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쑤킴의 초콜릿

안녕하세요? 몇 년 전, 발렌타인데이에 저희 가족에게 생긴 에피소드랍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퉁퉁 부어서 집으로 돌아왔더군요. "너 왜 그러니? 어디 아파?" "아니~""그럼.....? 아하! 너 오늘 뭐 잘못해서 선생님한테 혼났구나?!!" "아니라니까!!" 하면서 자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더군요. 아들녀석은 하루 온종일 뾰루퉁 해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었어요. 남편에게 아들 기분이 저기압이라고 했더니, 남편은 아이에게 면담 요청을 하더군요. 그런데 엄마의 물음에는 `여자가 뭘 알아?` 하는 식으로 간섭 말라는 뜻을 비추던 녀석이, 아무리 목욕탕에 함께 가는 사이라지만, 자기 아빠의 요청에는 선뜻 응하더군요. 저는 빼꼼히 열린 방문 사이로, 부자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있었습니다."승빈아!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아빠에게 얘기해봐!" 그러자 녀석은, "아빠! 나 잘생겼다고 했지?" "그~럼! 울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얼마나 잘났는데~~ 왜? 누가 못생겼다고 그래?" "그치? 그런데 왜 나한테는 아무도 초콜릿을 안 주는거야?""어? 아참, 오늘 발렌타인데이로구나! 으응? 어~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얼버무리며 잠시 생각하던 남편은 다시, "아함! 알았다! 혹시 네가 화이트데이에 아무에게도 사탕을 주지 않아서 아마, 자기들도 안 줬던게 아닐까? 하하! 그리고, 아빠는 이렇게 생각한다. 음~ 초콜릿은 포장지에 불과해! 예를 들어, 정성스런 마음을 담은 편지의 겉봉투와 같다고나 할까......? 친구들이 우리 승빈이와 친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미쳐 초콜릿을 준비 못해서 못 주었을 수도 있고 말야~ 초콜릿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겠지...우리 승빈이가 마음을 열고 기다리면 그 마음은 언제든지 다시 가질 기회가 있을거야~ 알겠지?" 아들은 아빠의 말에 납득이 갔던지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그날 밤, 남편은 침대 밑에서 바스락거리면서 뭔가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저는 잠이 들었지요. 이튿날 아침, 조기축구를 다녀오던 남편은 몇 개의 선물꾸러미를 내밀며, "승빈아! 이게 뭘까? 우편함 속에 있던데? 우리 승빈이 아침부터 선물도 받고 좋겠다!" 하더군요. 아들은 그 중 한 개를 뜯어보더니, 금새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후닥닥 등교를 하더군요. 그리고, 그 날 오후 아들은 이 세상 고민은 다 짊어진 듯한 심각한 얼굴을 하고 집으로 들어 왔습니다. 저는, 벌써 사춘기는 아닐테고 왜 그러지? 하면서 눈치를 살피고 있었지요. 그런데 아들은 뭔가 망설인 듯 하더니, "저기 엄...마! 엄마도 아빠한테 좋아한다는 말을 먼저 했어?" 저는 녀석의 예기치 못한 질문에 당황했죠 그리고 피식 웃음이 나면서. "녀석! 그건 왜?"했더니, 아들은 짱구모양의 초콜릿 발바닥 속에서 작은 카드 하나를 꺼내 보여주더군요. 읽어보니, <저는 친절한 당신이 참 좋습니다! 늘 곁에서 당신을 볼 수 있음에 행복하고, 당신의 시녀로 존재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기쁨입니다. 미쑤타 문! 살앙합니당! 추신 : 놀래셨죵? 한 번 웃으시라구요~~! 미쑤킴, 올림~ 히히히.......> 아니! 이게 뭐야? 무슨 어린애들이 뭐? 당신을 볼 수 있음에 행복? 시녀? 살앙? 츠암나!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이 무슨 아이들 입에서 망측한 소리야? 저는 그 애매모호한 내용을 풀이해서 임기응변할 말을 잃고, "승빈아 친구들이 너와 친해지고 싶다는 뜻 인가봐!" 하고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머리를 싸매고 그 묘령의 카드를 분석하기에 돌입했습니다. 분명히 애들의 문장 실력은 아닌 것 같고....... 아무리 생각해도 제 수사는 미궁에서 헤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알고 봤더니, 남편이 저도 모르게 회사의 여직원에게서 받은 초콜릿을 다시 아들에게 온 것처럼 재 포장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실수였다지 뭡니까.. 그러나 남편은, 장난끼 많은 회사 미스김이 자기를 웃겨 주려고 쓴 내용일 뿐이라고 얼렁뚱땅 넘겨버렸지만, 제 머릿속에서는 미쑤킴의 "과장님! 초콜릿 어땠어요?호호호!~" 하는 환청까지 들리는 듯 하면서 뭔가 껄쩍지근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머지 초콜릿 속에도 의미심장한 카드가 또 들어 있었을까 싶어서 저희 집 쓰레기통은 다 뒤집어봤지만 물증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저는 남편을 긁기 시작했죠."보자보자하니 마누라를 보자기로 아나~ 당신이 평소에 여직원들에게 어떻게 처신을 했길래 그런 농담이 나올 수 있냐고!~오! 그리고, 당신의‘give and take’의 법칙으로라면 김치 냄새나는 마누라는 사탕이 안 어울릴까 걱정돼서 로즈향 같은 미쑤 킴에게는 화이트데이 사탕 바쳐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 답장 받으셨어?!!!"라고 하거나 말거나 남편은 입까지 헤~ 벌려 드르렁드르렁 잠이 들어 있더군요 그러나 어이됐건, 우리아들은 지금도, 그 때 초콜릿가장 많이 받은 자기가 여자 애들에게 인기 짱이었다고 착각하고 자랑하네요~ 그래서 엄마인 저도 행복합니다. 수고하세요 광주 광역시 서구 금호동 도개공2차 201동 15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