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다섯밤 남았어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우리 큰아들 현구가 요즘은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답니다. 하루가 지날때마다 손가락을 꼽아보면서 며칠 남았는지 계산하는 버릇이요. 무슨 말이냐구요? 우리 아이들이 너무나 고마운 걸 모르고, 그냥 당연히 엄마, 아빠는 아이들이 가지고 싶은것이나, 먹고 싶은 것이 있을때마다 무조건 사줘야하는지 알고 감사할 줄 모르기에, 고마움과 감사를 가르치고 싶었거든요. 애들 아빠는 어떻게든 아이들이 원하는 건 빠뜨리지 않고 사줄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 때론 저와 다툰적도 있답니다. 과자나 장난감, 무엇이든 아이들이 가지고 싶어하면 그때그때마다 사주니까 이젠 아이들이 이렇게 말을 하더라구요. "아빠, 내일은 장난감 사주세요. 오늘은 사탕만 사주시면 되요. 알겠죠?" 이젠 당연하게 하루에 한번씩 자신들이 먹고 싶거나 사고 싶은 것을 가지게 되는 줄 아는 우리 아이들, 자꾸 말버릇도 나빠지는 것 같고 해서 전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답니다. "엄마, 우리 라면 먹고 싶어요. 라면 끓여주세요." "라면? 어떡하지? 지금 엄마가 돈이 하나도 없는데...." "아빠 오시면 끓여주세요, 알겠죠?" "글쎄, 아빠도 요즘은 지갑에 돈이 없는 것 같던데..." "그럼 라면 어떡해요? 우리는 먹고 싶은데." "그래, 알았어. 엄마가 스무밤 자고 라면 끓여줄께." "네? 스무밤이요? .........., 알겠어요. 그때 끓여주세요." 큰아이는 뭔가 생각을 하더니 손가락을 구부려 하나, 둘, 셋을 세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오늘 밤을 자면 열 아홉밤이 남고, 내일 밤을 자고 나면 열 여덟밤이 남는다면서 라면 먹을 날을 손꼽아 세고 있더군요. 아무것도 아닌 라면 한개의 문제라지만, 먹을 것이 흔하고, 장난감이 여기저기 손에 잡히는 환경에서 감사와 고마움을 느낄 줄 모르는 우리 아이에게, 라면 하나 먹기까지 얼마나 아빠, 엄마가 일을 해야하고, 그 시간을 기다릴 줄도 알아야하는지를 가르켜주고 싶은 마음에, 전 아이와 스무밤이란 시간을 약속했답니다. 사실, 그때 제 주머니에 돈이 있었다면 어쩌면 바로 라면을 사다 끓여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생활비가 빠듯한 형편이었고, 또 다른 이유도 있었기에 전 이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아이한테 라면 하나 끓여주면서 스무밤이나 기다리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아마 모르실거에요. 그렇게 약속한 시간이 벌써 4일 지났답니다. 이제 열 여섯밤이 지나면 우리 큰아들 현구한테 "컵라면" 한 개를 끓여줄려고 합니다. 열심히 하룻밤이 지날 때마다 "엄마, 이제 열 다섯밤 났았어요."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때론 가슴을 울리지만, 그래도 전 감사하고 싶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이 라면 하나에도 기다릴 줄 알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거든요. "형, 우리 이제 열 다섯 밤 자면 컵라면 먹을 수 있지? 진짜 신나지?" 이번에 일곱 살이 되는 동생의 말입니다. 라면 하나 먹으면서 신난다는 표현을 쓰는 우리 아이들, 미안한 마음과 알 수 없는 눈물을 짓게 합니다. 세상에 뒤섞이면서 고마운 마음, 감사하는 마음, 가난에 휩쓸려 서글픈 마음, 이런저런 여러가지 마음들을 배워봅니다. 추운 겨울이지만 누군가 저를 위해 베풀어주는 따뜻한 사랑도 배웠습니다. 사랑을 나눌 줄 아는 마음은 올 겨울의 추위도 화사하게 녹여줍니다. 열 다섯밤이 지나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을 우리 두 아들에게 끓여줄 겁니다. 애들 아빠와 아이들과 너무나 행복한 겨울밤을 보내려고 합니다. 지갑속에 감춰둔 비상금이 그때 쓰여질것 같습니다. 눈물이 두 볼을 채우지만 슬프지 않습니다. 앞으론 기쁜 일만 있을겁니다. 모선경(남원시 월락동 157-22번지 2층 오른쪽 590-200) 연락처 : 063-625-5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