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윤승희 조형곤씨 저는 늦게 이렇게라도 편지을 쓰지않으면 이가을이 저에게 너무도 힘든 시간이 될것 같아 서두없이 글을 올립니다.
저는 지난번 가을 편지쇼에 가슴속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보고 싶어 혼자 갔다가
막상 글을쓸려고 하니 손이 떨려오고 오히려더욱더 답답해 져오는 마음을 주체못해 끝내 긁적거리다가 쓴다만 종이만 책갈피에 구겨넣고 그냥 돌아왔어요.
맑은 가을 하늘을 보면 기쁨보다 어찌할수 없는 아픔에 가슴이 절여 옵니다.
올봄에 4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병때문에 세상을 떠난 바로 위에 언니를 생각하면 때 되면 찾아오는 계절이 건만 왜 이렇게 언니에게 잘 못한 것만 생각이 나는지요. 고1과 중2학년 남매를 남겨두고 끝내 편안하게 눈을 못감는 모습을 생각하면
누구나 한번쯤은 맞이하는 죽음이건만 의식이 가물가물 해져오는 순간에도 자식이 부르면 허공에 메아리처럼 작은 움직임을 봤을때 지금도 그모습이 더욱더 가슴을 에이게 하는것 같습니다. 부모와 자식간에 인연은 참으로 질기고 질긴 인연인가 봅니다. 항상 인간은 후회의 연속에서 산다고들 하지만 끝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편지를 언니손에 빨리 건내주지 못한것이 이렇게 한이 될줄이야... 그리고 지난날의 부모가 해주지 못한 많은것들이 5남매의 맏이로써 혼자 떠안아야 했었던 무거운짐들을 초등학교6학년때부터 빨래며 밥이며 동생 뒤바라지를 도맡아야 했었던 언니. 지금생각하면 초등6학년이 어떻게 그많은 일들을 해내었는지....
그러면서 도 항상 학교에서는 우등생인언니, 그와 반대로 열등생인 동생 학교만 갔다오면 가방던져놓고 논다고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나를 잡아서 공부안한다고 손바닥 때리고 나머지동생들 받아쓰기시켜서 틀린수대로 종아리 때리고 무엇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 그때는 정말로 그림자만봐도 미워 했었는데 결혼 하기전까지도 언니와 부모님 모두가 나에게 상처만 주는 사람으로 여겼으니깐 하지만 막상 내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면서 차츰 내 자신이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않고 당당하게 사는것이 다른 아이들 처럼 든든한 부모의 울타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올바른 가치관을 나름대로 언니가 귀가 따갑고 지겹도록 잔소리한 덕이 아닌가 문득 생각이 났다 . 하지만 나의 행복에 젖어서 I.M.F 이후에 형부가 사업이 힘들어 졌다는 것 외에는 속속들이 너무도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왜냐하면나는 결혼하고 3년만에 멀리 남편따라 타국에서 5여년 생활하다가 이곳 전주로 와 버렸으니 언니는 멀리 울산에서 살다보니 일년에 두서너번 만나면 서로 즐거운 얘기만 하고 헤어졌으니 한 형제라도 이웃에 사는 친구보다 사정을 더 몰랐으니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언젠가 전화와서 넌 참 좋겠다 맏이가 아니라서... 하면서 말끝을 흐릴때 그땐 그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몰랐다. 이것 저것 모든것들이 너무도 힘들때 맏이로써 동생들에게 힘든 모습 보이기는 싫고 그래서 그냥 답답해서 푸념삼아 하면서 어쩌면 힘든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은 간절함에 던진 말이였다는것을 얼마전에 알았으니 말이다. 항상 희생하는 사람은 희생하면서 살고 그 희생의 바탕으로 또 다른 연약한 나무들은 마치 본래의 제 모습이 아름드리 큰나무인냥 착각하면서 자기자신을 되돌아보는 겸손함을 잃어버리고 사는것 같다. 뜻밖에 발등에 떨어진 불들을 보면 우리는 새삼 내 주변을 되돌아 보고 세상의 끝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어느순간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어느곳 한부분이 부서져 있는곳을 발견하게 되는것 같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항상 늦다는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