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여자로 살고 싶어요..

여성시대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며, 또한 50을 바라보는 주부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제껏 제 인생이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타고나서 고생만하고 살아왔구나라며 신세한탄을 많이 하며 살아왔는데 '여성시대'를 듣고나선 저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제 주위에 수없이 많이 살고 있다는 생각에 잠시나마 저의 처지를 위로해 보았습니다. 오늘도 전 이른새벽 5시에 어김없이 식당으로 출근하여 고속도로공사현장 노무자들의 아침식사를 서둘로 챙겨주고, 또 잠시도 쉴틈없이 점심식단을 준비하려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활엔 이제 어느정도 숙련이되어 그리 힘들진않지만 지나온 그 수많은 날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가려 글을 쓸수가 없네요. 흘린눈물을 모두 모았다면 작은 호수는 되지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그리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지 못했지만 한 가정의 장녀로 태어나 결혼하기 전까진 생활의 큰 어려움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런 제가 20여년전 이미 고인이 된 저의 남편을 꽃다운 스무살에 만나 그 이듬해 그저 남편의 잘생긴 외모와 남자다운 성격에 반하여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을 하였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가난한 집안에 절대 결혼시킬수 없다고 하며 반대하였지만 저는 그 사람을 사랑했기에 가난한 신혼이었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게살며 슬하에 연년생으로 줄줄이 2남1녀를 두었습니다. 저의 남편은 가진것은 없어도 항상 남에게 베풀줄아는 따뜻한 사람이었고 호탕한 사람이었기에 주위에선 그를 좋아했고 저또한 많이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행복한 결혼생활도 잠시 24살의 젊은나이에 남편은 암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고, 남겨진것은 영농자금으로 빌린 5백만원이라는 거금과 젖먹이 아이를 포함해 줄줄이 딸린 제 자식들 뿐이었습니다. 너무나 기가막히고 앞이 캄캄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당신을 쫒아온게 고작 이것뿐인가요!!! 부모님께 손을 빌리고 싶었지만 제 자존심은 끝내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내가 선택한길 죽어도 나혼자 죽자라고 사생결단을 내린후 저는 슬픔에 잘길 여유도 없이 당장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습니다. 이제 갓 4살이 된 큰 딸아이에게 동생들 잘보살피라고 한후 점심밥 미리 방안에 챙겨놓고 밖에서 문고리를 걸어잠근 후 무작정 도시로 나가 파출부며 식당일이며 안해본일없이 닥치는대로 일을 했습니다. 쥐꼬리만큼 번돈은 영농자금으로 빌린 이자로 꼬박꼬박 빠져나갔고 나머지 돈으로 겨우겨우 우리 네식구 끼니를 연명할 정도였습니다. 주위에선 좋은남자 있으니 재가하라고 권유를 하였지만 제 금쪽같은 자식들이 남의 집에 들어가 먹을것 입을것 눈치보며 살아가게 만들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10년 넘게 억척같이 살다보니 이제 어느정도 빚도 정산되고 또 제 귀중한 자식들이 모두 예쁘게 잘 자라주어 큰 딸아이가 25살이 되어 시집갈 나이가 되어 있더군요. 제 아빠를 닮아서인지 인정이 많아 엄마 어디 아픈데 없냐며 직장에서 일 끝나면 항상 전화해주고 엄마 추하게 다니는것 싫다며 사시사철 백화점에서 예쁜옷 많이도 사주었지만 저는 그 옷이 아까워 장농속에 고이 간진해 두고만 있습니다. 지금도 가난의 그늘에서 벗어나진 못하였지만 든든한 제 자식들이 항상 내 곁에 있기에 가난의 고통도 이젠 견딜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우리 자식들 모두 결혼시키고 난후 좋은사람있으면 재가하여 젊을적 누려보지못한 행복을 조금은 맛보고 싶네요 "언희 아버지, 이제 언희아버지도 제가 행복해 하는 모습 보고싶죠?" 이제 정말 여자로 살고싶어요... 백승숙 충남 청양군 목면 안심리 436 016-699-9336