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동이 라면 끓이는 솜씨

"엄마 어디 가셨니 ?" "운동 갔어요." "그래. 아빠 배고픈데---." "저녁 먹고 들어오신다고 엄마가 말씀하시던데요." "사정이 생겨서 못먹고 들어왔다." "그럼 어떡해요 ?" "라면 하나 끓여줄래 ?" "제가요 ?" "그래. 아빠가 배가 고프니 빨리 부탁한다." 늦동이는 초등학교 4 학년이다. 언니하고는 너무 차이가 나서 늘 어리광만 부린다. 언니들도 아이의 태도를 잘 받아주다가도 지나치다고 생각이 나면 큰 소리로 꾸짖곤한다. 그럴 때마다 달려온다. 편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엄마 아빠가 뒤에 버티고 있으니 언니들도 감히 어쩌지를 못하는 실정이다. 늦동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그렇게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라서 그런제 언제나 연약한 온실 속의 화분처럼 보인다. 그 것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한참 동안을 기다리니 늦동이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상에다 라면을 끓여왔다. 물의 양이 조금 많기는 하였지만 제법이었다. 거기에다 달걀까지 풀어서 끓여온 것이었다. 배가 고팠지만 라면 맛이 좋았다. 후루룩 마시고 나니 배가 든든해졌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막내가 물었다. "아빠 맛있어요 ?" "그래 아주 맛있다. 우리 솔이 덕분에 아빠가 호강했네." "휴, 다행이다." "왜 ?" "맛이 없다고 할까 봐 걱정했지요." "그래 ?" 제 딴에는 열심히 끓였는데 맛이 없다고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다행이란 표정으로 설겆이를 하는 아이를 보면서 다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저렇게 자랐나 뒤돌아보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없다. 전화 연락을 받은 아내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저녁을 먹고 들어온다고 하여 운동을 나갔다가 그냥 들어왔다고 하니 뛰어 온 것이었다. 막내가 라면을 끓여서 먹었다고 하니 아내는 눈이 동그래졌다. 얘기가 어떻게 라면을 끓일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끓인 것보다 더 맛있었어." 아이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엉겨진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얼굴에는 주름살이 늘어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었다. 세월의 빠름에 새삼 기가 죽지 않을 수 없었다.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제는 세월이 도망가는 것을 손으로 만질 수 있으니 안타깝다.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실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눈 앞에서 멀어져 가는 세월을 보면서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에 빠지곤 한다. 가는 세월을 잡을 수는 없으니 어떻게 살면 보람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잠정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나보다는 남을 이한 삶을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늦동이의 라면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