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등교시키고 게으른 잠을 잤습니다.
어딘가를 가야한다는듯 청소하는 손놀림이 빨라지고, 마음은 바쁘기만 했습니다.
모든 준비를 다 마쳤는데 이제부터는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래는 아니었지만 매일 하던 일을 하지 않는다는게 이런 기분이었군요..
부모의 마음이 그런 것일까요..
4월 중순...아이의 소풍날짜가 잡아지고 첫 소풍에 엄마마음도 들떠있었던 어느날부터 친정아버지께서 편찮으시단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소풍 하루전날 더 많이 편찮으시다는 것입니다.
첫소풍이라 따라갈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아빠가 편찮으시다는 소리에 그런것쯤은 까맣게 잊었습니다.
그런데 엄마에게 전화가 오기를 많이 좋아졌다고, 이제 조금씩 일어서기도 한다고, 소풍따라가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아빠가 조금이라도 괜찮아져서 다행이었고, 저도 소풍에 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들만큼이나 야무진 봄햇살아래 즐거운 소풍을 마쳤습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집에 도착했는데,
불길한 전화가 울립니다.
아빠가 급기야 입원하셨다는,,,,게다가 내일 수술해야한다는,,,
소풍에 가지 않을까봐 거짓말을 하신것입니다.
참 한심한 웃음이 나왔습니다...그런줄도 모르고 종일 아이들과 꼬리잡기며 풍선터트리기 놀이에 주름이 가도록 즐거워했다니....
병원에 도착했을때 아빠는 일어서지도 못하시고, 엑스레이를 찍으러 갈때도 휠체어도 못타서 아예 침대째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허리가 며칠전부터 아팠는데, 계속 쓰시다가 아예 디스크가 파열되었다고 합니다.
한번 일어날때마다 식은땀으로 속옷이 젖을만큼 고통은 컸고,
그럴수록 내내 참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자식으로서 무엇을했나,,,화가 났습니다.
다음날 오후에 수술실로 옮겨졌고, 침대로 이동하시는 아빠의 모습이 어찌나 초라하고 서글퍼 보이시던지요..
다행히도 수술은 잘 마쳐졌고, 회복도 생각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처음에 겁먹고 걱정했던 것들은 차차 회복이 빨리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뀌었고, 일어나시기도하고, 조심조심 걷기도 하면서 병원생활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저도 겁이나서 동생들에게 말도 못하고 어떻게할까,,,,걱정되어서 어느정도 회복단계에서 연락을 했습니다.
생전처음으로 병원에 계시는 부모님을 위해서 식사를 날랐고, 하루종일 마음이 병원에 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병상에서 계시는 분들은 어떠셨을런지,,,,,,정말 힘들더라구요.
몸이 힘든게 아니라,,마음이요..
사람마음이 다 그런걸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병원비는 얼마나 나올까?...에서부터 또다른 걱정이 시작되는거에요. 제가 맏이라 그런생각 안할 수 없더라구요.
동생들이야 매일 전화하고, 멀리 사니까 한번 들여다보고 돌아가지만 매일 얼굴보는 저로서는 그게 또다른 고민이었습니다.
이래서 큰자식은 힘이 드는군아,,,힘들다,,,생각이 저를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럴때 언니나,,오빠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나마나하는 생각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에이,,만약 언니오빠가 있었으면 그사람들도 나와같은 생각을 했겠지,,,그냥 내가 하고 마는게 낫겠다,,'싶은 결론까지 내렸습니다..
아빠가 입원하시던 날 저녁부터도 비가 내렸는데, 아빠가 퇴원하시던 날에도 비가 내렸습니다.
논에 모자리를 해 놓았던 싹은 모내기를 할 만큼 자랐고, 아카시아꽃은 어느새 피었다 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도 이만큼 자랐습니다.
병원계실때 더 잘 해드리지 못한게 마음에 걸리고,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당분간은 더욱 조심해야한다고 하고, 몇년은 무리한 일은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이제 바램은 재발되지 않는것,,그리고 두분 건강하게 사시는 것 입니다.
저도 제 자식에게 다른 바램이 없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인데, 제 부모님께도 똑같은 바램입니다.
그동안 제가 받았던 수많은 사랑사랑들을 이제부터는 하나씩하나씩 가끔은 뭉텅이씩으로 갚아드리겠습니다.
아빠,,,병원계실때 잘 못해드려서 죄송하구요,
이젠 아프시면 그냥 아프시다고 말씀하세요,
그래도 충분히 괜찮으세요.
웃으면서, 개운하신듯 퇴원하시는 아빠모습 정말 좋았어요.
사랑해요,,사랑해요,,
큰딸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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