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윤승희, 조형곤님
그리고 여성시대 가족 여러분!
추석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저희 가족은 육개월여간 투병생활 하시던 작은 아버님께서 추석 다음날 아침
임종하시는 슬픈 명절 연휴를 보냈답니다.
지난 삼월 말경
작은 아버님께서는 폐암과 뇌종양이라는 시안부 선고를 받으셨어요.
자식들 모두 장성해 시집, 장가 보내고
착한 며느리들과 멋진 사위들의 효도에,
손주들의 재롱에,
즐겁게 여생을 보내시기만 하면 되는 연세이신데,
호사다마라 했던가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생기고 말았어요.
저희 아버님께서는 이십여년전에 돌아가셨어요.
그후로 늘 큰집 형제들은 작은 아버님을 정신적 지주로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의지삼아 이겨나가곤 했는데
그런 작은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니 큰집 또한 슬픔을 감출길 없었답니다.
소방 공무원이신 작은집 큰형님과 작은 어머님께서
온갖 정성을 다해 간병했구요.
타지에 사는 형제들도 쉬는날이면 늘 작은 아버님의 말동무가 되었답니다.
투병생활 하시던 중 어렵게 꺼낸 작은집 큰형님의 장지 문제에
이미 예감하고 계셨다는듯이 납골묘를 알아 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좀처럼 연세 많으신 어른들께서는 전통적인 매장을 당연시 여기는데
시대에 맞춰 과감히 용단을 내리신
작은 아버님의 또다른 자식 사랑을 느꼈답니다.
선산이 없는 저희 집안은
작은집 큰형님을 주축으로 아는분의 도움으로 조그마한 땅을 계약하고
납골묘를 설치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사업이지만
막상 관공서를 다녀 보면서 느낀점은
너무나 어이없고, 한심하기까지 하고
무슨 규제가 그리 많고 마을 사람들의 동의서에 결정이 뒤바뀌는 현실도
무척 사람을 애타게 했다며 작은집 큰형님이 푸념하시더라구요.
현실이 매장보다는 화장을 권장한다면
법적 규제도 현실에 맞게 완화 되어야 하고
가족 납골묘 주위의 마을 사람들 또한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고
나도 그럴수 있다는 아름다운 미덕을 베풀어 주었음 하는 생각 간절히 해봅니다.
부음 소식을 듣고 형제간이 모두 모였어요.
예전 같았으면
성묘 마치고 고작 작은집에서 작은 아버님 모시고 뒤늦은 점심을 먹은뒤
처갓집을 핑계로 늘 헤어져 사촌 형제간들끼리 사는 모습도 상세히 모르고
형제간이니깐 만난다는 반쪽같은 아쉬움의 나날이였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더 형제애를 느끼게 되었답니다.
큰집 형제들과 작은집 매형, 매제, 형수님들은 문상객들의 뒷바라지에
발바닥이 아파 못 움직일 정도로 슬픔을 안은체 정성을 다해 대접했구요,
상주들 또한 작은 아버지의 북망길에 환한 등불이 되었답니다.
이런 힘듬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말로는 표현할수 없는 형제애가 솟아나는걸 느꼈어요.
이른 새벽 문상객이 뜸 하면
큰집,작은집 형제간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작은 아버지의 그리움과 많은 화제의 대화로
그동안 알지 못했던 ,
아니 애써 감춰왔을지도 모르는 장막들이
이런 저런 애기에 하나,둘 걷히는 느낌을 받았어요.
남자 형제간들은 그래도 좀 나은데,
매형과 매제 그리고 형수님들과 삶의 애기나 많은 대화의 시간은
이번이 처음이였거든요,
부음 소식부터 삼오제까지 닷새동안이
큰집,작은집 형제간엔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 시간이 되었는지 모른답니다.
슬픔을 서로 안은체 서로를 뒤돌아 보고, 서로를 이해할수 있었다는것이
작은 아버님이 저희에게 "꼭 물려주고 싶었던 유산"은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앞으론
추석날 저녁이 작은 아버님 기일이라 더욱더 형제간의 우애는 쌓아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네요.
어찌보면 물 흐르듯 지나갈 닷새간의 시간이
저희 가족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수없는 소중한 시간이자
"사랑의 도약 " 인것 같습니다.
끝으로 문상객 한분 한분께 감사 말씀 드려야지만 이글로 대신 아뢰옵고
특히
힘드신 업무에도 문상오신 전주소방대원님들께도 심심한 감사 말씀 드립니다.
늘 작은 아버님의 눈매를 보면서 저희 아버지의 체취를 느꼈는데
이젠...............
여성시대 가족 여러분들도 저희 작은 아버님의 명복을 빌어 주세요.
감사합니다.
전북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 송천주공아파트 120동 1501호
유 강철
011-651-5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