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학년 할머니의 소원

"허리가 아파. 허리가 맨날같이 아프기만한다니까. 아프다고 하면 병원갈까봐 아프다고도 못하고, 늙으니 허리만 아프고..." 동네 할머니의 가슴아픈 마음입니다. 그냥 그렇게 아프다고 하시면 될 것을, 행여 누가 듣기라도 하면 당장에 병원에 입원을 시킬까봐 겁부터내시는, 허리가 잔뜩 구부러진 동네 할머니십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아들 며느리 아무도 피해안주고, 그냥 혼자 조용히 주무시듯 죽고 싶다시는 할머니의 소원에 맘이 무척이나 아파옵니다. 셀 수도 없이 갈라진 손가락틈사이로 살며시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상상을 해봤습니다. 얼마나 밭일이 많았기에, 얼마나 삶이 고단하셨기에 저토록 손가락마디마디가 거칠고, 깊게 패인 틈사이로 흙이 묻혀버렸는지, 그냥 생각만 해봐도 눈시울이 금방 달궈집니다. " 늙으면 얼른 죽어야 자식도 편하고, 며느리보기도 편한데, 난 왜 이렇게 안죽나 몰라. 쯧쯧, 얼마나 자식들한테 더 짐을 지어주려고 이러는지, 원..." 할머니는 언제나 죽음을 준비하고 계신 듯 보입니다. 내 등뒤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8개월된 아기를 바라보시며, "나는 갈 일만 남았는데, 우리 아가는 이제 시작이고만 그려. 난 이제 죽을 일만 남았는디..."하시는 할머니의 기운없는 목소리에 죄송스런 마음이 가득합니다. 너무나 죄송하기만 합니다. 할머니께서 내 손에 꼬옥 쥐어주시던 박하사탕 몇개, 떡을 좋아한다고 어디 든지 가시면 떡을 주머니에 따끈하게 담아오시는 할머니의 인심을, 이제 더이상 욕심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손가락에 힘이 점점 빠지고, 할머니의 허리가 어제보다, 그제보다 더 오그라들고 있는 건 아닌지 무섭기도 합니다. 두어달전에 할머니는 심장에 무리가 오셔서 큰병원에 입원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심장박동수가 급격히 떨어지셔서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동네 어르신들의 걱정을 듣다가,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잖아도 마르신 몸이 더 꼬챙이처럼 마르고, 얼굴에선 살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게 뼈만 앙상해져신 할머니께선, 온몸에 전선줄을 가득하게 붙이시고, 호흡을 가빠르게 하시면서 내가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하셨습니다. 그냥 눈에 눈물만 고인채로 멀그머니 바라보고만 계셨습니다. 미안하시다고, 못알아봐서 정말 미안하다고 하시는 것처럼 잠시도 내 시선을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할머니는 그렇게 조용히, 소리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대신으로 어쩌면 작별인사를 준비하고 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할줄도 모르는 기도를 했습니다. 믿음만 있으면 된다기에, 그저 믿으면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신다기에 할머니를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할머니께서...할머니께서...그토록 원하시는 죽음을 맞이하게 도와주시라고. 아들 며느리 고생시키지 않고 주무시듯 편안히 돌아가시게 도와주시라고, 할머니를 지켜주시라고 그냥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냥 그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을까요, 할머니께선 며칠 안되어 가뿐한 모습으로 퇴원을 하셨습니다. 허리가 아프다고는 하시지만, 숨쉬는데 힘겨웠던 것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할머니를 지켜주신것이, 할머니의 훈훈한 미소를 찾아주신것이, 할머니의 거친 손마디를 잠시라도 쉴 수 있도록 도와주신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할머니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할머니께서 그토록 애절하게 흘리신 눈물의 의미를 다 알 수는 없었지만, 할머니의 진정한 소원을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곁에, 우리마음에 다시 찾아와주신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할머니는 우리동네 숨결과도 같았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면서 아픈곳을 어루만져 주셨고, 기쁨을 함께 나눠주셨습니다. 하루라도 할머니의 웃음소리를 듣지 않으면 불안했습니다. 하루라도 할머니의 거칠은 손가락을 만져보지 않으면 마음한구석이 허전했습니다. 할머니는 우리곁에 늘 편안한 휴식처였고, 다정한 친구셨습니다. 어느새 8학년을 훌쩍 넘어버린 할머니의 학번이 매정하기만 합니다. 하루하루 더 아파만가는 할머니의 허리를 원망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냥 빙그레 웃으십니다.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웃기만 하십니다. 하나님이 8학년 할머니의 소원을 몰래 들어주셨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할머니의 아름다운 소원이 꼭 이뤄지길 또 기도하렵니다. 할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할머니를 사랑하는,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사랑해버린 내 자신을 위해서, 어쩌면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기도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쉬지않고 기도하렵니다. 할머니의 눈물이 뜨거운 이유는 잘 모르지만, 더이상 그 눈물을 바라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할머니의 웃음을 오래오래 듣기를 원하지만, 그 웃음속에서 할머니와의 이별을 조심스레 준비하고 싶습니다. 더 늦지않게 할머니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또 기도하렵니다. 모 선경( 남원시 월락동 157-22번지 2층 오른쪽 590-200) 연락처 : 063-625-5047 (011-655-5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