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엄마랍니다.

두분 안녕하세요? 세상에 태어난지 70일된 우리 딸내미가 벌써 옹알이를 시작했답니다. 까맣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뭐라고 뭐라고 옹알이를 하다가 저랑 눈이 마주치면 배시시 웃는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정말 깨물어주고 싶을만큼 사랑스럽답니다. 제품에 안겨 쭈쭈를 먹다가 살포시 잠든 딸내미를 보고 있으려니 문득 딸내미를 낳던날의 풍경이 떠오르네요. 분만예정일이 아직 일주일정도 남았길래 그날도 평소처럼 네살박이 큰아이를 재워놓고 저랑 신랑이랑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소변이 나오듯이 물이 주르르 흘러나오는 겁니다. TV를 보던 제가 갑자기 놀라서 "자기야! 나 양수 터졌나봐." 그렇게 소리를 질렀더니 저보다 더 흥분한 신랑은 그길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큰놈을 억지로 깨우고 한달전부터 챙겨두었던 여행가방을 들쳐메고 그야말로 쌍라이트를 키고 부랴부랴 밤의 고속도로를 질주해야했답니다. 산모가 양수가 터졌는데 산부인과로 안가고 무슨 고속도로냐구요? 이유인즉 제가 큰아이를 낳을때 출산예정일을 2주 정도 넘기고도 별다른 기미가 없어서 유도분만을 하다가 갑자기 난산끝에 제왕절개 수술을 했던탓에 둘째는 꼭 자연분만을 해보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다니던 산부인과에 문의를 드렸죠. 그랬더니 자궁파열의 위험때문에 절대 안된다고 하시더군요. 여러곳의 병원에 문의를 드려봤지만 결과는 모두 비슷하게 말씀하시며 제왕절개 수술을 권유하시더군요. 그러던차에 첫아이를 수술했던 산모인 경우에도 순산에 필요한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산모에게는 먼저 자연분만을 시도해보는 곳이 있다길래 집에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 있는 병원이었지만 용감하게 그곳으로 병원을 옮겼답니다. 그러니 그 상황에 밤의 고속도로를 질주할수 밖에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려 산부인과에 당도하니 자정을 넘었더군요. 급히 입원수속을 마치고 분만실에 누워있으니 남동생과 함께 친정엄마가 당도하셨답니다. 네살박이 아들놈은 친정엄마와 함께 입원실에 있으라고 하고 신랑은 저와 함께 분만대기실에 남았답니다. 분만대기실에는 저말구도 진통중인 산모가 다섯명정도 더 있었는데..... 진통이 있을때는 나죽었네하고 소리를 치다가도 잠깐 진통이 멎으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옆에 있는 보호자들과 담소를 나누더라구요. 슬슬 배는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하고 이제 이게 남의 일이 아니구나싶어 어떻게 이밤에 진통을 겪고 애를 낳나 싶어 정말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구요. 첫애는 정말 철없이 아무것도 모르고 낳았는데 다 경험하고 나서 다시 낳으려니 두려운 마음때문인지 더 아픈것 같기도하고..... 진통이 있을때마다 제 입에서는 저절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고 저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에 옆에 있는 신랑은 뭐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못하며 딱딱하게 굳은 배를 맛사지도 해주고, 갑자기 쥐가 난 다리를 주무르기도하고, 바싹 말라버린 입술에 손수건에 물을 적셔와서 입술을 축여주느라 둘다 정신이 없었답니다. 그렇게 분만대기실에서 밤을 꼴딱 세우고 다음날 아침이 되니 신랑도 저도 지쳐서 진통이 있을때는 둘이 손을 꼭잡고 라마즈 호흡을 하네뭐네 요란을 떨다가 진통만 멋으면 꿀같은 단잠에 빠지는겁니다. 진통할때는 그 진통이 그렇게 힘들수가 없는데 진통만 끝나면 무슨약에 취한듯이 몰려오는 졸음에 잠깐씩 자는 단잠이 그렇게 달콤할수가 없더군요. 아이와 함께 입원실에서 내려오신 친정엄마가 신랑의 지친 모습을 보시고 제옆에는 당신이 있겠다며 입원실에 올라가서 쉬고 있으라고해도 신랑은 끝까지 제곁을 지켜주어 마음이 든든했답니다. 하룻밤을 지새고나니 어젯밤에 함께 진통을 하던 산모들도 하나 둘 분만실에 들어가 건강한 아이를 순산하고 입원실로 올라갔는데 저는 여전히 아기집 문이 조금밖에 열리지 않았다고해서 속으로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요. 이러다가 또 결국 첫아이때처럼 마지막에 급박하게 수술을 하게 되는건 아닌지싶어서 속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내진을 하던 간호사가 갑자기 아기집 문이 다 열렸으니 분만실로 옮기자는 겁니다. 분만실에서 거짓말 안보태고 정말 젖먹던 힘까지 다 보태서 아이를 낳고나니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제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넘쳤고 "으앙"하고 울음을 터트린 아가의 탯줄을 자르던 신랑도 감격에 눈물을 흘렸답니다. 첫아이 낳을때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맨처음 터트린 울음을 듣지못했던 아쉬움이 딸내미의 힘찬 울음속에 말끔히 지워졌답니다. 아마 끝까지 제곁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준 신랑이 있었기에 저도 뱃속의 아가도 힘든 고통을 견디고 순산을 했던것 같아서 신랑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이랍니다. 첫아이 낳고 배가 땡겨서 일주일을 꼼짝달싹도 못하고 웃음이 나와도 제대로 웃지도 못할 지경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이 낳자마자 어찌나 배가 고프던지 미역국을 국물하나 남기지않고 후루룩 먹는걸 본 신랑은 빨리 세째 하나 더 낳자고 하네요. 두분 저 이 상황에 세째 낳아도 될까요? 동물원의 널 사랑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