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마음은 이렇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말처럼 쉽게, 또 그만큼 여유롭고 풍요롭게 한가위를 보낼 수 있었더라면 지금같이 마음이 아파오지 않았을텐데...,언제부터인가 명절증후군이랄까 추석이나 설날이 다가올 때면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근심들이 밀려오는 듯 하여, 갑작스레 머리도 아파오면서 입술이 바싹 타오르기도 했다. 일 년에 두 번이라도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동안의 못다 나눈 정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면서 덕담도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들로만 우리들의 명절이 그려지기를 바래본다. 그냥 아무 근심없이 밝게 웃음으로 한가위를 보낼 수 있는 그 날이 바로 이번 추석이기를 바랬었는데, 결국 눈물로, 한숨으로 가족들과의 미련을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마음만 더 아프게 해 드리면서... 서울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시댁 식구들과 만난다는 기쁨으로 몇 시간을 기다림으로 보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일 분을 아끼려고 서둘러 어머니께서 계시는 아산으로 향하던 중, 잠깐 차안에서 추석에 관한 걱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 저, 저기... 어떻게 이번엔 어머니 용돈이라도 드릴 수 있겠어요? 난 모아두었던 돈을 급하게 쓸 일이 생겨서 다 써버려서 여유가 없어요. 당신은 어때요? " " 글쎄, 나도 넉넉하진 않아. 나도 잘 모르겠어. 시장 보려면 단 돈 얼마라도 보태야할텐데, 조금이라도 아껴서 어머니 용돈 드리고 나면 당신한테 줄 돈이 이것밖에 안될 것 같은데, 이번만 당신이 이해 해줘. 미안해, 다음 번엔 더 많이 줄 수 있을 거야. " " 지금 내가 쓸 돈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알았어요. 나한텐 3만원도 정말 많은 돈인데요, 뭐... 고마워요. " 3만원, 요즘처럼 불경기엔 3만원이란 돈이 참 큰돈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추석선물을 마련하진 못했지만, 어려워진 남편의 일 때문에 사실은 시댁에 갈 수 없을까봐 너무나 걱정을 하고 있었다. 물론, 빈손으로 시댁에 명절 맞으러 간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가지 않은 것보단 나은 거라고 우리 부부는 서로를 위로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서울로 옮기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두 아들들은 쿨쿨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뒤 좌석을 가득 차지한 채로 행복한 꿈나라여행을 하고 있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직 우리 아이들이 어린 탓에 부모님들의 어려운 주머니사정을 알지 못했다. 추석빔도 못 사주고, 겨우 예전에 사 두었던 새 운동화를 신겨주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해 주는 아이들이 참 고마웠다. " 엄마, 우리 서울 큰집에서 몇 밤 자고 올 거예요? " 큰아이는 방긋 웃으면서 내게 물었다. 오직 아이들의 관심사는 큰집에서 며칠이나 머무르다 돌아오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빠, 엄마가 걱정하는 일들을 그만큼이라도 덜어주려는 아이들의 미소가 너무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어렵지만 미리 장만해 둔 아이들 운동화가 반짝 빛이 났다. 일부러 밤을 선택하여 한적한 여행이 되었다. 반면에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차량들은 빽빽하게 도로를 채우고만 있을 뿐,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초조하고 안타까울까 하는 생각에 잠시라도 내가 누리는 여유가 미안해지기도 했다. 10일 새벽 5시가 돼서야 서울 큰집에 도착을 했다. 운전을 못하는 아내 덕분에 남편의 어깨가 많이 아파 왔을 것 같았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다짐을 했다, 절대로 돈 없는 걸, 너무나 힘든 지금의 상황을 다른 시댁 식구들한테 들키지 말자고, 아이들 유치원비가 밀려있고, 때론 공과금마저 내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내색하지 말자고, 값싼 커피 선물세트 하나 준비하지 못한 이유로 한숨을 내뱉지 말자고, 그냥 눈빛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가족들 중 어느 한 명이라도 이번 명절이 얼마나 힘들고, 돈 때문에 역경이 많은지를 표현하려 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서로의 입장을 조금씩 배려해 주면서 너무나 감사하게도 상대방의 아픔을 말하지 않아도, 이해해 주는 편안함이 보였다. 힘들다고 엉엉 울기라도 할까봐 오히려 돈 없는 고통을 달래주려는 듯 천 원가지고, 만 원만 가지고도 가족들과 즐겁게 쓸 수 있는 농담을 하면서 하하, 호호, 큰 소리로 웃어주는 우리 가족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절약하고 또 절약해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차례상이 준비되었다. 조용하고 겸손하게, 아이들은 나름대로 떠들썩하게 추석을 보냈다. 주머니가 부자였더라면 더 없이 바랄게 없을 텐데... 