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년대 초등학교에 다녔던 사람들은 아마도 미군부대에서 지원해준 급식빵을 드셨을 겁니다. 당시엔 너무나 살기 힘들어서 어린아이들도 점심을 굶기를 밥 먹기보다 더 했었지요. 미군부대에서 지원한 급식빵은 가난했던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식량이었습니다. 일반 학생은 한 개씩, 줄반장과 각 부장들은 두 개씩, 반장, 부반장은 세 개씩 아마도 제 기억엔 그랬던 것같습니다. 그렇게 나누고도 빵은 언제나 남았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남아서 자료 만드는 걸 돕거나 환경정리를 도운 학생들에게 더 주시기도 하고 집에 가져가시기도 했었습니다. 댁에는 고물고물한 귀여운 아이들이 있었거든요. 언젠가 선생님을 따라 댁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제 동생같은 아이가 둘 있더군요. 그 아이들은 선생님이 가져가시는 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이혼을 하시고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시던 선생님도 가난하기는 우리와 마찬가지였나봅니다. 어린 제 눈에 조금은 커다랑게 보였던 마루와 일본식 다다미방이 하나 있는 계단 마루가 삐걱거리며 음산한 소리를 내던 남의 집 이층에 세를 살고 계셨더랬습니다. 어느날 철없던 저는 가방에 들었던 책을 죄다 선생님댁에 꺼내놓고 커다란 바구니에 가득 담겨져 있던 빵을 제 빈 가방에 쑤셔넣었었습니다. 제가 가져갈 빵을 기다리는 동생들이 생각났거든요. 빵을 먹을 수있는 동생이 자그마치 셋이나 제가 돌아갈 시간이면 저를 기다리느라 집 문 밖을 뱅뱅 맴돌았었습니다. 빵을 쑤셔넣은 제가 선생님과 작별을 고하고 얼른 달아나오는데 선생님께서는 제 가방을 보시곤 불러세우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들킨 것이 무섭고 창피하고 두려워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섰는데 잠시 뒤 선생님께서는 커다란 보따리를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거기엔 빵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웃으시면서 "책은 내일 내가 학교로 갖다주마"라고 하셨습니다. 붉어진 얼굴로 저는 "고맙습니다!"를 외치고 집으로 줄달음질쳤지요. 저를 제일 먼저 반긴 사람은 제 세째 동생이었습니다. 언제나 놀이터에서 흙투성이가 되어 저를 기다리는 그 동생이 새까매진 얼굴에 울어서 두 줄 눈물길을 그려놓고 저를 반기더군요. 우리가 집으로 들어가자 화단에서 분꽃씨를 받던 둘째 동생이 "언니 왔다아~!"하고 소릴 질렀고 기다렸다는 듯 큰 동생 작은 동생들이 보따리 앞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성미 급한 첫째 동생이 제 가방을 나꿔채는 동시에 둘째 동생은 보따리를 풀고 세째 동생은 벌써 빵 하나를 입에 물고 고사리같은 두 손으로 나머지 빵을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이 사태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셨고 저는 어머니의 추상같은 추궁을 받아야 했습니다. 어디서 이 많은 빵을 가져왔냐고.. 레미제라블 아시나요? 빵 하나 훔치다 잡혀 기나긴 세월을 옥살이하던..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하시며 도둑질은 나쁜 짓이라고 제게 훈계하셨습니다. 저는 훔친 것이 아니라고 눈물, 콧물로 해명을 했고 어머니는 그 길로 제 손을 잡고 우리 집에선 상당히 먼 곳에 있던 선생님 댁을 방문하셨습니다.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며 어머니 손에 이끌려 다시 선생님 댁으로 간 제게 선생님은 든든한 구원병이 돼주셨습니다. "아이고 제가 싸준 것인데요.." 그 한 말씀에 저는 의기양양해졌고 어머니는 고맙다는 인사를 수없이 되풀이하시며 고개를 숙이고 또 숙이시며 선생님께 감사의 말을 하셨더랬지요. 집에 돌아오면서 어머니는 제게 영원히 잊지못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너는 선생님께 빵을 받아왔지만, 선생님은 네게 사랑을 주신 거란다."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왠지 가슴이 뭉클하고 뇌리에 새겨졌던 그 말씀.. 세월이 흘러 생각해보니 정말 선생님은 자신의 처지도 딱한데 자신의 아이들이 먹을 양식을 제게 서슴없이 주신 거였지요. 그것은 어머니 말씀대로 사랑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아주 커다란 잊지 못할 사랑을 받았던 겁니다. 덕분에 제 동생들도 비록 미군부대에서 나온 질 떨어지는 옥수수빵일망정 그날 배부르게 먹어볼 수 있었답니다. 배고팠던 그 시절.. 길가에 흔하게 나던 삐비가 간식이었고, 남의 밭에 오이, 가지 서리를 해서는 변소 뒤에 숨어서 먹어보기도 하고, 때론 들켜서 도망하다 거름통(똥통)에 빠지기도 하고, 밭두렁에서 메뚜기 잡아 조선간장에 볶아 밥반찬 해먹고, 보리가 채 익기도 전에 서리해서는 불에 구워 두 손으로 검댕이 비벼가며 입가에 묻혀가며 먹고는 서로의 입가에 새까맣게 묻은 검댕이를 보고 배꼽 빠지게 웃기도 하고, 감자가 알이 영글기도 전에 호미질했다가 혼쭐이 나기도 하고, 개천에서 개구리 잡아 뒷다리 잘라 불에 구워먹고, 곰국 끓여먹어도 늘상 배고프던 그 시절에 동생들 배부르단 소릴 처음으로 들어봤던 제 뿌듯함.. 맏이란 자리가 왠지 부담스럽고 버거웠던 제가 어깨 피고 당당하게 약간은 오만하게 동생들 앞에 군림할 수 있었던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비록 초등학교 1학년이었더라도 동생을 줄줄이 거느린 맏이는 그 구실을 해야만 했던 요즘 아이들은 상상도 못할 옛날 이야기입니다. . . . **들으시는 곡은 ' Fool's Garden ' 의 " Lemon Tree " 입니다. 전주시 완산구 서신동 동아한일아파트 110동 1205호 063-901-5688 (016-9556-56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