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아.. 빨리 타아~~~
8년전 11월의 어느 날
김장용으로 심어진 배추가 속이 꽉차서 어머니와 애들아빠와 셋이서 작업을 하고 있을때였습니다
연락도 없이 두 언니가 택시를 타고 와서는 급하게 부르면서 빨리 차를 타라고 하였습니다
목소리가 어찌나 다급하던지 무슨 일인지 미쳐 물어 볼 새도 없이 놀란 가슴을 안고 차에 올라서서야 언니에게서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천안에서 엄마를 모시고 살던 오빠가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있는데 거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말이었습니다
순간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세상이 어쩌면 이럴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이제 바듯이 숨통이 트여 잘 살려나 했더니...
그 동안의 오빠의 가슴 아픈 삶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목이 메어왔습니다
어린 칠남매를 두고 일찍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빈자리
그건 오롯이 가녀린 엄마와 사춘기의 소년이었던 오빠의 몫이었습니다
한없이 좋으신 분이셨지만 생활에 무능력하셨던 아버지의 뒷자리는 무겁기만 하였습니다
적지 않게 남겨진 빚때문에 .... 몇년을 두고 남의 논 농사며 남의 집일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하였고 겨울이면 하얗게 내린 눈을 파헤쳐가며 약초를 캐다가 팔기도 하면서 열심히 살았지만 그래도 생활은 늘 힘들기만 하였습니다
마지못해 생각해 낸게 도시로의 이사였고 시골에서 일한만큼 열심히 하면 그래도 농사 짓는거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마침 큰언니네가 천안에서 살고 있었기에 형부의 주선으로 천안의 어느 변두리 허름한 집에 자리를 잡이 기거를 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오빠의 고생은 무게를 더해가기 시작했습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 뛰었고 그러다가 터득하게 된게 목수일..
너무나 힘들고 지칠 땐 힘에 겨워서 술로 마음을 달래며 아버지를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던 오빠였지만 결혼도 뒤로한채 무던히도 노력한 끝에 드디어 이름있는 새 아파트 한채를 마련해서 입주날짜까지 잡혀져 이젠 제대로 된 생활을 하고자 꿈꾸던 오빠였는데...
오늘도 오빠는 동료분들과 같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동료분이 모는 차를 타고 현장으로 복귀하던 중 커브길에서 마주오던 레미콘차와 부딪혀 사고가 났고 운전을 하시던 분은 그자리에서 세상을 떠나셨고 운전석 뒷자리에 앉았던 오빠는 많이 다쳤다는 말이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택시가 한없이 느리게만 느껴졌고
오빠가 살아 있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병원에 도착해 보니
먼저 와 계신 엄마는 복도에 무표정한 얼굴로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 계셨고 충격으로 쓰러질 것이 염려된 병원측에서 오빠의 상황을 알려주지 않아 " 아마도 네 오빠가 먼저 간거 갔다. 안 그러면 왜 네 오빠 얼굴을 보여주지 않겠니? 라시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막무가내로 같이 들어가시겠다는 엄마를 만류해 막내동생을 시켜 집으로 보내 놓고 중환자실로 들어가 보니 이목구비가 선명하여 마치 어느 유명한 외국배우를 생각케 했던 오빠의잘생긴 얼굴은 상처로 인해 퉁퉁 부어 있었고 두 손으로 만져 본 얼굴은 이미 싸늘한 체온만을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하기 한시간전쯤 보고싶은 얼굴들을 기다리다가 끝내 보지도 못한채 서른일곱의 젊은 나이로 말한마디 없이 너무나 큰 아픔만을 우리에게 안겨준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곳으로 오빠는 그렇게 먼 여행을 떠나버렸습니다
수원의 어느 화장터에서 시뻘건 불길에 휩싸여 오빠의 청춘이 한줌의 재로 사라지던날..
난 온 몸으로 참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꽃다운 청춘 한번 피워보지 못하고 힘겹게 살다간 오빠의 젊음이 너무나 안타까웠고
오빠를 두고 먼저 결혼한 사실이 오빠가 먼저 가게 된 이유인 것만 같아 죄스러워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이 아픈건 맺지못한 오빠의 사랑때문이었습니다
입었던 오빠의 주머니에서 나온 주인에게 미쳐 전해지지 않은 빛바랜 한통의 편지
번듯한 자리잡음을 하면 그때는 행복의 보금자리를 꾸미자던 오빠의 소박한 꿈이 담긴 글이었습니다
참으로 야속했습니다 긴 고생끝에 다가온 한자락 행복..그것마져도 오빠의 몫은 아니었나 봅니다
보고싶은 오빠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오빠만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이젠 영영 올수 없는 그 먼곳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승에서의 삶이 너무도 고달퍼서 기억에도 떠올리고 싶지 않겠지만 그래도 오빠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동생이 있으니
가끔은 아래도 내려다 봐 주세요
오빠에겐 많이 부족한 동생이었지만 오빠 맘 아프지 않게 잘 사는 모습 보여줄게요
그리고 오빠가슴에 멍울졌던 모든 아픔들
무겁기만 했던 삶의 무게들..이젠 미련없이 벗어 놓으세요
솜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오빠의 행복을 찾으세요
오빠의 가슴에 머물렀던...그러나 미쳐 피우지 못했던 그 소중한 사랑도 다시 찾아서 행복한 보금자리도 꾸미시구요
먼곳에서나마 행복하게 잘 사는 오빠의 모습 보고 싶답니다
그리고 늘 기도할게요
"언제까지나 행복하시라고.."
*그리운 영혼*
너무나 푸르러서 눈이 시린 하늘
들여다 보면
아련히 떠 오르는 보고 싶은 얼굴
유유히 흐르는 뭉게구름 한조각
미쳐 떨구지 못한
이승에서의 인연이 그리워
정처없이 떠도는
가여운 오라비의 조각배는 아닐까
너무나 푸르러서 가슴 시린 하늘
올려다 보면
뚝 뚝 떨어지는 파란눈물
보고픔에
그리움에 몸부림하는
한 영혼의 서러운 절규는 아닐까
안녕하세요..두분
어느새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한없이 푸르른 하늘을 보니 몇년전 세상을 떠난 오빠가 보고 싶어져 이렇게 글로 적어 보았습니다
가을이란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아픔이 먼저 생각나는 건 먼저 가신 오빠가 맘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제법 차네요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시고 항상 좋은 방송 들려주신 두분께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 619
TEL:063-263-6872
신청곡: 임응균님의 "표정"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