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재촉하는 소슬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구나.
이 가을도 눈 한번만 깜짝하면 눈보라치는 겨울로 들어서겠지.
졸업하자마자 내 고향 서울을 떠나
이 곳 고창에 온지 어언 3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동창회 소식이
지금껏 무심히 살아 온 내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구나.
몇 년전, 아마 40대 중반이었던 것 같다.
초라한 나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낀 적이 있었지.....
여고졸업을 하고 .. 철부지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23세에 지방 행정직 시험을 거쳐 공무원이 된 이후 오늘까지
안에서는 넉넉지 않은 살림 꾸리며
큰며느리로써 시부모님을 모시며 아이들 키우고,
밖으로는 만 27년간을 공직에 몸담아 오면서
좌충우돌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새 40대 중반이 되어 있더구나.
아! 내가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다니......
세상이 싫었고,산다는 게 허무했으며
이 한몸 연기처럼 자취조차 없어지길 바랬다.
아마 그때가 중년의 무상함과 인생의 허무함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이제는 ,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부터 치매증세가 있으신 83세의 시어머님을 모시는 일은
그동안의 지나간 삶보다도 더욱 몇 배의 인내를 요구하지만
내게 주어진 운명 앞에 굴복하지 않고
아직 나는 젊다고,
남은 내 인생을 아름답게 가꿔 나가겠다고 ,
내 스스로 다짐해 본다.
그래.
이 것 저 것 너무도 바쁜 생활의 연속이지만
이번에는 꼭 서울 나들이를 해야겠다.
졸업후 30년만에 만나는 내 친구들이 과연 어떻게 변해 있을지 ....
모처럼 참새처럼 재잘거려 보기도 하고
마치 꿈인 듯, 기억도 희미한
여고시절로 돌아 가 볼까 한다.
만나는 그 날을 기다리면서........ 안녕........
2003년 10월 어느날
여고동창생 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