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만에 ....

아무 연락이 닿지않아 멀리 떨어져 살던 친족을 만나는 것을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저는 생사도 알고 있었고 연락처도 알고 있으면서도 기회가 닿지 않아 어릴때 만나고 중년의 나이에 사촌형제들과의 만남을 이야기해 보렵니다.
 
지난 토요일 대전에서 결혼식이 있어서 바쁘지만 짬을 내어 교회 봉고차를 빌려서 예식장엘 다녀왔답니다.
남원에서 우리 형제자매 8명이 외사촌 동생의 결혼식에 참가했던 겁니다.
저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8남매 자식들은 거의가  자수성가 해서 각기 제짝을 만나 살고있고, 막내의 나이가 서른여덟인데 아직 총각으로 지내고 있지요.
외사촌들도 5남매인데, 일찍 조실부모하였지만  각기 제짝을 찾았고 이번에 막내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우리 형제들이 한번 뭉쳐서 다녀오게되었구요.
외사촌들은 친척이 없어요. 우리 고종사촌들 외에는.
우리엄마,그리고 큰외삼촌. 둘만 연락이 이어져 친족관계가 이어졌던 거구요.
사실 엄마도 4남매였었대요.
우리엄마가 막내였는데, 1940년 생이거든요.
그러니까 일제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자랐겠어요.
근데 엄마는 작은집에서 자라셨대요.
그러다가 언니는 시집을 갔고, 시집살이에 시달리던 언니는 언니가 보고싶어 찾아온 동생에게 뭘라고 여기를 왔냐고 하면서 울었다더군요. 그리고 작은 외삼촌도 처음엔 연락이 되었다가 끊긴 모양이예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때였을 거에요. 여름방학때 외가 식구들이 우리 집으로 놀러왔던걸 기억하고 있어요.
포도를 한상자 사오셨고, 우리들은 냇가에서 물놀이와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던 일이 생각나요. 그리고나서 35년쯤 세월이 흐른것 같아요.
 
결혼식장에 도착하니 혼주 되는 외사촌형님과 신랑인 외사촌동생이 반갑게 맞아 주었고,
중년의 아줌마가 된 세명의 외사촌 동생들이 눈물을 머금고 반가이 맞아 주더군요.
 
마흔살에 동갑내기 를 만나 같이 살기로 한 외사촌 막내 범이에게 페백실에서 한마디 전해주었습니다.
일가 친척이 없어서 고종사촌형인 저도 폐백을 함께 했던 거구요.
"내가 살아봉게 싸울일이 많이 생기는디,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쯤 생각해 보면 덜 싸우게 된다는걸 요즘에서야 깨달았다. 그렁게 배려하는 마음을 항상 지니고 살아라"
한시반쯤 식은 끝났지만 두시간쯤 정담을 나누다가 헤어졌답니다.
 
 
이제 다시 이어진 연락이 계속 이어질수 있게 편지라도 자주 보내야 할것 같아요.
 
그리고 두달정도 소식없던 제가  다시 자판에 손을 올렸으니까 자주 소식나눌까 합니다.
 
남원시 샛터앞길 27 (신정동) 김영수 010-5579-2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