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희미한 기억을 더듬느라 이마에 땀방울도 송글송글..., 갑작스레 도레미송을 듣다가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와의 추억을 찾았습니다.
여고시절 재방중이던 최고의 명화 " 사운드 오브 뮤직". 아마도 일요일 오전에 방학특집영화로 했던것같은데, 하필이면 그 시간에 다른 채널에서 아버지께서 제일 좋아하셨던 권투를 방송중이더라구요. 바쁜 음식점일까지 마다하고 아버지께서는 TV채널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셨고, 저는 저 나름대로 어떻게하면 "사운드 오브 뮤직"을 끝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었지요.
"아빠, 저... 죄송한데 아까 보던 그 영화 보면 안될까요?"
"뭐라고? 아빠도 지금 권투보고 있잖아.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데 그런 말을 하는거야? 나중에 재방송하면 그때 보렴."
한마디로 냉정하게 거절하시던 아버지의 음성이 얼마나 서운하고 속상했는지 모릅니다. 다른 아버지들은 딸을 위해서 충분히 프로그램정도는 양보하실텐데하는 생각도 들었다가, 한편으론 그래, 내가 나중에 다시 재방송하면 그때 보면 될텐데, 뭐...하는 생각도 들었다 잠깐동안을 방앞에서 두리번두리번거리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었습니다. 잠시잠깐 아버지께서 밖에 나와 주방일을 보실때면 저는 얼른 그때를 놓치지않고 다시 방안으로 뛰어들어가 재빠르게 채널을 돌려놓고 재밌게 "사운드 오브 뮤직"을 다시 봤답니다.
5분이 지나기도 전에 아버지께서 다시 권투하는 채널로 옮겨놓기까지는 울고, 웃으며 저도 모르게 어느새 쥴리앤드류스가 되어 영화속으로 푹 빠져있기 바빴으니까요. 그런 저를 아버지께서는 달래시느라 그렇게 보고 싶으면 방송국에 편지라도 쓰라하시더군요. 제가 방송국에 편지를 보내면 분명히 그 영화를 다시 재방송해줄거라시면서요. 우와... 어찌나 황당하고 답답하던지요. 1,2부로 나눠서 방송했던 "사운드 오브 뮤직"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저는 짧은 꾀를 하나 생각해냈습니다.
동네에 있는 다른 집에 가서 TV를 보고 오면 되겠지...하는 꾀 말입니다. 전 한번 보고 싶은 영화는 꼭 봐야하는 영화광이었거든요. 물론 지금도 변함은 없답니다. 세아이의 엄마라고 해서 영화를 좋아하지 말란법은 없으니까요.^^*
아버지모르게 그렇듯 저는 달음박질해서 동네 아주머니댁에 뛰어들어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하던 "사운드 오브 뮤직"을 다 볼 수 있었답니다.
영화만 생각하다가 집안일이 바쁘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린채 말입니다. 왜 그렇게 또 영화가 길었던지, 다 보고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지나버렸고, 한두시간을 집에선 제가 없어졌다고 애타게 찾았다고 하더라구요. 당연히 영화볼려고 다른 집에 들어가 있을줄은 꿈에라도 생각을 못했을테니까요. 영화는 무사히 즐겁게 잘 봤지만, 그 영화 본 댓가를 치르기엔 제가 감당해야했던 아픔이 너무 컸습니다. 아버지께는 괴씸죄로 꾸중을 많이 들었고, 엄마께는 바쁜 시간에 게으름 피웠다며 꾸중들었구요, 동생들은 저를 찾느라 너무 많이 울어서 동생들한테 또 그만큼 미안하더라구요. 좋아하는 영화 한편 보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하지만, 전 지금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결혼한지 8년이 다 되어가는 세아이의 엄마라지만, 영화앞에서는 어느새 여고생이 되어버린답니다. 왜 그렇게도 영화라면 정신이 하나도 없는건지. 뒤늦게 얻는 예쁜 우리 공주님 젖을 물리다가도 영화에 푹 빠지다보면 아기는 혼자 울고 있고, 젖은 혼자서 수건에 흠뿍 젖어버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랑은 기회는 이때다 하면서 한마디 건네죠. " 쯧쯧, 아직도 철이 없다니까..."
아니, 영화좋아하는거하고 철드는거하고 무슨 관련이 있다구요?
전 모르긴몰라도 아마 환갑잔치때도 홈씨어터앞에서 박수치며 바디액션까지 동원하면서 신나게 영화감상을 하고 있을겁니다. 레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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