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6일) 새벽 일찍 일어나 논으로 갔다.
여름에 무더위와 태풍과 가뭄을 잘 견뎌낸 벼들이 노랗게 읶어
수확하기전 논에 물을 빼기 위해 삽으로 논뚝 여러곳을 파는 작업이었다.
일을 하면서 먼곳을 바라 보았다.
안개가 온 산을 감싸며 하늘로 올라 가고 있었다.
갑자기 일이 하기 싫어 졌다.
오늘 하루 놀고 싶었다.
삽을 논뚝에 꽂아 놓고 다래골 농장 형님 한테 달려 갔다.
"형님! 저랑 멀리 바다 구경하려 가요"
"이 사람이 바람이 났나. 나는 못 가니 자네나 같다오게"
"형님 내일 내가 일 해 줄테니 가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형님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자네 집사람도 가자고 해서 세명이서 가세"
나는 집으로 달려 왔다.
아내는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박 향숙씨 ! 바다 구경 갑시다"
아이엄마 표정이 이 사람이 어제 먹은 술이 덜깬나 하는 표정이다.
"배추밭에 비료도 해야하고 고추도 따야하고 들깨도 베어야 하고
못가요" 한다. 그러면서 "바다보다 산이 좋지 "
나는 이때싶어 "바다와 산이 있는 부안 내소사 뒷산 아주 좋지 "하며
빨리를 주섬 주섬 같이 널고 다래골 형님차로 부안을 향해 출발 했다.
마침 부안이 친정인 강 진숙씨와 자녀인 인호와 향선이도 동행하게 되었다.
4살인 인호에게 내가"인호야 어디에 살아?" 했더니 "집에요"한다.
부안내소사에서 전나무 향기와 좋은 공기를 맘껏 마시고
진숙씨가 다녔다는 초등학교도 구경하고 친정에도 들렸다가
가자고 하니 우리가 친정에 가면 친정 아버지가 우리 일 시킨다고
자지 말자고 한다. 우리는 <불멸의 이순신> 촬영장에 들렀다가 전주로 왔다.
저녁 식사도중에 진숙씨가 친정에 안 들린 이유를 말했다.
사실은 올 3월에 친정어머니가64세의 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농촌에서 8남매 모두 대학졸업시키고 이제 좀 살만한데
친정에는 93세된 할머니와 70세가 다 되신 어버지와 두분이
계시는데 만나면 눈물날까봐 집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돌아 가신 어머니를 딱 한번 만이라도 볼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말에
완섭이 형님은 수저를 놓고 담배를 꺼내들고 식당밖으로 나가셨다.
혜라 엄마도 목이 메여 밥을 먹을수 없다며 물만 마시고 진숙씨는 서럽게 울고
나도 자꾸나오려는 눈물을 참느라 천장만 자꾸 바라 보았다.
세상 사람 모두가 이런일 저런일로 아픔을 갖고 살아 갈것이다.
나도13살때 어머니가 돌아 가셨고 윤 승희씨 친정아버지도 50세 이전에
돌아 가셨다고 하셨다. 장모님도 44살때 뇌출혈로 돌아 가셨다.
우리는 노래방으로 가서 목이 터져라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하루를
마무리 졌다. 아가씨 같은 김 난수리포터의 아드님이 오늘 군대에 간다고 한다.
군대에 가는 것도 선택받은 사람이며. 텔레비젼에 나올려면 군대에 가지 말라고
했다. 탈랜트 송 승헌씨가 군대 안갔다고 TV에 자주 나오는것을 보았다.
어제 하루 잘 놀았으니 오늘부터 열심히 논으로 밭으로 뛰어 다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