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아파트를 찾는 상인들이 많은 터라 그 날도 난 별 생각 없이 벨 눌러대는 누군가에게
"바빠요. 다른데 가보세요!"
하며 얼른 인터폰을 놓았다.
그런데도 다시 벨이 울리는 것이었다.
"아니요. 그냥 구경만 하셔도 됭께로 보기만 허쇼... 아주 물건이 좋아요"
하며 조용한 간청을 하는 것이었다.
흔히들 집을 찾아오는 상인들과는 퍽 다른 목소리의인상을 주길래 도대체 뭐길래 그럴까 하여서 난 문을 열어주었다.
"이거 어떠요... 다른 중국산하고는 많이 달라요. 우리 나라 것으로 만든 것이거든요. "
하며 내 놓는데 정말 질 좋아보이는 채반이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어렸을 적 우리에게 치자로 물들인 전을 잘 부쳐주셨다.
우린 번철에서 꺼내기가 무섭게 얼른 받아서 먹곤 하였고 그 부족한 양이 아쉬워서 또 할머니의 손 끝에서 만들어지는 그 전을 조금이라도 다른 사촌형제들보다 더 먹기 위하여 서로의 어깨를 밀어내며 법석을 떨었는데..
그 전을 어슷하게 담던 채반을...
작고 앙징맞는 것부터 한아름이 넘어갈 듯한 크기까지 한 줄로 엮어매고 온 것이었다.
채반할머니의 얼굴에는 한없는 피곤이 가득하였고
마치 어디 한가한 모정에 앉아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셨으면 좋을 성 싶은 연세의 할머니였음에 나는 문 열어 드림을 잘했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새닥! 사라는 것이 아닝게...그저 귀경이나 해 봐...기냥 물건이 너무도 좋당게.."
하는 말씀에
난 얼른 작은 것으로 두개...그리고 약간 큼지막하여서
울 친정어머니 생신에 넉넉하게 부칠 전유어를 모두 놓을 수 있을 것 같은 것으로 하나를 골랐다.
"점심은 드셨나요?"
하며 조심스럽게 묻자 채반 할머니는
"점심..? 아적 못먹었는디...인자 새닥이 팔아주믄 그것으로 어디가서 붕어빵이라도 한 개 사 묵어야제.."
하는 것이다.
붕어빵?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 붕어빵 파는 곳도 있을까?
난 얼른 오이짠지를 꺼냈고 어제 담은 물김치를 내었다.
슬쩍 한 쪽 집어 맛을 보니 얼추 맛이 들어있길래 담아 놓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만족하였다.
"드세요. 정말 찬이 없네요."
상을 받아들고 눈이 동그래지는 할머니가 잘금잘금 오이짠지를 씹어서 밥한그릇 다 드셨다.
물김치도 훌훌 떠마시는데...
마치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가 드시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울 외할머니... 물김치를 정말 좋아하셨는데...
홀쭉해지는 볼이 물김치를 삼키시느라 순각 불룩해졌다가 도로 홀쭉해지신다.
"어휴 맛나다..우찌 이렇게 하나같이 맛난 것 투성이리야? 참말로 잘 먹었소. 새닥 복 많이 받것소잉..내가 요샌날 이런 대접 받긴 오랫만이네..참말로 오랫만여... "
하며 연신 고마와 하신다.
"전부 채반 값 얼마예요?"
하자 할머니는 머뭇거리면서 얼른 말씀을 하지 못하신다.
"다 합쳐서 3만원만 줘...기냥.."
하시는데..
저는얼른 세 장을 꺼내어 드렸다.
자꾸만 미안한 듯 수줍게 받아드시고 얼른 일어서질 못하는 채반 할머니..
조용한 뒤태가 마치 젊었을 적 곱다는 말을 많이도 들었을 성 싶게 다시 보아도 이쁘기만 하다.
왠지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채반 짊어진 모습이 그닥 어울리지가 않았다.
난 그날 얼른 친정어머니가 돌아오시길 기다렸다가 그 채반을 보여드렸따.
"뭐? 순...쭝국산이고만...여그 봐라...매딘 치나..(made in china)
어쩌면 넌 그렇게도 속고만 사냐...요즘 국산채반은 약에 쓸려고 해도 없다등만...넌 애가...참나! 미국말도 모리냐..넌? 배운 것이 말여.."
하시는데..
정말 미처 못 본 뒤쪽에는 버젓이 < 매이든 인 차이나> 라는 흐릿한 마크가 찍혀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어머니를 보고 비죽이 웃음 지었다.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따뜻한 밥과 물김치,,,그리고 맛깔스러운 오이짠지를 대접한 듯한 느낌만 남아있었기에 말이다.
조용한 걸음걸이로 우리 아파트를 나서는 채반 할머니가 난 별로 싫지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그리웠던 사람과의 해후에서 오는 반가움과 같은 것이 내안에서 번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런 지...
채반...중국산이라도 내 눈엔 그저 이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