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주먹밥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아~~~~~" 아침이면 귀에 따가리(딱지)가 앉을 정도로 반복되는 엄마의 잔소리 대답은 늘~~ "네" 하면서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해찰 할 일은 그리도 많았던지~~~ 집으로 돌아오는 중간쯤이면 배틀바위가 나오는데. .근처에 몇그루의 묵은 꿀밤나무가 서 있었다 그 곳에선 가는 계절이 아쉬워 한자락 남은 여름햇살을 끌어안고 매미들이 목청을 높여 노래를 하고 있었고. .썪은나무 구멍사이로 들여다 보면 한무더기의 풍뎅이들이 따가운 햇살을 피해 꾸물꾸물 엉켜 있었다 그 중 몇마리를 잡아 다리 중간쯤을 부려뜨려 등을 땅에다 대고 누여 놓으면 꼼짝도 못한 풍뎅이는 있는 힘껏 날개를 펴서 맴을 도는데. .그것이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인지를 몰랐던 철이 없던 아이는 마냥 신이 나서 손바닥으로 땅을 탁탁 치면서.. "빙빙 돌아라~~~ 어서 빨리 돌아라~~~ " 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무 그늘이 동쪽을 향해 길게 그림자를 드리워 오면 꿀밤나무 껍질에 모올래 숨어 있던 뿔이 멋진 장수풍뎅이를 잡아서 친구삼아 집으로 돌아 오는데... 어느새 땅거미는 저쪽 땅골에서부터 마을을 향해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이쿠~~ 또 엄마한테 야단 맞겠네에~~~" 눈만 뜨면 들로 산으로 분주하신 엄마 오늘은 옥남이네 집에 품 갚으러 가신다고 했는데... 엄마가 오시기 전에 얼른 저녁밥을 지어야했다 일 가시기 전에 양은 함지박에 불려 놓으셨던 보리쌀을 학돌에 넣고 손으로 잡기 좋을만한 것으로 주워다 놓으셨던 매끄러운 돌로 박박 문지르며 갈기 시작하였다 허리를 구부리고 까만때가 벗겨질 때까지 학돌안을 빙빙 돌리며 갈다보면 허리도 아프고 팔도 아픈데..어느새 보리쌀은 뽀얀 모습으로 때를 벗는다 까만 가마솥에 보리쌀을 넣고 물을 넉넉하게 부어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솔가리(마른솔잎)들은 빨갛게 빛을 토하며 잘도 타들어 갔다 부르르~~~ 보리쌀이 익어 가면서 끓어 넘칠때면 보리밥이 푸욱~~ 퍼지도록 두었다가 보리밥 중간에 한줌의 쌀을 놓아 다시 밥을 짓는다 불이 타들어 갈수록 솔솔 밥이 익어가는 냄새~~~ 엄마가 바빠서인지 삶은감자도 고구마도 없어서 출출했던 아이는 윤기나는 가마솥 뚜껑을 열고 보리밥 사이에 뽀얗게 들어앉아 있는 하얀쌀밥을 주걱으로 살살펴서 한웅큼 쥐고는 입으로 크게 베어 물었다 "아....고소하면서도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그 맛!!" 호호 불면서 뜨거운 김을 뱉어 내기도 하고 혀로 입안 이곳 저곳을 굴려 가면서 씹는 맛이란.. ..꿀맛 ...바로 그것이었다 엄마가 밥을 퍼 주실때는 쌀밥만 따로 추스려서 할머니 아버지 상에 올려 드리고. .다음에 오빠와 남동생에게 주고..언니나 나는 엄마와 함께 보리밥에 던지듯이 박혀진 쌀만을 구경할 수가 있었다 그나마 설겅설겅한 무우밥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늘 그렇게 먹곤 했으니 배고픈 참에 그것도 가마솥에 갓지은 하얀 쌀밥을 몰래 먹던 그 맛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요즘도 가끔 밥을 푸다가 옛생각이 나면 한주먹 쥐어서 입안에 넣어 보곤 한다 김이 갓 빠진 고슬고슬한 밥이어서 구수한 맛은 입안 가득 퍼져와도 옛날에 먹던 단맛이 쫀득쫀득 묻어나는 그 맛은 느낄수가 없었다 사랑방 부엌에 쳐박힌 듯이 걸려있는 가마솥을 본다 이제는 사용할 일이 없어 윤기도 없고 푸석푸석한 모습이 보기도 싫다 시내에서 동서들이 오면 "형님 저거 보기 싫으니까 뜯어 버려요오~~~" 하며 한마디씩 한다 사랑채와 함께 쓰여지지 않는 가마솥을 보면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왜 난 그 소리가 듣기가 싫을까~~~ 예전에 어머니께선 아궁이 겉에 묻어있는 그을음을 살살 긁어 들기름과 섞어서 손가락에 헝겊을 돌돌 말아 적셔가지고는.. 윤기가 반지르르 나도록 오래토록 닦곤 하셨는데...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현실의 문명속에 소리없이 사라져야 하는 추억속의 그 모습이 다시 그리워 온다 안녕하세요..윤승희 조형곤 이주영 작가님 아침에 출근길에 보니 길가에 단풍이 많이 떨어져서 하수구에 누워있는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하더군요 지난주에 가까운 수목원에서 가을의 절정을 만끽하고 왔는데.. 그 모습들이 사라질걸 생각하니 많이 아쉽기도 하구요 하지만 또다른 계절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테니.. 하얀눈을 기다리는 설레임..바로 그것이겠지요 세분도 바쁜 일상이지만 잠시 고개을 들어 지나가는 가을을 가슴속에 가득 채워 넣지 않으시겠어요? 항상 향기나는 좋은방송 들려 주셔서 감사드리구요 감기 조심하세요... TEL:263-68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