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승부

"어디가세요.. 네..에?" 하며 날 부르는 소리가 있었는가..? 주머니 속의 돈계산으로 골똘한 나머지 뒤에서 나를 부르는 지도 모른 채 한참을 걸어가던 중이었다. "어휴! 13층엄마..어디 가시냐구요. 몇 번을 불러도 도대체 왜 대답을 안해요?" 하는데 난 그제서야 눈을 멀뚱히 뜨고 뒤를 바라보았다. 으음...유명한 수다꾼 9층여자다! 그 여자에게 걸리면 최소한 30분인데 큰일이다...싶었다. "아이참! 죄송하네요. 무슨 생각 좀 하느라구요 부르시는 줄 몰랐어요 용서하세요!" 하며 난 최대한으로 그녀에게서 빨리 도망치고자 생글거리면서 대답을 하였고 반면에 발걸음은 붙이지 않은 채 걸었다. "날봐...날봐 날봐요...13층 엄마야!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셔? 응..?" 하는데 그냥 얼버무릴까하다가 또 차마 그럴 수 없어서 "네에..으응..저어기...네에...떡 사러 가요 떡!" "떡? 왜...? 찰떡..? 인절미? 아니면...시루떡? 팥떡..콩떡? 무슨 떡인데?" 하며 그냥 놔두지 않는 9층여자를 보며 난 깊은 한숨을 쉬었다. 된통 걸렸다! 촘촘하기 그지 없는 그녀의 수다망을 피해간 사람은 유일한 3층의 할아버지! 부인과 황혼이혼할 만큼 성질 고약한 할아버지라고 소문이 났었고 아파트 출구든 복도에서든 쉴새 없이 떠들어대는 9층여자에게 떼엑! 시꺼! 하며 입을 다물게 하여서 그 후론 서로가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고 아파트 주민들은 수근거렸다. 그만큼 9층 여자의 입심은 진정 걸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내가 무슨 재간으로 그녀로 부터 감히 떡 사러 간다고 총총총 갈 수있겠는가? 가슴이 옥죄어 왔다 어쩐다? 그대로 걸려들어야 하나? 하지만.. 난 한가지 꾀를 내었다. 선수를 치자..! "네에..아이들 줄려고 떡볶기 떡 살려구요. 사주면 조금 입맛에 안맞아서 제가 직접 해 줘요. 떡은 일단 물에 슬쩍 씻어서요 간장과 설탕 한 큰술...그리고 참기름 한숟갈과 고추가루 1/2티스푼으로 양념장을 만들어 재어 둔 후에요. 프라이팬에다가는 물을 조금 두르고 고추장을 풀죠. 살살살... 그리고 아까의 양념해 둔 것을 넣어 약한 불에 달달달 볶아익혀내면 완성되지요. 그 위에다가 통깨를 뿌리면 깔끔해 보이고 먹음직 스러우니 정말 좋지요...그리고 저는 항상 1킬로를 사서 아이가 한 번 먹을 만큼의 양으로 나누어서요 냉동실에 넣어둬요. 저렴하게 많이 사서요 그러면 정말 경제적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 떡을 사러 이만 가겠습니다. 안뇽히 꾸벅(__)(--)" 하며 저는 어설픈 수다를 떨었다. 그러자... 9층여자는 너무 질렸다는 듯 저저저...이봐...애기엄마...그러니까...아아참..그만...그만.. 하면서 간간히 제가 말을 하고 있는 동안 숨을 헐떡이면서 말을 끊고자 하였지만 저는 철통같은 수비로 절대 틈을 주지 않았다. 물론 야박하다고도 할 수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집안에 빨래 삶는다고 가스 불을 약하게 하고 나왔고, 또 아이가 일단 떡볶기가 먹고 싶다면서 발동이 걸리면 그 소원 안들어주었다간 동네가 떠내려가게 울어대는데...?! 어휴! 생각만 해도 땀이 번쩍 났다.. 그러니 내 어찌 그 유명한 9층여자와의 수다에 감히 동참할 수있겠는가? 말도 되지 않았다. 난 그렇게 해서 아마 이 아파트에 산 사람 중에서 9층여자와의 수다를 가장 간단하게 한 사람의 2호로 지정될 것이라는 확신을 안은채 헤헤거렸다. 물론 신화적인 기록이겠지...?! 아무도 못 당해내던 9층여자와의 수다! 한판 이겼다. 오 필승 코리아! 잠 잘 올 것 같다.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