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젊은 사람들의 입기운이 세지는 사회현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르신들보다 더 목소리가 커지고, 그만큼 할아버지, 할머니의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이런 현실속에서,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런 습관들에 젖어 사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 할머니의 미소를 내가 직접 바라보기 전에는...
"아이구, 애쓰네. 젊은 사람이."
"할머니 오셨어요?"
"지나가다가 한번 들어와봤어. 부지런해서 맨날 왔다갔다 바쁘구먼."
"하는것도 없는데요, 뭐."
"아니여. 요즘 젊은것들은 어른들봐도 인사도 안하는데, 여기는 안그러잖아. 내가 그래서 자꾸 이집에 들러보나봐. 뭐 필요한 건 없고?"
"예, 아직은 없어요, 할머니. 담에 필요하면 말씀드릴께요."
"그래, 나한테 파도 사고, 부추도 사고 그랴. 시장에 가서 사면 비싸니까. 아무래도 같은동네사람이 더 많이 주지않겠어? 안그랴?"
친정이 식당을 하기에 여러가지 양념이 필요한데, 이 할머니께 파를 자주 사다가 쓰기에 우리는 그 할머니를 "파 할머니"라고 부른다.
"작년처럼 추운 겨울에 파 뽑아오라고 하면 안돼."
"제가요? 전 그런적 없잖아요. 작년 겨울엔 제가 여기 살지도 않았구요."
"자네 말고, 자네 올케말여. 왜 그렇게 노인네한테 추운 겨울날 그것도 새벽같이 파를 뽑아오라고 하는지, 원. 그런 사람이 시어머니한테는 얼마나 잘했을까 몰라."
"노인네한테 추운 겨울날 아침부터 파를 뽑아오라고 하면 어떡해?"
할머니의 넋두리를 듣고 있으면서 난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가끔씩 억지를 부리시는 파 할머니의 세상한탄이 또 시작되고 있었기에. 자식들과 모두 헤어져 살기에 혼자 살아가시면서 세상에 무슨 그리 불만이 많으신지...
"내가 혼자 산다고 얼마나 무시를 당하는가 모르지? 우리 옆집있잖아?..."
할머니는 동네방네 모든 사람들을 한명씩 불러가면서 이런저런 험담도 늘어놓으셨고, 또 억울한 일이나 화가 났던 일들의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놓으셨다.
언제쯤이면 이 넋두리가 끝이 나려나, 난 할 일도 많은데...
"내가 이젠 자식들 보고 싶어도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울렁거려서 차도 못타니까 갈수도 없어. 아이구, 늙으면 다 죽어야해. 이젠 차도 못타니 자식들을 어찌 찾아다니누. 에구, 난 이제 못가, 암만. 못가지. 어지럽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계속해서 할머니께서 같은 말을 되풀이하셨다. 시간이 흘러도 상관이 없고,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방이 있기에 말씀하시면서 내내 미소를 지으셨다.
혼자 사시면서 동네 분들과 별로 친분이 없으셨는지 할머니는 늘 외롭다고 하셨다. 자식들은 일년이면 두 서번밖에 못보고, 그렇다고 살림이 넉넉하지도 않으시기에 어디를 맘놓고 다녀올 형편도 아니었기에, 할머니는 언제나 혼자셨다.
"에구, 젊은 사람이 부지런하구만. 장사도 잘 할거야. 암만. 친정어머니 닮아서 일도 참 잘 할거야. 허허허."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닌데, 할머니는 계속 나를 바라보시면서 웃으셨다.
난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그냥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 뿐이었는데, 할머니께서는 혼자 화를 내셨다가도 금새 큰소리를 내시면서 호탕한 웃음이 지으셨다.
"내가 혼자 사니까 아무것도 아닌것들이 날 무시한다니까. 나도 자식들이 있는데말여. 늙어서 혼자 사는것도 서러운데말여. 그러게 혼자 살면 다들 무시한다니까."
파 할머니는 혼자라는 사실에 분노를 하셨다. 자식들을 그리워하시면서도 찾아볼 수 없고, 자식들의 살림이 넉넉하지 못하기에 할머니를 모실수도 없고, 잔소리가 심하고 가끔 엉뚱한 억지를 부려 상대방을 피곤하게 하시는 할머니의 성격때문에 어느며느리도 시어머니를 모시려고 하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마치 내 현실인것처럼 어딘가 나도 모르는 아픈 상처를 헤집어놓고 만다.
혹시 우리 시어머니의 마음이 파 할머니의 심정이 아닐런지...
마냥 신이 나신 파 할머니께서는, 잠시 어린아이가 되신 것처럼 계속해서 호탕한 웃음을 내게 건네주셨고, 난 그 웃음과 미소에 잠시 푹 빠져들고 있었다.
파 할머니의 미소가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내 교만이 내안에서 점점 희미해짐을 느겼다. 그래도 아직 내게 따뜻한 인정이란게 흐르고 있었나보다.
"장사 많이해서 파 좀 많이 사란말야. 3천원어치 사지말고, 5천원어치 사라고, 알았지? 김치 담을때도 나한테 부추사고. 내가 많이 줄테니, 알았지? 그럼 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