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원의 애국심

저희 집 앞에는 베이비 아나바다라는 어린이 재활용품 가게가 있습니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 저는 그 말에서 풍기는 뭐랄까..서민적이라고 할까요? 부담없는 그 소박함때문에라도 자주 찾지만 사실은 다소 넓직한 얼굴의 사장님 때문에 찾는 지도 모릅니다. 그 사장님은 제가 그저 티 셔츠를 하나만 사도 "그거...기냥 돈 천원 주심 되요.! 저어기 장난감 하나 있는디 가져가셔도 되구요!" 하며 외려 좋지 못한 물건을 돈으로 받아서 미안하다는 듯 연신 웃기만 하십니다. 그 모습이 좋아서 사실...전 별 살 것없는 날인데도 마실 가듯 자주 찾곤 했던 그 곳에서 저는 며칠 전 우리 둘째 아들의 샌들을 하나 사게 되었습니다. 꼭 여자아이용 샌들로 딱일 것 같았지만 둘째는 정말 딸을 갖고 싶던 저로선 이상하게도 둘째 아들의 것이라면 분홍색이라던 지,아님 꽃 무늬가 크게 박힌 끈달이 티셔츠라든 지, 암튼 딱히 뭐라 말 할 순 없지만 자꾸만 여자아이의 것을 선호하게 된 지라 저는 그 분홍색의 샌들이 퍽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장님 이거 얼마죠?" "기냥...2천원만 주세요. 가만..쩌어기 있는...잉? 장난감이 마땅한 게 없네? 오늘은...헛헛헛!" 하시며 또 어색한 웃음을 보이시길래 저는 2천원을 내고 귀여운 샌들을 하나 샀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아이가 신고 몇 번 걷더니 "옴마! 여기가 아퍼...여기가 아퍼.." 하며 뒷꿈치를 가리키는데.. 옴마나! 뒷꿈치가 금새 벌겋게 벗겨져서 쓰라릴 것 같았습니다. 어? 작은 모양이네? 하며 다시 찾아가서 바꿔달라고 하니 "아무럼요..얼른 바꿔가세요. 근디 물건이 있을랑가 몰겄네요?" 하십니다. 다시 또 여아용 노란색 샌들을 골라서 신겨보니 그제서야 괜찮다는 듯 폴짝거리고 뛰는 우리 아들이 귀여워서 저는 얼른 근처의 공원으로 데불고 갔습니다. 낡은 샌들이지만 그래도 생소해서 좋은 지 폴짝거리는 순진한 아들의 마음이 고마와서 저는 잠시 행복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도 정말 잠시로 끝나고 마는 것인가? 여아용 샌들을 볼 넓은 우리 장군 아들의 발에 신겨놓구선 또 구잡한 아이가 폴짝거리면서 뛰고 미끄럼틀도 쭉쭉 타기를 몇번.. 샌들끈이 똑! 하고 떨어져버리는 것 아닙니까? 이거...어쩌나? 싶었지요. 가서 여차여차한 사정 이야기 하고 다른 것을 달라고 할까? 하다가 저는 이내 그만 두었습니다. 어떻게 염치도 없고 미안하기도 하고.. 가뜩이나 사람좋은 웃음만 보여주는 사장님에게 두 번씩이나 바꿔달라고 할 수있지요? 그래서 저는 아이를 업고 일단 구두 수선집으로 향하였지요. "2천원은 주셔야지요. 요즘 어디 돈 2천원이 쓸 데 있습니까?" 하며 냉정하게 2천원을 요구하는 수선아저씨에게 저는 부들 부들 떨면서 2천원을 냈습니다. 흑! 그러니까 우리 아이의 여아용 샌들은 결국 4천원짜리였지요? 그래도 재활용 하였다는 곳에 위로를 받고 저는 애국자처럼 당당한 자세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아들은 시인...! 내 신...신 줘!" 하며 안 벗을려고 했고. 어쨌든 아들이 마음에 들어하니 좋았습니다. 또 행복해졌네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