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술 단지

엄마의 술 단지 강명자 나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세상에 대해서 비교적 너그러워질 줄 알았다. 아니 고통이나 좌절이 사람을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킨다고 생각했다. 아니 늙는다는 것에 대한 반대 급부로 온화함과 관대함과 여유로움이 따르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의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엄마의 모난 부분은 질기게도 평생을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고 엄마의 구부러지고 뒤틀린 부분은 업보처럼 따라 다니며 옥죄었었다. 물론 엄마도 나 때문에 상처받고 아파했을 것이다. 모나고 뒤틀린 성격 때문에 자식들에게 외면당한 엄마의 고통을 다 알 수 없지만 나는 적어도 나의 엄마가 세상에 대해서 너그러워질 줄 알았다. 늙고 병들면 세상에 대해서 부렸던 패악과 기만과 오기를 다 정리하고 반성하는 게 삶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는 삶이 자신에게 주었던 상처들을 치유하는 방법을 몰랐다. 나는 그런 엄마가 사사건건 싫다고 정말 싫다고 말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해 삼월 그믐 밤, 군대에 간 아들의 제대 직전 전사 편지 받고 부터 엄마는 예전에 내 엄마가 아니었다. 자식이 죽었다는 소식에 환장을 한 것이다. 부모는 죽으면 산에다 묻는다지만 자식이 죽으면 부모 가슴에 묻는다는 말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가슴에 자식의 무덤을 안고 폐인이 되다 싶을 정도로 죽은 자식 환상 속에서 헤매는 모습이 어린 마음에는 무척 보기 싫었었다. 잠시라도 죽은 자식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깨면 다시 마시기를 수없이 반복 하셨다.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며 두 눈 부릅뜨고 말대답 할 때 엄마는 "열 손가락 깨물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으랴 너도 자식 낳아 키우다 보면 내 맘 이해 할 수 있을 게다" 하셨다. 나는 화가 나서 그 중에도 덜 아픈 손가락이 있고 더 아픈 손가락이 있지 않느냐면서 엄마 가슴에 못 박은 소리를 거침없이 해댔었다. "우리 엄마 아니면 좋겠어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어" 하며 짜증을 부릴 때 엄마는 취중에도 그 말이 서운했는지 "이놈아 나 죽어서 내 제삿상에 술 부어 놓고 에고 데고 눈물 흘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딸의 말투에 화가 나셨는지 서운함을 그렇게 표현 하셨다. "너희가 이 애미의 속을 어떻게 알아, 너희가 술맛을 알아, 술 취한 기분이 어떤지 알아, 길바닥에 쓰러진 진짜 사연이 무엇인지 아냐고... 하시며 우시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눈앞에 선하게 비춰 온다. 그토록 옹이처럼 깊은 고독을 삭여 내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고통이 따르고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는 가슴에 깊은 골을 하나씩 만들며 술이 필요했으리라 싶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엄마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어쩌면 남은 세월도 마다하고 손을 놓아야 했던 아들의 눈물 빛 닮은 소주의 힘도 그나마 버팀 줄이 되었을 게다. 어느 날 나는 정말 우연히도 집 뒤 켠 마루 밑에서 엄마의 술 단지를 발견하였다.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고 느낄 만큼 소훌히 놓여 있는 술 단지를 보게 되었다. 술 단지를 보는 순간 체한 것처럼 가슴 한쪽이 뻐근해 왔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생각할 여지도 없이 술 단지 속에 남아 있던 술을 모두 하수구에 부어 버렸다. 갈수록 쇄잔해 가는 엄마의 건강을 생각해서였다. 그때 엄마는 부끄러운 치부를 들킨 사람마냥 내 손을 얼른 후리치며 황망히 어디론가 가버렸었다. 기억력이 많이 감퇴되어 자주 실수를 하는 엄마도 어쩌면 끝끝내 술 단지를 감추고 싶어했는지도 모르는데 그만 딸에게 들켜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엄마와 술과의 대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었다. 술 단지를 혼자만이 알고 있는 장소로 자주 옮겨가며 밖에서는 위로의 술이 이어지고 집안에서는 독주 (獨酒)를 하면서 언제나 취해 있었다. 궁시렁 궁시렁 혼잣말과 그 맑고 싸한 진액으로 아린 속 씻어 내셨겠지. 어려서부터 귀에 익은 노래가 있다.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 없이 잘 있느냐..."를 술만 마시면 이 노래를 마치 자동 반복 녹음테이프를 틀어 놓듯이 부르다가 힘에 지쳐 잠이 들면 스르르 꺼지는 낡은 녹음기 같았다. 북쪽이 고향도 아닌데 왜 이 노래만 부르냐고 따졌었는데 어린 게 뭘 알려고 하냐며 너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말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을 거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었다. 뜯어도 뜯어내도 다시 그 자리에 돋는 목마름의 사마귀처럼 키가 넘도록 자라나도 어쩔 수 없는 삶, 눈물에 젖어 흔들리는 그림자는 바람 따라 가버리고 허기지도록 불러도 빈자리 고스란히 남았을 때 더 멀어지는 이름 채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 삶이 너무나 고달팠던 엄마, 천가지 만가지 애간장을 안으로 삭인 후유증 때문이었을까. 뇌출혈로 통증이 마디마디 올라갈 때마다 온 몸으로 절규하는 그 모습, 속이 검게 타서 겨우 서 있거나 깃털 같은 겨울눈의 무게에도 버티기가 버거워 삭정이 잔해 같은 부스러기가 되어 길바닥에 쓰러진 엄마가 술에 취해 있다. 술에 취해 쓰러진 사람에게는 모두가 엄마처럼 아픈 사연이 있다. 그들이 겪는 고통의 종류가 다르고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그들이 쓰러 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맨 정신으로 도저히 서 있을 수도 없어 술에 취해 길바닥에 쓰러지는 것이 편했으리라 술이 지친 인생의 동반자인가? 엄마의 지친 삶에는 항상 술이 동무가 되어 있었다. 나는 73년을 산 엄마의 뇌 세포가 서서히 닳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어쩌면 그리 머지 않은 날에 누군가에게 늙었는데도 여전히 변한 게 없다는 핀잔과 비난을 들을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의 술로, 술로 구겨져 버린 내 어린날의 과거도 늘 술잔 그늘에 묻혀 취해야만 했다 영악스레 살아오면서 그토록 떨쳐 버리려 애를 써 보았지만 아직도 세련되지 못하고 어수룩한 기억들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지난 시간은 과거를 돌이키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그 과거 안에서 나는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고독과 자괴감과 비참하고 숱한 아픈 감정들의 가장 원색적인 표면을 삼켜야만 했었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엄마의 나이인 지금 나는 엄마의 눈물 빛 닮은 막소주 한 잔으로 쓰린 마음 달래기도 하고 친구들과 떠들썩하니 막걸리 한 잔도 마실 줄 안다. 어느새 내가 술의 신과 적당히 타협하는 나이가 되고만 것이다. 한 잔, 두 잔, 가슴속에 묻힌 엄마의 술 단지 한숨 소리 밀봉된 시간들 지나 마침내 숙성을 이룬 우리들에게서 여문 향내 맡을 수 있었으면.... 신청곡: 니훈아 어매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 안행 현대@ 103동 506호 hp: 016-657-5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