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햇살에 검게 그을린 얼굴에 화사한 분을 바르고 여닫이 문 틈으로 수줍게 고개를 숙인 옛 시골 처녀의 모습을 이제는 보고 싶다...
오늘도 나는 군산에서 익산가는 길에 차를 잠시 도로 옆에 세웠다..
제법 수령이 됐음직한 벚나무를 유심히 바라보건만 아직 수줍은 얼굴은 보이지 않고 있다..이미 땅은 봄의 기운에 감응이 됐으리라 생각되는데 아직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벚나무는 여간 엄살쟁이가 아닌가 싶다..
예전 우리가 살던 집,,
방바닥은 따끈 따근하고 공기는 시원한, 내가 어릴 때 살던 기와집...
따근 따근 한 방에 두꺼운 솜 이불 깔고 회색 내복 입고 들어가도 처음엔 몸이 움추려 들 정도로 싸늘하건만 조금만 지나면 따끈한 방바닥의 온기가 베어 나오고 우리의 몸이 이불을 데우고 해서 이불 속은 천국과 진배 없어진다.. 그러나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코는 빨간 딸기를 연상할 정도로 얼어 있는데 아무리 바닥이 뜨거워도 공기는 냉냉한 것 때문에 형이나 누나들은 이불속으로 얼굴을 파 뭍고 자건만 나는 그렇게 하면 답답해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서 그냥 그대로 잠이 들곤 했다..
아마 지금 이 봄날이 그 풍경을 자아내는 것 같다..
땅은 이미 따근따근한 아랫목이건만 공기는 싸늘한 겨울이니 고개를 내밀어야할 화사한 봄의 전령들은 아직 그 냉냉함에 이불속으로 고개를 파 뭍고 있는 것 같다..
아쉽다...!
해마다 봄이 되서 이 길을 달리 때 따뜻한 눈이 오는 것 같기도 하고 해외에 나가 금매달을 딴 선수를 국민들이 금위환양하는 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들었건만 올해는 좀 더 기다려야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이 봄 소식에 배 고픔을 달래고 달래며 기다리다가 밤 새 탁 하고 터진 꽃망울을 볼 때면 그 기분은 꿈에 본 아리따운 여인을 실지로 본 그 기분일 것이다..
고진감래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고진감래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고진감래일 것이다..
군산에서 익산가는 길..
나는 이 길을 사랑한다..
특히 이렇게 숨 죽이고 때를 기다리는 지금 이 때를 사랑한다..
가슴을 조리며 오가는 사람을 기쁘게 해 주려는 마음이 충만한 이 나무들을 사랑한다..
나는 다시 기어를 넣고 차를 움직였다.
다음 주 화요일.. 다시 이 길을 가다가 또 문득 서서 이 나무는 아닐지라도 이 길을 아름답게 해줄 어떤 나무를 보겠지..
이렇게 수줍음이 많은 나무는 어쩌면 드레스를 입기 직전의 처녀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연이 있어 연이 닿으면 드레스를 입겠지..
나는 그 드레스의 끝 자락을 밟으며 그 향내에 취해 익산으로 가고 싶다...
익산 가는 길...
어쩌면 기다림의 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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