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퍼머머리

두분 안녕하세요? 때는 바야흐로 졸업과 입학시즌이네요. 취업이 여의치않아 하고싶은 공부나 실컷해보겠다고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는 큰조카와 다시 새롭게 바뀌는 입시1세대의 부담을 안고 고교에 진학하는 작은조카 그리고 유치원만 내리 3년을 다니다가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막내조카에게 짧은 당부의 말과 축하편지를 적다보니 문득 하얀 콧수건을 가슴에 달고 입학식을 치뤘던 25년전 저의 초등학교 입학식 풍경이 떠올랐답니다. 그시절 대개가 그랬듯이 저희집역시 대밭에 쑥쑥 돋아나는 죽순처럼 형제가 많은집이었던탓에 하루도 바람잘날이 없었고 날마다 왁자지껄 소란스러웠던집이었답니다. 날마다 다섯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첫차를 타기위해 새벽밥을 먹고 고등학생이던 둘째오빠가 맨먼저 집을 나서면 다음차례는 대학교에 다니던 큰오빠와 중학교에 다니던 막내오빠였고, 마지막으로 초등학교에 다니던 언니들 차례였답니다. 저에겐 마지막 희망이던 언니들 마저 도시락이 든 책가방을 메고 고샅을 빠져나가고 텅빈집에 저만 덩그러니 남겨지면 망망대해에 저만 달랑 남겨진것같아 어찌나 서러운 마음이 들던지 나도 얼릉 학교에 보내달라고 괜시리 엄마 치마자락을 잡고 떼를 쓴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답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초등학교 입학식날. 엄마는 전날밤 소죽솥에다 물을 끓여서 전애없이 깨끗이 저를 씻겨주셨는데 입학식날에는 머리도 가리마를 타서 예쁘게 묶어주셨답니다. 부엌 아웅이에 불을 지피느라 언제나 옷에 재나 숯자국이 남아있던 엄마도 옷장에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감으신 엄마는 전에없이 정성들여 빗질을 하시고 비녀를 꽂으셨답니다. 그당시 우리동네 엄마들 대부분의 머리스타일은 퍼머머리 일색이었는데 엄마는 동네에서 큰엄마와 함께 유일하게 머리를 길게 길러서 쪽을 지고 비녀를 꽂고 계셨답니다. 이모들이 가끔 엄마에게 아버지몰래 미장원에 함께가서 사고 한번 치고오자고 퍼머머리가 얼마나 편한줄 아냐면서 조선시대도 아닌데 박서방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핀잔이었지만 엄마는 고지식한 아버지를 두둔하시며 늘 쪽진 머리스타일을 고수하셨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비녀를 꽂으신 엄마손을 잡고 그때까지 줄곧 언니들옷만 물려입다가 난생처음으로 새옷을 입고 집을 나서려니 어찌나 즐겁던지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졌답니다. 언니들과 오빠들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토끼와 다람쥐가 자주 출몰한다는 모고리잔등을 넘어서, 봄에 통통하게 물이 오른 삐비를 뽑아먹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상급베미 논둑길을 지나서, 여름 하교길에 옷을 홀랑 벗고 멱도 감고 다슬기도 잡을수 있다는 동동지 다리를 지나서 논두렁 밭두렁을 수도없이 걸어서 드디어 학교에 도착했답니다. 그때까지 엄마따라 장날 읍내 서너번 들락거린게 전부였던 여덟살짜리 소녀였던 저에게 국기 게양대앞에 펄렁이는 태극기는 어찌나 자랑스러워보이고 창문이 다닥다닥 달려있는 이층건물은 어찌나 웅장해보이고 플라타너스가 심어진 운동장은 어찌나 넓어보이는지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답니다. 구령대앞에 선 하얗게 머리가 센 나이지긋한 교장 선생님이 입학을 환영해 주셨고, 까만 양복을 쫙 빼입으신 남자 선생님과 뽀족 구두를 신으신 여자 선생님은 앞으로 나란히,차렷을 시키셨답니다. 한참 구령대에서 외치는 선생님의 구호에 따라 하얀 콧수건을 휘날리며 삐뚤빼뚤 열을 맞추다보니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계시는 엄마들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엄마들도 있었고, 미장원에서 금방 나온듯한 예쁜 엄마들도 있었고, 반짝반짝 윤이 나는 뽀족 구두를 신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 엄마들도 있는데 그 너머로 수수한 한복을 입고 하얀 고무신을 깨끗이 닦아신고 머리에 비녀를 꽂고 계신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답니다. 운동장에 빙 둘러선 엄마들중 어디를 둘러보아도 우리 엄마처럼 비녀를 꽂고 계신분은 안 계셨고 간혹 머리가 하얗게 세고 허리가 휘청하게 굽으신 할머니들만이 비녀를 꽂고 계시는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던 찰나 제옆에서 함께 서있던 아이가 뽀족구두를 신은 아줌마를 가리키며 자기엄마라고 자랑을 하면서 너희엄마는 어디 계시느냐고 묻는겁니다. 제가 저희 엄마를 손으로 가리켜주었더니 대뜸 "야 너는 왜 엄마랑 안오고 할머니랑 왔어?"이러는겁니다. 순간 퍼머머리를 한 친구들의 엄마모습속에서 혼자 비녀를 꽂고 계신 엄마 모습이 어찌나 초라해보이던지 콧날이 시큰해졌답니다. 입학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길. 아침에 학교에 갈때와 사뭇 달라진 저에게 엄마는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저는 대답대신 마음속으로 별라별 생각을 했답니다. '다른 아그들 엄마들은 다 파마를 해서 이쁜디, 할머니 소리도 안듣는디 왜 우리엄마는 파마 안해서 할머니 소리를 듣는지.....오빠들이 아침마다 학교갈때 엄마한테 돈을 다 타가버려서 엄마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어서 파마를 못하나?' 입학식날 나에게 엄마대신 할머니가 따라오셨느냐는 소리를 듣게했던 엄마는 그이후로 한번도 저의 졸업식이나 입학식에 찾아오시는 법이 없으시다가 대학교 졸업식때 마지막이니까 기념으로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두자며 먼길을 달려오셨답니다. 물론 그때는 철없던 유년시절을 한동안 우울하게 했던 비녀를 꽂아 쪽진 머리를 잘라버리고 과감하게 퍼머머리를 하고 나신후였지요. 고지식한 아버지께서 끝끝내 허락을 안하시면 엄마는 당신 돌아 가실때까지 원래 스타일을 고수하시겠다고 하셨는데 애교넘치는 큰언니가 아버지에게 반허락을 받아놓고는 망설이는 엄마를 택시까지 대절해서 바로 미장원으로 모셔서 엄마 육십평생 난생처음으로 머리에 웨이브를 넣었답니다. 삼단같이 고왔던 엄마의 머리카락을 자른지도 벌써 10년.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귀찮고, 보기 흉하다고 미장원에 가서 새로 머리를 손질하고 오신답니다. 다만 아직도 아버지께서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시듯 엄마는 예전 스타일이 더 어울린다고 더 늦기전에 머리를 한번더 길러보라고 하신답니다. 철없던 시절에는 괜시리 다른엄마들과 다르다고 부끄럽게 느껴졌던 엄마의 쪽진 머리가 요즘은 달리 생각되어 저역시도 요즘은 아버지 의견에 힘을 보태고 있는중이랍니다. 아버지와 저의 간청에도 엄마는 좀더 일찍 이렇게 편한 파마를 못한것이 억울하다며 콧방귀만 뀌고 계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