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차게 끊일 줄 모르는 빗줄기가 마치 우리 할머니 가슴에 흐르는 그칠 줄 모르는 눈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곧 여름 휴가철이네요.
이 휴가철에 다녀갈 수 없는 아들 때문에 할머님은 또 시 가슴속으로 서운한 눈물을 삼켜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휴가엔, 아니 다시는 오지 못할 작은아들이건만, 틈만 나면 찾아와 어머님을 기쁘게 해 드렸던 작은 아드님을 기다리실 저희 할머님을 뵙기가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 이렇게 몇 자 적어봅니다.
18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오셔서 호랑이 같은 남편 앞에서 큰소리 한 번 못 내시고 묵묵히 자식만을 바라보며 사신 저희 할머님은 두 자식을 먼저 보내고 어쩔 수 없는 삶을 연명하고 계십니다.
자식 일이라면 두 눈이라도, 아니 목숨이라도 아끼지 않으실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신 저희 할머님은 그 목숨 같은 자식 둘을 먼저 보내고, 아니 작은아들은 저 세상으로 보낸지도 모른 채 이제나 저제나 다녀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사신답니다.
15년 전, 저는 결혼하면서부터 시부모님을 대신해 시할머님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 때 저희 아버님께선 전주에서 교편생활을 하고 계셨고 전 농사짓는 남편을 따라 고향에서 귀가 어두우신 할머님과 생활하게 된 것이지요.
그 때까지만 해도 할머님께선 비록 귀는 어두우셨지만 아주 정정하셔서 농사철엔 농사도 지으시고 농한기엔 성서도 읽으시면서 증손자들 재롱에 정말 행복해하셨지요.
그런데 어느 날 시아버님께서 위암 판정을 받으셨고 수술 후 잠시 좋아지는가 싶었는데 그것이 간암으로 전이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그 누구도 할머님께 그 사실을 알려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아버님께서 그리 오래 사시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말았고 결국 아버님의 소원대로 진달래가 만발한 고향집 뒷산에 오르셨습니다.
처연한 꽃상여에 올라타시고 말이죠.
꽃상여 앞에서 할머님은 망연자실하실 수밖에 없으셨지요.
그렇게 의지했던 큰아들이 당신보다 먼저 아버님 곁으로 간다는 편지 한 장 남겨놓았고 훌쩍 떠나버렸으니까요.
그 때부터 할머님은 웃음을 잃고 세상의 소리를 모두 닫아버리셨습니다.
아니, 당신은 이미 그 때 큰아들 꽃상여를 따라 함께 묻히셨는지도 모르지요.
육신이 남아 있는 것은 다만 남아있는 자식들의 건강과 안녕을 빌기 위해서인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하루 빨리 보고 싶은 큰아들 곁에 보내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새벽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드님이 너무나 보고 싶으셨는지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소생은 하셨지만 이미 할머님의 삶은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사신 것이 벌써 10년이 넘었군요.
그런데 너무나도 뜻밖에 작은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하늘나라에 가고 싶어하시는 할머님을 남겨두고 목숨 같은 작은아들이 또 먼저 세상을 하직한 것이지요.
그것도 정말 건강하게 잘 지낸다는 작은 아버님의 연하장이 할머님께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말입니다.
흰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던 1월 5일.
전주에 잠깐 가 계셨던 할머님이 행여 아실까 가슴을 졸이며 우린 하얀 눈 속에 작은 아버님을 또다시 고향집 뒷산에 묻어드리고 내려왔습니다.
설날 그러시더군요.
"바빠도 좀 다녀가지......"
혼잣말처럼 쓸쓸히 뱉으시던 그 말씀이 왜 그렇게 가슴을 아리게 하던지요.
그 동안 명절날이면 얼마나 큰아드님을 그리시며 혼자 눈물을 삼키셨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그런데 이제 작은아드님마저 영영 보실 수 없으실 텐데 효성 지극하던, 오지 않는 작은아들을 얼마나 속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리실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옵니다.
한식날이었지요.
작은집 식구들 모두 산소에 성묘를 왔었습니다.
할머님께서 같이 오지 않은 작은아들이 못내 서운하셨던가 봅니다.
어버이날 찾아온 막내 아드님께 조용히 물으시더군요.
"작은형은 많이 바쁘냐? 한식날도 다른 식구들만 왔더라."
작은 아버님은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마셨지요.
할머님의 서운해하시는 표정을 어찌 감당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속으로 많이 우셨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할머님께서 귀를 닫으신 것이 차라리 지금은 다행이다 싶습니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곧 다가올 휴가철을 얼마나 기다리실지 잘 아는 저희들은 오시지 못할 작은아버님을 대신해 또 뭐라 변명해 드려야할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시아버님의 죽음으로 이미 숯덩이가 되어버린 할머님 가슴이 두 아드님 곁에 가실 때까지 더는 멍들 일 없이 사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할머님! 그리운 두 아드님을 보실 날까지 남은 자식들 효도 받으시며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군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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