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 벌초를 다녀와서

오늘은 랑이 오랜만에 휴무를 맞는 날이다.
오랜만에 맞는 휴무이니 푹 쉬고 싶을텐데.
쉬어야 하는데....
나는 랑이 쉬면 이번 폭우로 인하여 많은
피해를 당한 같은 고장인 정읍에 자원봉사나
가자할 참이었다.
자원봉사나라고 해서 내가 자원봉사를 우습게 생각하는건 절대 아니다.
사람들은 쉽지 않은일이라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나는 늘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일이 자원봉사라서 그렇게 말했을뿐이다.
힘들지만 하고 나면 뿌듯하고 정말 정말 행복하기 때문에
나는 자원봉사를 즐긴다고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정말로 좋아한다.
 
그런데
랑의 입에서 먼저 친정 막둥이.
즉 막둥이 처남이 가까이 사니까 막둥이랑 함께
다음달에 추석이 들어 있으니
우리 조상님 산소에 벌초를 하러 가자는 것이다.
고맙다는 말한마디로 대신할뿐
더이상 말로는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할길이 없어 아쉬울 지경이다.
세상에 처가조상님 산소 벌초를 해주겠다고
스스로 나서는 이런 사위가 어디 또 있을까??
몇달전 부터 직업병인지 팔꿈치가 많이 아프다며
정기적으로 주사맞고 매일 약을 먹고 있는중인데도
팔이 아프지 않다면 처남없이 혼자도 할 수 있지만
팔이 아파 처남과 같이 해야한다고 막둥이한테 전화를 하니까
볼일이 있어 서울에 가야 한단다.
 
하는 수 없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우리 부모님을 모시고
우리 넷이 가기로 했다.
덥고 어젯밤 잠을 설친 탓인지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지만
우리친정일인데 내가 무슨 짜증을 내고 가지말자고 하랴.
나는 김밥이 먹고 싶어 일요일날 김밥을 싸먹으려고
김밥재료를 사다 둔게 있었다.
나는 평소처럼 오전 6시가 되기전에 일어나 김밥쌀 준비를 했다.
어제밤 김밥재료 준비를 일부 해 두었지만
계란부침을 하고 밥을 지어 김밥을 싸니 훌쩍 시간이 지나버린다.
김밥으로 아침을 먹고 부모님과 우리부부 넷이 먹을 점심으로
김밥을 썰어 통에 담구 시원하게 만들어 놓은 유자차를 준비하여
친정을 향해 출발하니 오전 9시가 넘었다.
 
제초기의 성능을 실험해보고 산소로 출발했다.
우리 조상님 산소를 가는길에 다른 사람들 산소가
여럿 계신데 벌써들 벌초를 끝낸 상태다.
부지런들 하시다.
그분들 덕분에 우리 조상님 산소가는길이
풀이 우거져 있지 않아 좋았다.
늦은봄엔가 부모님을 모시고 산소에
풀약을 하러 다녀온적이 있는데
그 덕인지 풀이 생각보다 많이 자라 있지 않아
벌초하는데 덜 힘들것 같아 보였다.
랑과 아빠는 제초기를 번갈아 가며 벌초를 하셨고
나와 엄마는 잘린 풀을 갈퀴로 긁어 모아 산소 가장자리에 버리는일을 하였다.
아빠도 랑도 엄마도 나도 땀이 얼마나 나는지....
잡초를 제거하니 메뚜기며 벌 그밖의 벌레들이 엄청 날아다닌다.
다행히 햇볕이 내려 쬐는 날씨가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계절이 계절인지라 정말 더웠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참 이상한 여자같다.
어찌그리 조상님.
특히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찌나 뵙고 싶은지
우리 조부모님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르겠다.
사진으로도 뵌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다만 아빠한테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어떤 분이셨다는걸 들은게 전부인데....
낫질로는 좀 도울 수 있지만
제초기는 운전할 수도 없는데도 친정 조상님 산소에 벌초하는일에
늘 신경이 쓰이고 내가 하고 싶으니말이다.
벌초 할때마다 너무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힘들면서도 하기 싫지가 않다.
정말 기분 좋고 행복하기만하다.
왜 그럴까??
 
