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으로부터 30년전
인문계여고를 졸업했다.
우리 학교는 그 당시 2학년이 되면
진학반과 비진학반으로 나뉘어 공부를 했다.
우리 1년 선배들은 각자 희망에 의해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임의로 전교1등 부터
두반인가를 성적순으로 잘라
진학반과 비진학반으로 구분하여 공부를 했다고 한다.
아무리 오래전 일이라해도 이건 아닌것이다.
공부를 잘해도 형편이 어려워 대학엘 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성적이 좀 부진해도 대학에 가고 싶은 사람도 있을테니 당연히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하여
우리가 2학년으로 올라갈때는 우리 선배들이 희생양이 되어 시행착오를 거쳤으니
우리 학년전체를
체육관에 모이게 하여 반 나뉘는것에 대해서
사전설명을 듣고 각자 희망에 의하여 반편성을 했다.
반이 7반까지 있었는데 대학엘 갈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친구들이 많아
비진학반은 4반.진학반은 3반으로 나뉘어 공부를 했다.
나 역시도 맏이라는 이름과
딸이라는 이유
그리고
어려운 가정형편과 성적은 중상권쯤 유지했지만 자신없는 과목때문에
난 이런저런 이유로 대학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 성적때문에 대학에 갈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 당시 여고시절때에도 대학에 들어가려면
한문도 많이 알아야 하고 영어도 잘해야 하는데
나는 이 과목들이 취약과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곧 대학에 진학하는걸 포기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되었다.
지금 반백년을 산 이 나이에도 나는
최고학력인 대학을 졸업했으면
반드시 한문도 영어도 즉 말하면 외국어에 능통해야 한다는
대학을 졸업했으면 그 어떤점에서나 대학이하의 학력을 갖고 사는 사람보다
나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건가?
웃기는 건가?
각자 자기가 공부하는 과목들이 따로이 있는데 뭐 굳이 외국어에 목멜 필요까지 없을텐데
나는 왜 생각이 그리 되는지 모르겠다.
우리 학교는 사립학교였는데 수업료가 비싸도 공립학교는 남학교뿐이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이 학교를 들어 갈 수 밖에 없었다.
어쩜 나는 당시 상업고가 있었다면 그 학교를 선택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건 그당시 우리 학년은 행운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선배들처럼 기분나쁜 한해?
아니다 3학년때까지 공부를 해야하니까 2년의 학창시절을 보내야 하는것이다.
하지만 우린 희망에 의해 공부를 했으니까 행운아인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학교는 우리에게 배려를 한것 같다.
참 고마운일이 아닐 수 없다.
형편상 진학을 못하는 학생들에게 취업할때 보탬이 되는 자격증 취득을 할 수 있도록
교과가 약간 변형되어 공부를 했다.
예를 들면 진학반은 영어수업을 일주일 내내 공부를 했고 우리 비진학반은
영어수업을 주4회만 공부하는 대신에 상업과 타자 주산과 부기를 공부한것이다.
교과는 인문계교과 그대로이고 선생님도 같은분이었기에
우리 비진학반에서 공부한 친구들도
대학에 갈 무렵에는 대학엘 진학한 친구도 있었다.
나란 사람은 자신을 들여다 보니 숫자를 꽤나 좋아하는 편인것 같다.
그래서 수학을 좋아하는걸까?
지금 이나이에도 나는 여건이 된다면
수학공부는 다시 해보고 싶다.
근데 이 나이에 수학공부해서 어디다 써먹을겨?
우리 손자 손녀 가르치는데나 써먹을 수 있을까?ㅋ
타자라는 상업교과 선생님이 가르치는 과목이 있다.
한번은 상업교과 한번은 타자실에서 타자실습을 하며 공부를 했지만
각종 학교행사나 적은 교과수업으로 자격증 취득은 완전 열악한 상태였다.
그래도 우린 자격증을 따고자 열심히들 공부를 했다.
