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소박한 창호지 문 ~~^^
올 여름은 유나이도 더웠고 거기에 태풍 볼라벤이 휩쓸고 간 처참한 흔적이 산사에도 남아있었다. 몇 칠전 마음도 울적하여 집에서 가까운 숭림사를 찾았다.
한적한 산사에는 바람과 함께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들렸고 하얀 창호지를 바른 문이 청명한 가을 햇살에 소박한 자태로 방문객들을 맞고 있었다.
난 창호지를 바른 창문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보았다.
농촌들녘 에는 태풍으로 인하여 농작물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걱정이 되었다.
내 어린 시절 찬바람이 불어오면 엄마가 제일 먼저 준비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창문 바르기였지만 놀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무척 하기 싫은 일이었다.
엄마는 장에서 두툼한 한지 뭉치를 사서 벽장에 넣고 날씨가 좋은 날을 선택하여 언니와 날 불렀다.
“용순아~ 오늘 창문을 발라야 한께~ 아침밥 먹고 엄마랑 문짝을 뜯어서 청소를 혀자~ 그리고 용자 너도 언니가 문짝을 뜯어주면 청소혀라~”
“엄마 나 오늘 교회 가야 혀는 디~”
“뭣 ~ 교회가야 현다고~”
“응~ 엄마~ 나 오늘 친구랑 교회가기로 약속혔단께~ 엄마~ 용범이 오빠 시키면 되잔여~왜 오빠는 안 시켜~”
그러자 옆에 있던 언니가
“야는 너가 교회를 가면 나 혼자 어떻게 하라고~ 그렇게는 안 된단께? 교회는 밤에 언니랑 함께 가면 되쟌여~”
난 엄마와 언니의 설득에 교회 가는 것을 포기하고 창호지 바르기 작업을 하였다.
그런데 문 바르기 작업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오빠는 문짝을 떼어 우물가로 가져왔고 나와 언니는 문에 물을 쭉쭉 뿌렸고, 처음에는 재미가 있어서 “ 언니~ 재미있다.”라고 말을 하였다.
그러자 “야~ 너 시방 문짝에 붙어 있는 종이를 찢으니까 재미있지? 문살에 붙어 있는 흙먼지를 떼려면 얼마나 힘든지 모를 겨~ 지금은 재미있다고 웃고 있지~조금 더 혀보란께~” 하며 언니가 거들었다.
언니는 추석 때 마다 지겹게 해 보았던 일이라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교회가려는 나를 붙들고 함께 하자고 꾀었던 것이다.
“용자야~ 너 이리 와 보란께~ 언니가 시방 시범을 보일껀게 따라 혀보란께~”
그리고는 언니는 바가지에 물을 퍼서 입에 물고 문짝을 향하여 뿜어 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하여 나도 바가지에 물을 퍼와 “퓨~퓨~”하며 물을 문짝에 뿜어 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재미있었으나 몇 번을 하고 나니 입 아궁이가 아파왔고 꾀가 나기 시작하였다.
“언니야~ 입이 아파서 못하겠단께~”
“야가~ 이제 문짝 하나 혀고는 꾀병부리는 것 봐~ 빨랑빨랑 물을 뿌려주어야 문살에 붙어 있는 때를 벗겨내기가 쉽단께~ 어서 싸게 싸게 물을 뿌리란께~”
그렇게 하여 문짝에 물을 뿌리고 난 다음 쇠꼬챙이로 문살에 붙어 있는 먼지를 하나하나 제거하는데 힘도 들었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아 금방 싫증이 나기도 하였다.
“엄마~ 너무 힘들어~ 물만 뿌린 다음에 창호지를 바르면 안 될까? ”
“이것아~ 안 돼? 그 상태로 창호지를 바르고 나중에 보면 지저분 혀서 안 된단께~ 쬐께 힘들어도 먼지를 께끗혀게 없에야 되는 겨~”
엄마는 힘들어 하는 나와 언니에게 “엄마가 쬐께있다가 개떡 쪄줄껀게 빨리빨리 혀자~” 하며 나와 언니를 달래주시었다.
긴 토방을 베게삼아 문짝을 경사지게 놓은 다음 어느 정도 물기가 마르면 문짝을 마루에 올려놓고 부드러운 빗자루로 풀을 듬뿍 묻혀 창호지에 풀칠을 하면 언니와 난 하얀 창호지 문짝을 들어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집 모퉁이 그늘진 곳으로 운반하여 창호지가 마르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문짝을 들고 토방에서 마당으로 내려오면서 그만 무릎을 다치고 말았다.
