다.
 
 "엄마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제 걱정 마시고."
 
 
 
안녕하세요 저는 남원시에서 문화관광 해설사일을 하는 임미녀라고 합니다.
학창시절엔 글을 자주 쓰고 문학소녀로서 활동도 많이 했는데 , 결혼하고 오랫만에
써본 글입니다. 찬바람이 불고 김장철이 다가오니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네요. 그래서 글을 한번 써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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