나는 당시 타이프를 치는 타자시간은 완전 싫었다.
선생님도 마음에 안들고 완전 미웠고
그래서였을까?
타자시간이나 상업시간은 졸립기만 하고 너무 너무 재미없는 시간이었다.
아마 이 시간은 졸기 일쑤였을것이다.
당근 상업과 성적은 하위권에서 수영을 하고....
주산과 부기는 주산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는데
우리 학교 선배님이셨고 여선생님에 참 좋은분이었는데
나는 선생님이 넘 좋아서 사춘기 시절에 많은 고민을 용기내어
고민이라고 해봐야 가정사였다.
선생님 성함은 고경*선생님 이셨다.
장문의 편지를 써서 선생님께 드렸더니 편지를 읽어 보시고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학교 옥상으로 조용히 부르시더니 이런 저런
인생 선배로써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내 맘속 고민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듯한 기쁨을
안겨 주신 선생님이셨기에 나는 이후로 선생님과 더욱 가까워졌다.
선생님께서도 무지 어려운 형편이셨는데 나더러 교회에 다녀보라며
멀리 전주까지 가셔서 성경책과 찬송가를 사가지고와 내게 선물해 주셨던 고마운 선생님이셨기에
나는 선생님을 나 혼자 독차지 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외사랑하는 선생님은 나 말고도 여러 친구들이 좋아하고 있었다.
어느날 복도 창밖으로 다른 친구들과 선생님이 함께 있는걸 보고 어찌나 질투가 나던지
정말이지 미칠뻔했다.
그것도 우리반 친구랑....
나는 예민한 사춘기시절이었지만 우리반 친구랑 내가 넘 좋아하는 선생님이
함께 앉아 도란 도란 이야기 나누는걸 보면서
내 생각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많이 좋아하는구나.
역시 나는 사람을 볼 줄 알어 하며 나 자신을 위로했고
이후에는 그 어떤 친구들과 선생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아도
질투같은거 내지 않기로 나 자신에게 약속하였기에 난 질투가 나지 않았다.
그때 그당시 그 순간이 나는 아직도 내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ㅎ
주산과 부기는 선생님조차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인데다
글씨도 어찌나 잘 쓰시는지 완전 명필에다
부기시간이면 계정을 공부해야하기에 선생님은 칠판에 두개의 분필로
줄을 그으시는데 그 긴 칠판에 좌측에서 우측까지 자로 잰듯이 반듯하게
잘 그으시던 모습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보다
그냥 주산과 부기가 무지 무지 재미있어서 공부를 했을뿐.
주산 수업시간은 물론 쉬는 시간에도 나는 주산문제를
내가 재미있고 좋아서 몇장이고 풀어대고
집에가서도 또 몇장이고 풀어댔다.
그 덕분에 나는 기초 주산급수부터 한번의 탈락없이 시험볼때마다
합격하여 합격증이 쌓여갔다.
진짜 중요한 직장에서 쓰일 정도면 적어도 주산2급 부기3급 자격증은
갖추어져야 어디에 명함내밀며 경리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열악한 조건의 수업이기에 자격증 취득은 정말 힘든일이었다.
학원에 다녀야만 그나마 주산3급이상 부기3급이상을 취득할 수 있는것이다.
어영부영했다가는 상업계 학교출신자도 자격증 취득을 못하는
학생들도 많다는 말도 들었다.
우리 학교 출신역시 나만큼 자격증 취득한 친구도 몇명 안되는걸로 안다.
나는 주산3급과 부기3급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엘 다녔다.
한번인가 두번인가 실패한뒤 여고 졸업전에 나는 두가지
당시 공무원 시험에서도 가산점을 인정해주는
사무능력시험에서 발행하는 자격증을 취득했다.
당근 이정도로 내가 좋아서 했기에 주산 부기는 한두개 틀리거나 만점을
받는 행운까지 얻기도 했다.
