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리움
- 류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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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05 06:11
문득 그리움
- 류미숙 -
나의 결혼식 날,
싸구려 웨딩드레스 입은 내 손 잡고
당신은 술 취한 듯 휘청거렸습니다
"잘 살아야 한다" 한마디 말 남기고
눈물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돌아서던 당신을 나는,
차마 볼 수 없어 두 눈 질끈 감아버렸습니다
달랑 방 한 칸
옹색한 세간살인데 뭐가 그리 재미나던지
오랫동안 당신을 잊고 살았던 신혼이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할게요
당신이 미웁고 싫었습니다
맑은 정신일 때 보다는 취해 계실때가 많으셨던
당신을 지켜보는 것이 저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죽은 오빠이름을 부르며
서럽다 못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던 당신의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선합니다
지금처럼 아지랑이 하늘거리는 봄날이면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뒷동산을 헤메고 다니시던 당신!
나중에사 알았어요
그 곳에 오빠 무덤이 있었다는 것을...
당신 곁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사랑이라는 확신이 없었지만 서둘렀어요
어린 나이에 큰 딸아이 낳아 키우며
어지간히 애닮은 나날들이었습니다
한사코 우유는 마다하고 빈 젖만 빨아대던
그 녀석 품에 앉고 괜한 설움에 눈물짖다가
시어머니께 혼도 났습니다
잠 못들고 칭얼대는 아일업고 마당에 나와 서 있으면
어찌 그리 눈물은 나던지요
누가 들을세라 속울음을 삼키고 밤하늘을 올려다 보면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별들이 지들끼리 소곤대고
무심한 동네 개들만 짖어댔습니다
내 기억속의 당신은 늘 술 취한 모습이고
온 몸으로 아픔을 안고 계십니다
넘어질 듯 넘어질 듯 당신의 자전거는
오늘도 내 기억속에서 휘청이고 있습니다
아버지!
그래도, 문득 그리움입니다
초라한 당신의 모습이지만 꼭 한 번만이라도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살아 생전 당신이 좋아하시던 소주 한 잔
가득 넘치게 따라 드리고 싶습니다
묵은 김치 송송 썰고,
돼지고기 듬성듬성 썰어
맛난 김치 찌개 끓여서 술 안주로 드리고 싶은데
당신은 그 어디에도 안 계십니다.
2004. 5.
익산시 신동 신동 a 2/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