“아~ 엄마~”
“아~ 이것아~ 넌 언니가 돼 가지고~ 동생하고 손발을 맞추어야지~ 너만 내려가면 어떻게 혀~ 용자 무릎에 피나는 것 보란께~ ”
“아~ 우리 강아지 많이 아파~”
“응~ 엄마~ ”
“용순아~ 너가~ 텃밭에 가서 쑥을 좀 뜯어와야겠다. 얼른 뜯어와라~”
언니는 죄인처럼 엄마가 시키는 대로 밖으로 나가 쑥을 뜯어왔고, 엄마는 도구통에 쑥을 넣고 찢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용자야~ 엄마가 무릎에 쑥을 붙이면 쬐께 따끔꺼릴껀게 참거라~”
“응~ 엄마~ 나 울지 않을 란께~ 아파도 참을 겨~” 라고 이야기를 하였지만 몹시 따가웠고 엄마는 피나는 무릎에 쑥을 붙이고 헌 넌닝그 셔쓰를 가위로 잘라 동여매었다.
난 엄살을 부리면서 마루에 앉아 있었고, 언니는 끙끙거리면서 엄마가 창호지를 바른 문짝을 들어 집 모퉁이로 옮겨야만 하였다.
담벼락에 걸쳐있는 문짝들이 마치 흰 돛단배처럼 바람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언니~ 창호지가 마른께 참말로 이쁘다. 오늘저녁에는 잠이 잘 올 것 같은 디~”
언니와 난 창호지가 장구소리를 내는 문짝을 들어 문고리에 걸었고 엄마는 문짝에 문풍지를 바르면 겨울준비가 완료되었다.
문풍지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효과적으로 막아 주었기에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였고. 문풍지를 바르고 나면 방에서 밖을 볼 수 있는 투명한 유리를 문짝에 붙이였다.
지금이야 유리가 흔하여 공해가 되다시피 하지만 내 어린 시절에는 손바닥 만 한 네모진 유리가 참 귀했었다.
그래서 문짝에 창호지를 바르기 전에 제일먼저 유리를 떼어서 안전한 곳에 잘 보관하였다가 마지막에 창호지를 예리한 칼로 자르고 난 다음 방에 앉아서 밖을 잘 볼 수 있도록 문짝에 유리를 붙이었다.
유리바르기가 끝나면 나와 언니는 장독대에 피어있는 예쁜 꽃잎을 따와 문짝 이곳저곳에 붙이었고,
“용자야~ 너 저기 장독대에 피어 있는 빨간 코스모스 꽃을 따와라~ 언니가 우리 방 창문에 코스모스꽃잎을 붙일란께~ ”
“응~ 알았어~ 나가 싸게 가서 코스모스 꽃을 따올란께~ 쬐께만 기들려란께~”
그렇게 하여 난 언니가 시키는 대로 코스모스 꽃을 따왔고, 언니는 문짝에 풀칠을 하고 코스모스 꽃잎을 펼쳐 조심스럽게 붙이였다.
“언니야~ 참 이쁘다~ 언니 나도 한번 혀보면 안 될까? 나도 혀보고 싶단께~”
“야~ 넌 안돼야~ 잘못혀서 창호지가 빵꾸나면 엄마에게 혼난 단께~ 그란께 넌 언니가 하는 것만 보고 있어라~”
그렇지만 너무도 하고 싶어서 언니가 손 씻으러 간 사이 문짝에 풀칠을 하고 꽃잎을 붙이는데 꽃잎이 시들시들하여 잘 펴지지가 않았다.
난 언니가 오기 전에 작업을 마치려고 서둘렀으나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가 않았다.
“아따~ 요것이 잘 안 된단까~ 언니가 오면 못혀게 할껀디~ 어매 미치겠네~ ” 하며 안 절 부절하면서 작업을 마치었는데 이빨 빠진 것처럼 꽃잎이 빠져있었다.
언니가 우물가에서 손을 씻고 방으로 들어와 내가 붙인 꽃잎을 보고는 “야가~시방~ 이것이 뭣시란까~ 이렇게 풀을 많이 쳐 바르면 나중에 창호지가 마르면 주름살처럼 울퉁불퉁 혀진단께~”
난 언니가 시키는 대로 코스모스 꽃잎을 뜯어내기로 하고 조심스럽게 작업을 하는데 그만 창호지가 구멍이 나고 말았다.
“언니야~ 어떻게 혀~ 구멍이 났어~ ”
“이것아~ 그란께~조심혀서 혀라고 혔지 안혀~ ”
난 언니가 시키는 대로 장독대에 가서 빨간 코스모스 꽃잎을 따왔고 언니는 구멍난 곳에 창호지를 바르고 그곳에 코스모스 꽃잎을 붙이었다.
방바닥에 누워 등잔불 아래 창문에 붙어있는 희미한 코스모스 꽃잎을 바라보며 행복을 만끽하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버렸네, 지금은 산사나 한옥마을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정이 듬뿍 묻어있는 정겨운 하얀 창호지 문, 그 때 그 시절이 그립고 그 시절 파란 하늘아래 하얀 창호지문들이 토담너머로 흰 속살을 보여주었던 아름다운 풍경에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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