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장면을 너무나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 큰아이처럼 얄밉게 자장면을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도 배가 부르다면서 혀를 내두를만큼의 넉넉한 자장면을 단번에 꿀꺽 삼키는 8살난 큰아들 현구.
언제나 욕심꾸러기 큰아들은 자장면 먹을 때 마다 욕심을 부렸다.
"엄마, 엄마. 저요, 네, 이것 혼자 다 먹을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
어찌나 큰소리로 떠들어대는지, 옆에 있는 손님들한테 미안할 정도였다.
"그래그래, 알았다, 알았어. 남기지 않을 자신 있는거지?"
"네. 전 정말 자장면 좋아하잖아요. 야, 정말 맛있다. 헤헤."
귀엽다고 해야할지, 얄밉다고 해야할지, 자장면을 후루룩 정신없이 입술에 묻혀대는 큰아들의 모습에 웬지 모를 씁쓸함이 스쳤다.
요즘들어 아무래도 주머니사정이 어렵다보니, 사실 조심한다고 하면서도 아이들앞에서 나도 모르게 애들아빠와 함께 대화하는중에 "돈"얘기를 자주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번 월급은 조금 더 오를까요?"
"글쎄...."
"그럼 이번에도 지난달하고 똑같아요? 그럼 안되는데...., 지난번에 공과금도 제대로 못냈잖아요. 이번달부터 월급인상된다고 했었잖아요."
"그런다고 하기는 했는데, 이상하게 회사에서 아무런 말이 없네."
"그럼 어떡해요? 정말 힘든데..., 지갑에 천 원짜리 한 장 없는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단말예요."
아이들이 "돈"을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돈이 있어야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이나,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엔 너무나 눈치가 빠른게 사실이다.
"엄마, 오늘도 엄마는 돈 없어요?"
"왜?"
"아니요, 네, 친구들 아이스크림 좀 사주고 싶어서요. 돈 없으면 그냥 놔두세요. 다음에 사줄께요."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듯한 아이들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엄마 주머니가 텅 비었다는 소리를 이해했다는 말일까?
오늘은 오빠네 큰 딸 생일파티에 자장면을 사준다는데, 요즘 힘들어하는 우리집 사정을 잘 아는 올케언니가 나와 우리 두 아들녀석들을 함께 초대해줬다. 물론 선물도 없이 빈 손으로 염치없는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현구야, 오늘은 정은이언니 생일이라서 외숙모께서 우리 현구 자장면 사준데요. 그러니까 맛있게 잘 먹어요. 알겠지?"
"네. 엄마. 저요 자장면 정말 좋아해요. 맞죠, 엄마~"
아니나다를까 또 한번 우리 큰아들은 자장면이 앞에 놓여지자마자 자장면 그릇을 감싸기 시작했다. 행여 누군가 자신의 자장면을 덜어가기라도 할까봐 하는 생각에서 미리 방어를 하는 모습인가보다.
"너 지금 뭐하는거니?"
"저는 자장면 한그릇 다 먹을 수 있는데, 제것 누가 가져갈까봐서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것을, 우리 아이는 그만큼 마음이 굶주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혹시 누군가 내 자장면을 가지고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잔뜩 몸을 움츠려 자장면을 감추면서 후루룩 먹어대는 모습이라니....
저 모습을 애들아빠가 봤더라면 아마 나보다 더 맘아파 했을지도 모르겠다.
항상 돈이 없어 아이들 먹고 싶은 것 하나 제대로 사주지 못해 미안해 하는 아빠였기에 이런 모습에 더 속상해 할게 분명했다.
"그렇게 자장면이 맛있니?"
"네, 엄마. 정말 맛있어요. 엄마, 저 이것 다 먹고 누나가 남긴 것 더 먹어도 되요?"
"그럼. 알았으니까 천천이 먹어, 알겠지?"
대답도 없이 자장면을 먹고 있는 큰아이는 어느새 초등학교 1학년의 늠름한 모습으로, 어렸을 때 입가에 잔뜩 묻히고 먹던 아이가 아니었다.
얄미운 자장면이 울고 있었다.
자주 사줄수도 없고, 그렇다고 먹고 싶을 때라도 사줬어야하는데...
여기저기 얄밉게 남겨둔 자장면이 우리 큰아들을 바라보며, 훌쩍거리는듯 훵하니 주인을 기다리는 듯 보였다.
내 자장면도 너무 얄밉게 느껴진다.
배부른 자장면이 왜 이렇게 오늘따라 얄미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