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리움

0003.gif 문득 그리움 - 류미숙 - 나의 결혼식 날, 싸구려 웨딩드레스 입은 내 손 잡고 당신은 술 취한 듯 휘청거렸습니다 "잘 살아야 한다" 한마디 말 남기고 눈물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돌아서던 당신을 나는, 차마 볼 수 없어 두 눈 질끈 감아버렸습니다 달랑 방 한 칸 옹색한 세간살인데 뭐가 그리 재미나던지 오랫동안 당신을 잊고 살았던 신혼이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할게요 당신이 미웁고 싫었습니다 맑은 정신일 때 보다는 취해 계실때가 많으셨던 당신을 지켜보는 것이 저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죽은 오빠이름을 부르며 서럽다 못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던 당신의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선합니다 지금처럼 아지랑이 하늘거리는 봄날이면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뒷동산을 헤메고 다니시던 당신! 나중에사 알았어요 그 곳에 오빠 무덤이 있었다는 것을... 당신 곁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사랑이라는 확신이 없었지만 서둘렀어요 어린 나이에 큰 딸아이 낳아 키우며 어지간히 애닮은 나날들이었습니다 한사코 우유는 마다하고 빈 젖만 빨아대던 그 녀석 품에 앉고 괜한 설움에 눈물짖다가 시어머니께 혼도 났습니다 잠 못들고 칭얼대는 아일업고 마당에 나와 서 있으면 어찌 그리 눈물은 나던지요 누가 들을세라 속울음을 삼키고 밤하늘을 올려다 보면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별들이 지들끼리 소곤대고 무심한 동네 개들만 짖어댔습니다 내 기억속의 당신은 늘 술 취한 모습이고 온 몸으로 아픔을 안고 계십니다 넘어질 듯 넘어질 듯 당신의 자전거는 오늘도 내 기억속에서 휘청이고 있습니다 아버지! 그래도, 문득 그리움입니다 초라한 당신의 모습이지만 꼭 한 번만이라도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살아 생전 당신이 좋아하시던 소주 한 잔 가득 넘치게 따라 드리고 싶습니다 묵은 김치 송송 썰고, 돼지고기 듬성듬성 썰어 맛난 김치 찌개 끓여서 술 안주로 드리고 싶은데 당신은 그 어디에도 안 계십니다. 2004. 5. 익산시 신동 신동 a 2/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