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부님전 상서
숙부님, 평안하시지요?
숙부님 계신 곳은 사랑과 평화만이 깃든, 그런 곳이리라 믿어요.
왜냐면 숙부님께선 그런 분이셨으니까요.
숙부님 떠나신 지가 벌써 아홉 달이 지났네요.
인자하신 미소, 자상한 돌보심, 따뜻한 인품으로 절 참 많이 편안케 해 주셨는데 이제 다시는 뵈올 수 없군요.
숙부님,
이제 이틀 후면 또 다시 추석이예요.
단 한번도 명절에 고향 방문을 걸러보신 적이 없는데 지난 설에도 그리고 추석에도, 아니 앞으로는 그 어느 때도 다시는 뵈올 수 없는 곳에 계시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결혼해서 첫 명절을 맞이했을 때 생각이 납니다.
시할머님, 시부모님, 그리고 숙부님들과 많은 시댁 식구들 속에서 전 어렵기만 했지요.
모든 면에서 낯설고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저에게 가장 편하게 대해 주셨던 분이 바로 숙부님이셨습니다.
“우리 질부 힘든데 이리 와 좀 앉았다 하지.”
하시며 제 손에 떡과 과일을 집어 주셨던 분도 바로 숙부님이셨습니다.
그 후 명절 때나 가족들이 모일 때면 부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제가 안쓰러웠는지
“우리 질부 힘든데 아기는 내가 업어볼까?”
하시며 거침없이 포대기에 아기를 업고 동네 한바퀴를 돌아오곤 하셨지요.
“어디 심심한데 뭘 할까?”
하시며 제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콩도 까주시고 마늘도 까주시며 시어머님 눈치 보느라 쩔쩔 매는 저에게 농담을 던지시며 제 피곤을 풀어주시던 숙부님.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때면 어김없이 숟가락 마이크로 멋들어진 노래를 불러주시고 젊은 댄스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들도 거침없이 춤과 더불어 가족들을 즐겁게 해 주시곤 하셨지요.
고향 친구 분들과 얼큰하게 한 잔 기분을 돋우신 날에는 어김없이
“우리 질부, 할머님 모시느라 정말 애쓴다. 고맙다.”시며 제 등을 쓰다듬어 주시곤 하셨지요.
시댁 어른이라기보다는 친정아버님 같았던 숙부님,
지난 1월 돌연사로 갑자기 저희들 곁을 떠나셨을 때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지요.
하얀 눈밭에 숙부님을 묻고 내려올 때 참으로 어이없고 하늘이 원망스러웠지요.
아직 할머님도 정정하신 지금,
숙부님께서 그렇게 떠나시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으니까요.
이제 어렵고 힘들 때마다 보여 주셨던 미소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올 추석엔 숙모님과 사촌들도 숙부님을 위해서 따로 차례상을 마련하겠지요.
전 마음으로 숙부님을 위해 차례상을 마련해 올릴게요.
말씀드린 적 없는 제 감사함을 듬쁙 담아서 말입니다.
숙부님.
이제 생전에 다시 뵈올 날이 없겠지만 늘 따뜻한 마음으로 제게 남아계시는 한 숙부님께선 언제나 저희들과 함께 살아계십니다.
살아생전 어떤 상황에서건 늘 평화로운 미소로 생활하셨듯이 지금 계신 그 곳에서도 늘 평화롭고 행복하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빌겠습니다.
며칠 후 추석에 숙부님 묘소로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2003년 추석을 맞으며 큰조카 며느리 올림.
019-9027-2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