당시 우리반에서 1등하는 친구가 부기시험치루기 전이면 나한테 알고 있는거 좀
가르쳐 달라고 했던 생각도 난다.ㅋ
좋아서 내가 좋아서 열심히 하여 얻은 자격증.
취업하기 위해서 취득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니 경리일이 하고 싶어졌다.
내가 좋아했던 주산선생님께서는 특별히
내 형편을 잘 알고 계시기에
구인광고가 들어오면
내게 먼저 추천을 해주셨다.
화장품 대리점 경리자리였는데
주산2급과 부기3급 자격증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하여
나는 아쉽게 그 좋은 자리를 놓치고 말았던 아쉬운 기억....
주산을 조금만 한해만 일찍 시작했어도 주산2급 자격증은
문제없이 취득했을텐데 하는 아쉬움만 간직해야 하는 아픔으로 남아있다.
당시 우리집 형편은 무지 어려워 고1때 부터 주산학원을 보내줄 형편까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억은 내가 다녔던 부기학원에서 부기자격증을 취득한 내게 구인광고가 들어와 나를 추천해주려고 했는데
고교 졸업하여 당시 우리집에는 전화가 없어서 연락할 길이 없었다는 후문도 듣기도 한 아픔도 나는
간직하고 있다.
지긋지긋 징글 징글한 가난이 내게준 아픔들이다.ㅠㅠ
그 친구는 내숭쟁이다.
다 알고 있으면서....
부기점수가 언제나 나랑 비슷하면서도 내게 가르쳐 달라고 했었으니까.ㅋ
나의 별거 아닌 체험을 통해서 나는 공부라는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공부가 뭐가 재미있냐고 일이 뭐가 재미있냐고
내게 반문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분명 공부라는것도 열심히 하면 그 결과 꽃이 핀다 할까?
만점이란 점수가 나오고 목표한 자격증이란것도 손에 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나 자신 스스로에게 대 만족이 들고 희열을 느낀다 할까?
정말 기분좋고 행복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일이라는것도 마찬가지이다.
내취향이고 내 성격에 맞는 일이 분명 있다.
그일은 땀을 뻘뻘흘리고 힘들어서 몸이 파김치가 될 지언정 내가 좋아하는일이기에 별로 힘들지 않다.
오히려 웃을수 있고 보람을 느끼고 재미있기만 하다.
나는 나의 이런 체험을 맛보았기에
내 사랑하는 자식들 우리 세보배둥이들에게도 가르쳐준다.
이렇게 세상살이는 싫어하는것과
좋아하는것이 차이가
하늘과 땅차이쯤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나 역시도 상대방의 취향을 많이 인정해 주려고 해보지만
안그러려고 노력하지만
함께하는 가족이어서인지
예를 들면 내 입맛에는 맞는데 맛이 없다거나 싫어하는걸 보면
좀처럼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ㅎ
그래 나도 싫어하는것이 있는데 너도 싫어하는것이 있겠지 하고 인정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것이다.
사랑이란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이해할 줄 알아야 진정 사랑이라 말할수 있는거 아닐까?
하지만
하지만
학창시절 그토록 하기 싫은 타자.
자판기 두드리는 일을
이제 컴여행이 하루 일과가 되어 버린 지금의 나는
학창시절 배운 실력으로 요즘 아이들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열손가락을 이용하여
자판기를 두들기는 손가락운동을
열심히 거의 매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 타자를 쳐도 우리 아이들처럼 빠르지 않는건
나의 천성?
속도가 별로 늘지 않는건?
ㅠㅠ
오타없는 빠른 자판기 두드리는 속도라면 글쓰기도 훨씬 덜 힘들텐데....ㅋ
고선생님.
지금은 어디서 무슨일을 하며 사실까?
찾아뵙고 이제는 내가 맛난 식사라도 사드려야 할건데....
아니 사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