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 1일 AM6:00가 되자 간밤 잠자리에 들기전 머리맡에 맞춰놓아둔 알람시계가 삐리릭 삐리릭 요란스럽다.
평범했던 일상의 다른 날들과 다르게 늦잠꾸러기인 신랑과 나는 가뿐하게 이부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알람시계의 요란한 울림에도, 엄마 아빠의 소란에도 끄떡없이 세상 모르게 자는 아이를 깨운 신랑은 두툼한 누비바지와 외투를 꼼꼼히 챙겨입혔고 나는 그사이 부엌에서 보온병에 끓인 물을 채웠고, 계란을 삶았다.
조그만 반찬통에 김치를 조금 옮겨담았고 컵라면과 젓가락도 꼼꼼히 챙겼다. 결혼 3년차인 우리부부가 결혼첫해부터 새해 첫날마다 어김없이 벌이는 우리집의 소박한 해맞이풍경이다.
2001년 12월 17일에 결혼했던 우리는 2002년의 찬란한 해가 떠오르기를 고대하며
"해가 바뀌었으니까 우리가 벌써 결혼2년차 부부가 되버렸네. 졸지에 결혼14일만에 2년차부부가 되버린셈이네....."라며 너털웃음을 지었었다.
우리부부가 찬란한 빛을 발하며 솟아오르는 붉은 해를 향해 건강과 화목을 기원하고 있을때 그때 바로곁에서는 40대로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들 서너명이서 라면을 끓여먹고 계셨는데 얼마나 그 라면이 먹음직스럽게 보이던지 신랑과 나는 침을 꼴깍꼴깍 삼켜야했다.
그때 신랑과 나는 맹세했었다. "자기야! 내년 해맞이때는 우리도 꼭 컵라면을 끓여먹으며 해맞이를 하자....."라고
2003년 새해 첫날역시 우리부부는 어김없이 작년에 해맞이를 했던 장소를 다시 찾아갔다.
이번에는"엄마" "아빠" "맘마" 옹알이가 한창이던 아들놈과 함께였다.
그런데 무슨 이유때문이었는지 갑자기 서로 다투게된 신랑과 나는 뽀로통해져서 기껏 준비해가지갔던 컵라면은 뜯어보지도 못하고 도로 집으로 가져왔다.
기필코 해맞이를 하며 컵라면을 먹어보겠다던 1년동안의 기다림이 어찌나 아쉽던지 속으로 신랑에게 얼른 사과하고 기왕준비해왔으니 컵라면을 먹고 가자고하고 싶은걸 꾹꾹 눌러참느라 혼났다.
올해 2004년 1월 1일.
신랑과 나 그리고 이제는 못하는말이 없을 정도로 수다장이가 된 27개월된 아들놈은 올해도 어김없이 해맞이길에 나섰다.
가는길에 어찌나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있는지 한치앞도 보이지않아 신랑은 거북이 운전을 하며 일출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못할까봐 걱정을 한다.
이윽고 무사히 안개속을 뚫고 우리 가족이 도착한 곳은 대아저수지 전망대였다.
여름 무더위때마다 시원한 바람이있는 이곳이 좋아 자주 찾다보니 많은 인파가 몰리는 유명해돋이 명소보다도 이곳이 익숙하고 편해서 좋다.
전망대 주변은 벌써 우리보다 일찍 도착한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일출을 보기에 좋은 자리를 물색해 자동차를 주차한 우리는 아이가 어려서 전망대로 올라가기는 무리일것 같아 자동차안에서 일출을 맞이하기로 했다.
7시 30분에서 40분 사이에 있을거라는 일출을 기다리며 신랑과 나는 서로 덕담을 주고 받았다.
"여보 올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하고 그리고 사랑해요."
"뿡뿡아! 올해에도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해야한다. 명랑소년 화이팅!"
덕담을 끊내고 2004년의 첫일출을 기다리기를 한시간여가 지났건만 뿌옇게 대아댐 주변을 휩싸고있는 안개는 좀체로 걷힐 기미를 보이지않자 아까부터추위에 떨고있던 사람들은 한두명씩 차에 오르더니 돌아가기 시작한다.
혹시나 싶어서 라디오를 켜보니 뉴스에서 일출보기가 어려울것 같다는 소식이다.
일출을 볼수없다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안개에 쌓인 대아저수지를 바라보며 2년을 고대하던 컵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2년을 기다린끝에 드디어 맛보게된 컵라면은 어찌나 그맛이 꿀맛이었는지 일출을 보지못해 아쉬웠던 마음이 싹 가셨다.
사람이 먹는것에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것이 창피하기도했지만 참으로 맛있게 컵라면을 먹어댄 우리 세식구
"올해 먹을복이 터질랑갑네."
라며 즐겁게 웃으며 돌아왔다.
비록 제대로된 2004년 해맞이는 못하고 돌아왔지만 우리 가족에게 추억 하나를 더 만들어준 소중한 날이었다.
"올해 대한민국 경제 크게 발전하고, 취업률도 올라가고, 정치권은 싸움 그만하고 서로 합심해서 나라위해 힘쓰고, 그리고 대한민국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063-291-0084 박해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