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세상 류미숙 중국어학원에 간 작은딸 찬은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집에 들어온 건 뻐국시계가 오후 네시를 막 알리던 참이었다. " 찬은아, 왜 그래?" " ........." 아이는 대답대신 고갤 떨궜다. "무슨 일인데 그래?" 나의 추궁에 아이는 지갑을 잃어 버렸다며 울상이었다. 워낙 꼼꼼한 성격이라 제 물건이라곤 조그만 메모지 한 장도 잘 챙기는 녀석인데 당황스러웠다. "어쩌다 잃어 버렸는데?" " 가방을 빙빙 돌리며 왔는데 아마..." 아이가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짜증섞인 목소리로 다그쳤다. 곧 아일 밖으로 내몰았다. 제법 추운 날씨었으나 혹시나 해서였다. 그리고는 저녁 지을 쌀을 씻었다. 내 마음은 벌집을 쑤셔놓은 것 마냥 웅웅거렸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다소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은 나와는 달리 상대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정중한 신사분의 음성이었다. 바짝 긴장이 되었다. "소찬은 어린이 집인가요? 여기는 어양동 동사무소입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영등 동사무소도 아니고 어양 동사무소에서 왠일일까 싶었다. " 네, 그렇습니다만" 의아해하는 나의 대답에 동사무소 직원은, 어느 분께서 우리 아이의 지갑을 습득해 와 주인을 찿아 달라고 놓고 갔다며 와서 찿아가라는 연락이었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고, 곧장 동사무소로 달려 가 지갑을 찿아왔다. 집에 오니 지갑을 찿으러 나간 아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걱정이 되어 베란다쪽을 힐끔거렸다. 아이의 모습은 보이질 않고 찬바람만 얼굴을 때린다. 금새 걱정이 앞섰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가 잔뜩 풀죽은 모습으로 들어왔다. "엄마, 지갑 못 찿았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아이를 놀려 줄 생각을 했다. 그러나 금새 마음을 바꾸고, 지갑을 찿았다고 하니 아이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어떻게 찿았냐며 호들갑을 떠는 아이 손에 손때묻은 지갑을 쥐어주니 좋아서 팔딱팔딱 뛰고 난리었다. 언제 혼났냐는 듯. 아이의 지갑안에는 시립도서관 대출증과 백원짜리 동전 다섯 개. 공중전화 카드 한 개가 전부였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데 지갑을 주워 주인을 찿아 달라고 마음을 써 준 그 분과, 지갑안에 든 아이의 도서대출증을 보고 검색끝에 우리집 전화번호를 알아내 연락을 준 동사무소 직원이 고맙기만 하다. 나는 지갑을 주워 동사무소에 놓고 간 그 분이 어떤 분일까 궁금하여 문의를 드렸다. 마침 동사무소 직원이 휴대전화번호를 적어 놓아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최대한 예의바른 목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요즘 세상을 뭇 사람들은 각박하고 이기적인 사람들로 넘쳐난다고들 한다. 예전처럼 정이 넘치는 사회는 분명 아닌 것 같다. 허나 나는 믿는다. 아직도 이 세상은 살 만한 세상이라고...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2004. 1. 16. 익산시 영등동 우미A 103/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