내꿈에라도 단한번만이라도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나타나
ㅎ아 내가 너의 할아버지다.
할머니다 하며 모습 좀 보여 주셨으면 좋겠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살아 계셨다면
첫손주인 내게 정말로 잘 해주시고 예뻐해 주셨을텐데....ㅠㅠ
흔히들 남이 하는일은 모두 쉬워 보인다.
눈으로 바라만볼뿐이니까....
벌초 할때마다 나는 랑에게 나도 제초기를 한번
운전해 보겠다고 졸라대곤했다.
그렇다 나도 할 수 있을것만 같고 쉬워 보여서다.ㅎㅎ
얼굴엔 비오듯 땀이 줄줄 흐르고 윗옷이 땀에 흥건히 젖어 있는 랑의 모습을 보니
내가 해야할일을 대신하는것 같아 안스럽고 미안하고 어찌할바를 모르겠다.
옆에 다가가 목에 두른 수건으로 땀을 닦아주는정도만 해줄수있을뿐....
 
힘들어도 내가 하고 싶어서 기어코 제초기를 줘보라했다.
나를 무척이나 아끼는 랑은 힘들기도 하고 다칠까봐
걱정이 되는지 절대로 맡기려고 하지 않는데
하도 졸라대는 나를 보고 아빠가 웃으시며
해보라하셔서 드디어 제초기 운전을 해보게되었다.
집에서 청소기 운전하듯 하면 될것 같은데
한 1분이나 했을까 랑은 나더러 못한다며
제초기를 빼앗아 가버린다.ㅋ
재미있구만....ㅎ
나도 몇십분만 운전해 보면 잘 할 수 있는데
아무리 비리 비리한다고해도 거 되게 무시하네.ㅎ
우거진 잡초를 제초기로 남자들 턱수염 면도하듯
말끔하게 제거하고나니 속이 후련한게 어찌나 기분 좋던지 정말 기분이 좋았다.
우리 가족 조카들까지 모두 모여 산소에 가서 조상님께 화목한 모습을 보여드리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언젠가는 이 자리에 우리 부모님께서도 누워 계실걸 생각하니 서글프고 너무 슬펐다.
허무함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ㅠㅠ
우리 조상님 산소에는 아빠의 정성어린 손길이 고스란히
담아져 있어서인지 산소에 가면 왠지 마음이 편하고 참 좋다.
내가 여고를 졸업하던해 가게에서 잠시 경리일을 하는동안
작은사철나무 한그루를 샀는데 그 나무를 아빠는 정성스럽게 길러
지금까지 키우고 있는데 올해로 30년된 나무가 조상님 산소로 옮겨져 잘 자라고 있다.
키도 1m도 안된 상태인채로.
표현은 못하시지만 우리 아빠의 자식사랑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늘을 이용하시려는지 내가 태어난 고향에서 이제는 물속에 잠겨 버렸지만
아빠가 고향에서 옮겨온 단풍나무도 많이 자라서 우리 가족에게 그늘을 내어 주며 보답하고있다.
산소에는 측백나무도 있고 개나리꽃도 있고 진달래꽃도 있다.
너무 땀을 많이 흘린탓에 끕끕하여 부모님과 우리 부부는 가져간 김밥이며
간식도 먹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가져와 먹었다.
벌초한 시간은 한 2시간쯤 걸렸을까? 그런데 긴시간 일한것만 같은 생각이든다.
더위에 지쳐서 일까?
나는 그 잠깐 사이에 또 더위를 먹었는지 한참동안이나 머리가 아프고 속도 안좋고
몸이 너무 아파 엄마도 머리 아프시다는데 점심차리는것도 도와 드리지 못하고 누워있다가 겨우 일어나 점심만 먹었다.
 
젊디 젊은 연세에 돌아가셨다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저 세상에서는 이승에서의 아픔을 잊고 행복하게 사셨으면해요.
두분.
당신의 큰손주 말이 들리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