그렇게 추석이 저물어 가고 있을 때쯤 난 한쪽 모서리에 앉으셔서 슬픈 얼굴로 방 가운에 앉아서 덕담을 나누는 자식들을 바라보면서, 애써 눈물을 훔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다 알고 계신다는 듯, 너희들의 힘든 입장을 다 이해한단다 하시는 듯, 제발 건강만 해다오 하시며 계속해서 자식들의 건강만을 부탁하시면서, 부모님의 슬픔을 어렵게 이겨내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누구네 아들들은 추석 날 부모님 선물을 뭘 사왔다더라, 이층집 아줌마는 큰아들이 추석이라고 용돈을 백 만원이나 줬다더라, 아무개는 홀로 계신 어머니께 추석 선물로 안마기를 고급으로 사다 줬다더라 하는 예전의 말씀을 들을 수 없었다. 벌써 어머니의 마음은 자식들의 아픔을 다 덮어주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예전처럼 어머니 친구 분들 자랑하시면서 우리 자식들은 언제 성공해서 추석날 그렇게 받아보나 하시는 넋두리라도 들어보고 싶어졌다. 너무 말씀이 없으신 어머니를 보면서 얼마나 죄송하고 부끄럽던지... 단 돈 십 만원을 못 드리고, 오 만원 드리는데 만 원짜리를 열 번도 더 넣었다 뺐다 하는 막내부부의 심정을 들키기라도 한 듯 너무나 부끄러웠다. 내 아들 장난감은 오 만원이 넘어도 카드를 가볍게 내미는데, 우리 남편 옷 한 벌 사려고 아껴둔 돈 몇 만원도 금새 써버리면서, 어머니께는 단 돈 삼 만원도 드리지 못하고 돌아온 막내며느리의 부끄러운 아픔을 어머니께서는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덮어주셨다. 오히려 양말 하나라도 준비해 두지 못하셨다며 못내 미안해하시는 어머니셨다. 우리 아들 며느리, 추석이라고 부모가 되가지고 속옷 하나도 못 사준 다시며 미안해 하셨다. 건강이 최고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위안이 조금은 되었다. 가족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것도 다행이라는 말씀도 빠뜨리지 않으셨다. 손자, 손녀들이 많아서 집안이 떠들썩하고, 송편이며 과일이며 먹을 음식들이 푸짐해서 좋다 하시면서 며느리들의 수고까지 칭찬해 주셨다. 갈수록 차례상 위에 올라가는 과일들의 개수가 줄어들고, 비싸다는 핑계삼아 최대한 간소하게 상을 차리는 며느리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이해해주시고, 또 칭찬으로 그 아픔까지 덮어주시는 어머니께 고맙고 죄송했다. 추석이 뭐길래, 고유명절이 뭐길래, 뉴스에서는 추석때만 되면 비행기티켓이 매진이라던데, 콘도나 기타 숙박시설들이 명절만 되면 빈방이 없을 정도로 꽉 찬다던데..., 사치스런 세상 인심을 부러워하면서 지금의 내 형편에 불평을 하던 내 모습에 화가 났다. 갑작스레 불어닥친 태풍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고, 삶의 터전을 잃었는데, 외국여행이나 콘도에서 보내는 추석 명절을 부러워하고 있었다니, 한심한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돈이 없어 넉넉하지 못한 살림을 가까스로 꾸려 나가는 자식들을 바라보시며,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 당신의 가난을 원망하시는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리지도 못한 채, 입으로는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갖은 애교를 떨다니. 다음에 다가올 추석은 달라지려나? 어머니께서 직접 세 명의 아들과 며느리한테, 두둑한 추석 용돈이 담긴 봉투를 주실 수 있도록, 이다음에 다가올 추석 땐 우리 어머니께 용돈을 많이 드려야겠다는 상상을 했다. 큰 아주버님 선물은 깨끗하고 단아한 와이셔츠, 큰 형님은 멋지고 세련된 고급 핸드백, 또..., 상상하는데는 돈이 들지 않아서 참 좋았다. 상상만 하는데도 제법 시간이 걸리겠는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한가위만 같아라∼. 한쪽 모퉁이에 앉아서 자식들의 축 쳐진 어깨를 바라보시는 어머니가 아닌, 한 가운데 앉으셔서 아들들과 며느리의 방긋방긋 기쁨의 미소를 한아름 받아보실 수 있는 우리 어머니가 되시기를 바래본다. 물론, 귀엽고 깜찍하고 믿음직한 손자, 손녀들의 재롱을 빠뜨리지 않을 생각이다. 고운 한복을 입으시고, 구멍난 양말은 안 신으셔도 되는 어머니를 상상해봤다. 추석 전 날엔 미장원에 모시고 가서 곱고도 멋진 파마도 해 드려야지. 어머니 친구 분들께 자랑하시라고 가방마다 가득가득 선물을 채워야겠다. 생각만 해도 흐뭇한 일이었다. 어머니께서 자식들한테 미안해하지 않으시도록 다음 추석엔 우리 가족 모두 부자가 되어야겠는데, 쉽지 않은 약속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마음에 여유라도 부자가 되어야겠다. 어머니, 이젠 그만 어머니의 얼굴에 근심을 지워주세요. 어머니의 자식들은 아직 젊고, 또 너무나 건강하거든요. 아들 딸, 자녀들도 다 건강하고 똑똑하답니다.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게만 저희들 곁에 계셔 주세요. 묵묵히 바라만 봐 주시는 어머니의 편안한 모습이 자식들한텐 그 무엇보다도 커다란 힘이 되니까요. 어머니, 앞으론 추석이라고 슬퍼만 하지 마시고, 자식들과 함께 웃고 또 웃으시면서 행복해 하시기를 바래요. 어머니의 마음을 세 아이를 낳았지만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어요, 그래도 제가 엄마가 되고 보니, 아주 조금은, 정말 아주 조금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쪼록 건강하시구요, 어머니께 효도하는 며느리가 될께요. 겉으로가 아닌 진정으로, 진심으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어머니의 사랑스런 막내며느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에 찾아 뵐 때까지 건강하세요. 모 선경 ( 남원시 월락동 157-22번지 2층 오른쪽 590-200 ) 연락처 : 625-5047 (011-655-5042) 참참참, 여성시대를 아껴주시는 애청자여러분, 그리고 조형곤,윤승희님, 또 여성시대 관계자여러분, 모두모두 늦었지만 추석 잘 보내셨나요? 인사도 못하고 추석을 지내서리... 내년엔 꼭 인사먼저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