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싸기

부안에 사는 형님부부가 저녁을 같이 먹자며 오늘 만나자고 하시더군요. 마침 이번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하영이에게 선물을 사러 남편과 함께 서점에 들렀읍니다. 결혼전엔 세상에서 가장 편한곳이 서점이고 가장 좋은 냄새가 새책냄새엿는데 애낳고 살림하다 보니 서점은 커녕 책을 읽을 시간도 없네요. 오랜만에 맡아보는 새책냄새를 맡으며 이것저것 아이에게 적당한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읍니다. 예쁜 포장지로 정성껏 책을 포장하는데 문득 남편이 이럽니다. "요즘 애들은 교과서 포장안하지?" "글쎄. 하나? 안하니?" 갑자기 궁금해져서 옆집 학생한테 물어봤더니 별걸 다묻는다면서 픽 웃고마네요. 저희때만해도 새학기가 되면 책싸기전쟁이 일어났는데 말입니다. 아이들이 많은 집은 엄마가 일년동안 달력을 버리지않고 정성스럽게 모았다가 주시곤 햇죠. 그 빳빳하고 하얀 달력도 운이 좋아야 내차지가 되지 그렇지않으면 누런 종이로 책을 싸야했읍니다. 그럼 또 그게 서러워서 울고불고 방바닥을 굴르면서까지 떼를 써야 엄마는 이집저집 돌아다니시면서 달력을 구해오셨읍니다. 조심스럽게 가위집을 넣어서 밥풀로 종이를 붙이고 난 다음 정말 새책싸기의 클라이막스가 기다리고 있읍니다. 그건 바로 교과서 이름적기죠. 그건 당연히 집에서 가장 글씨를 잘쓰시는 아빠의 몫입니다. 국어. 산수. 사회. 도덕.. 검은 매직으로 아버지가 써주시는 교과서의 글씨는 절대 마를때까지 만지면 안됩니다. 혹시라도 번지는날엔 다시 책을 싸야하니까요. 그렇게 글씨가 마를때까지 기다렸다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음날 학교에 갈 가방을 쌉니다. 낡은 가방속엔 유난히 하얗게 빛이나는 교과서가 가지런히 누워있읍니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싼 책이건만 하루가 가고 한달이 되고 두달이 되면 어느새 여기저기 찢어지고 김치국물이 튀고 심지어 낙서까지 해놓았죠. 하지만 다음 새학년이 될때까지 다시 책을 쌀수가 없읍니다. 이미 그건 새책이 아니기에 아무리 싸봤자 소용이 없거든요. 요즘처럼 이쁜 포장지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가요? 하지만 이 이쁜 포장지보다 그옛날 아버지의 정성이 담긴 달력포장지가 유난히 그리워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