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서 나는 어쩌라고

이웃에 사는 사촌형님 큰아들 결혼식이 서울에서 식을 올리기 때문에
세벽일찍 일어나 누나 동생들에게 나눠줄 고춧가루, 참깨, 김치, 고추장, 마늘이든
다섯개나 되는 큼직한 박스를 힘들게 경운기에 싣고, 마을 회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관광버스에 실어놓고 집에왔는데 집사람과  아내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아따 엄니 곧 버스 출발할시간이 다되어가는데 후딱 나오시지 뭘 그렇게
꼼지락거린다요." 했더니 우리 엄니
 
"야 이놈아 부안읍내 가는것도 아니고 서울까지 가서 친척들 다 보는디 이쁘게 꾸미고
가야 할것 아니여. 그렇지 않아도 오늘따라 화장이 잘 받지를않아 신경쓰이구먼.
보채지말고 기다려 이것아." 합디다.
 
다른때같으면 세벽일찍 일어나 부산을떨고 다니던 아내모습이 통 보이지가 않아
방문을 열고보니 아내는 뭐가 그리 화가났는지 방안에 누워 천장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기에
 
"야 이사람아 시방 시간이 몇시간지 여지껏 준비도 않하고 누워있는가."
하니까 아내는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흘리며 저에게 그럽디다.
 
"나 엄니 땜시 속상혀서 못살것서랍. 시집와 20년동안 살면서 지금껏
엄니가 눈에 거슬려도 부모라 그런갑다 하고 참고 살았는디 해도해도 너무헌것
같소. 그 박스에든 고추, 마늘, 모두다 그 무더운 여름날 내가 힘들게 약치고
풀 메어주고 가꾼 것들인데 나한테 한마디 말씀도 없이 다 나눠주는것 보면
너무 속상해서 서울 예식장이고 뭐고 나 안갈랑게 엄니 모시고 당신이나 댕겨와요."
이러면서 훌쩍훌쩍 울기에 아내등을 토닥여 주며
 
"당신이 말 안해도 시방 내 기분도 영 아니구먼. 퍼 줘도 어느정도 래야지 그동안 당신
친정에 마늘 한접이라도 준적이 있는가 당신이나 된께. 여지껏 저런 시어머니 모시고
살았지 다른 여자들 같았으면 어림도 없이 암. 나 결혼식이고 뭐고 안갈랑게 우리
읍내 나가 자네 옷도 사고 맛난것도 사먹고 옵시다."하며 손에 통장과 도장을 쥐어주니까
 
"그렇다고 당신까지 그러면 쓴다요. 얼른 화장조께 찍어바르고 준비헐랑게 관광버스 조께
기다리라고 혀요." 아내는 서울 예식장에 갈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실 서울에 사는 누나 동생들 떵떵거리며 45평이 넘는 아파트에서 호화스럽게
잘 살거든요. 힘들게 이런것들 갖다줘도 하나 반갑게 여기지않고 인상 찡그리며
돈주고 사먹으면 되는데 궁상맞게 뭐하러 가지고 왔냐며 다른 친척들에게 나눠줘
버릴때보면 어찌나 서운하던지 다시 가지고와 버리고 싶을때가 많았거든요.
반가워 하지 않고 귀찬타는 표정을 지으며 엄니 호주머니에 억지로 용돈 몇푼을
넣어주는 모습을볼때 엄니가 무슨 거지냐며 그돈 다시 돌려주고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왜들 엄니 맘을 몰라주는지 지들이 잘사는것 누구덕인줄도 모르고...
 
아내는 뙤약볕에서 힘들게 녹두, 콩, 참깨, 마늘, 고추 등등 수확해 아까워
먹지를 않고 바리바리 담아 곡간에 넣어놓고 기분이 좋아 날마다 흐뭇한 모습으로
쳐다보곤 했는데 그런 아내의 마음도 몰라주고 아내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종자도 남겨두지 않고 아들 딸들에게 나눠줘버리면 얼마나 아내가 허망할지
이해가 갔습니다. 아까워 친정에 마늘한접 주지않은 독한 아내가 얼마나
허망하면 저럴까싶네요.
 
저요. 이 시간을 비롯해 우리엄니께 한말씀 드리고 싶네요.
엄니 저 엄니땜시 중간에서 못살겠서랍. 엄니 비유 맞추라 아내 비유 맞추라
저좀 조용히 살고 싶은디...
 
부안에서 애청자 김용기 올림.
 
p.s
아내가 좋아하는 남정희/세벽길
                       박진석/천년을 빌려준다면 부탁드립니다. 꼭 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