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나도




울집 남편, 어젯밤 완전 고주망태가 되어 집에 들어왔다.
사무감사를 받는 첫 날이고,
동문 모임이 있는날이라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다 싶었다.
난 기어이 한마디 하고 말았다.
"속 안 좋다고 병원을 다니지 말던지..."
가시돋친 내 말에 남편은 멋적었던지 알콜이 들어가니
아픈 속도 안 아프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 모습이 어찌나 얄밉던지.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이면
한 이불 덥고 자는 일이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역한 냄새뿐만 아니라, 
평소때하곤 다른 고약한 잠버릇 때문에 
나는 수난을 당하기 일쑤다.
어제는 거실로 피신을 나와 위기모면을 했지만,
남편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느껴야 했다.


술!
나도 가끔씩은 술이란 것을 마신다.
내가 마시는 술이래야 맥주 두 서너잔이 전부지만,
그것이 몸 안에 들어 갔을 때 그 기분을 알 것도 같다.
목 안으로 부어 넣었을 때의 짜릿한 그 맛은
온 몸에 소름을 돋게 한다.
두번째 잔을 비웠을 때 부터는 
하체의 힘이 스르르 빠지는 느낌이고,
얼굴 전체가 후끈거린다.
나도 몰래 술술 이야기 보따리가 풀어진다.
그러다가 까닭없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요즘 다들 살기가 어렵다고 한다.
고로 사람들은 술을 더 의지하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남자분들은 퇴근 후 마시는 한잔 술이 
삶의 낙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술을 마시며 윗사람도 질겅질겅 씹을 것이고,
미꾸자리처럼 요리저리 빠져 나가기 잘하는 
얄미운 아랫사람 흉도 볼 것이고,
술잔속에 요지경 속 세상도 털어 마실 것이다.


술이  위안을 주고,
내일을 시작하는 원동력이 된다면 나는, 
내 남편이 또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술에 절여서 사는 것을 두 눈 딱 감아주겠다.
하지만 허구헌날 술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은
도저히 용납을 할 수 없다.
요샛말로 맛짱을 뜨자니 
나의 술 마시는 실력이 형편없거니와
집안꼴이 개판일 것이 자명한 일인데
내 어찌 미련한 짓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가끔은 나도 취해 보고 싶다.
알콜의 투명한 마력을 빌려
마음 속엣말 속 시원히 하고,
몸 따로 마음 따로 걸어도 보고
훠이훠이 일상도 손사래 쳐보고 싶다.


가끔은 내 생각도 비틀거린다는 것을
남편은 왜 몰라 주는 것일까.



2004. 4. 2.




마음 속 시끄러운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