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참. (부제 노채마을에서 사는 이야기)

이 남식 부장님. 윤승희. 조형곤님 김 난수님 이주영.류 선희님 2004년에도 모두 건강하시고 계획하는 일 성취 되시길 기원 하겠습니다. <여성시대>방송은 항상 애청하고 있는데 그 동안 편지를 쓰지 않는 것은 다른 애청자들에게 방송 참여를 제공한다는 손톱만큼의 양심이라고 해야 할지? 제 목 : 그것 참 모 방송Tv의 (가족 오락관) 프로 진행자의 이름이 허 참씨 인데 우리집에서는 저의 별명이 <그것 참> 입니다. 이웃집에 사시는 아버지 뻘 되시는 분이 아침 일찍 찾아오셔서 "기용이! 큰소랑 새끼랑 찌러서 700만원 받고 팔면 괜찮겠어 ? 지금 소장사가 우리 집에 와 있어" 빨리 대답을 해 달라는 눈치다.나는 한참을 뜸을 들이다가 "그것 참.그것 참" 아저씨는 더 이상 나의 대답을 못 듣겠다며 핑 가버렸다. 또 다른 할머니가 집에 오셨다. "기용이 집에있어? " 예 들어 오세요 어떻게 아침식사는 하셨어요? "그람 벌써 먹었지. 다른게 아니고 우리밭 하우스 옆에 감나무 좀 벼줘 . 해마다 감이 열지만 우리 두 늙은이가 딸수도 없고 하우스에 그늘이 져서 고추도 안 말라" 나는 또 "그것 참. 그것 참"하니 그 할머는 더 이상 나의 대답을 듣고 싶지 않다는 얼굴로 "그람 종철이 한테 가봐야 겠고만" 하며 방문을 팽 닫고 나가신다. 그 감나무가 그 자리에 있기 까지는 50년도 더 되고 봄에는 땅에 떨어진 감꽃을 볏짚에 뀌어 목에 걸고 다니며 빼어 먹기도 하고 여름에는 그 감나무 그늘 아래서 재호네랑 복기네 아버지가 담배잎을 엮는 자리였고 가을에는 우리 꼬맹이들이 학교 갔다와 책보자기는 마루에 집어 던지고 그곳으로 가면 빨간 홍수는 허기진 배를 채워 주웠다. 나에게는 5.3.1.학년의 세 아이들이 있는데 "아빠!"하고 부르기 보다는 "그것 참. 그것 참"하고 부를 떄가 많다. 요즘 농촌의 고령화로 44살인 나는 마을의 꿈나무고 아기다.마을의 어르신들이 아침.저녁 가릴것 없이 오셔서 "기용이 오늘면에 안가? 가면 나랑 같이가" "기용이 오늘 조합에 갈일 없는가? 가면 개사료 두 푸대만 사다줘" "기용이 이게 뭔 편지여 집배원이 주고 갔어. 한번 읽어 줘봐 " 저녁에는 마을 이장님이 오셔서 "우리랑 자매 결연 맺은 전주 송천동 부녀회에 연하장 몇장 써줘" 몇일 전에는 마을 회관 준공식 끝나고 주민들이 돈을 모아 노래방기계를 사다 놓고 터를 올리자며 오고 가는 술잔속에 음주 가무가 시작 되었다. 70세 넘으신 아주머니가 술 몇 잔드시고 " 나는 기용이가 좋아 조카나 마찮가지여 " 하며 나의 볼에 여러번 뽀뽀를 했다. 그때 아주머니들은 재미있다고 박수를 치고 뒤로 넘어지며 웃었다. 나는 한술 더 떠서 아부머니를 보듬고 회관 넓은 방을 몇 바퀴돌며 "나도 아주머니 없이는 하루도 못 살아요"하고 옆을 보니 혜라 엄마(아내)가 보고 있었다. 집에 와서도 여러 변명보다는 " 그것 참 . 그것 참"이었다. <그것 참>이라는 단어가 다른 사람은 곧 죽게 생겼는데 나는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어려운 일을 함께 의논 하자는 적극적인 동참의 표현이기도 하다 . 각 사람마다의 자주쓰는 언어가 있는데 ( 조형곤씨의 "좌우지가" 류선희씨의 "굉장히" 노채마을 영농회장님의 "쉽게 말해서 " 성 기용이의 그것 참 입니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으신 여러분은 인내심이 대단 하십니다. 2004년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얀눈 소복이 쌓인 노채 마을에서 성 기용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